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아 Oct 24. 2016

경험에 절약하지 않기

아닌 것도 해봐야 안다

 대학교 4학년 2학기를 앞두고 학교에서 선발하는 무역관련 인턴공고를 보았다. 많은 선배들과 동기들이 해왔지만 나는 무역 분야 일은 관심이 없었기에 당연히 안할거라 생각해왔다. 하지만 졸업이 다가올수록 당연하게 생각했던 대학원 진학과 취업 사이에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대학원 진학은 내게 당연한 것이었으나 다양한 경우의 수를 놓고 고민을 하던 때였다. 내가 하나하나 선택을 해나갈수록 점점 길이 좁아지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제까지 내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도 한번 쯤 돌아보고 고려해보게 되었다.

 인턴 지원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친한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나는 고민을 이야기하고, 이걸 했을 때와 하지 않았을 때의 장단점을 구구절절 설명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였다. 


 “사실, 나는 무역 쪽은 관심 없거든. 근데 혹시나 안 해본 걸 후회할까봐.”


 친구는 대답했다.


“그러면 해봐! 해보고 맞으면 또 다른 네 길을 찾게 되는 것이고, 안 맞으면 그건 확실하게 네 길이 아닌 걸 알게 되잖아. 그럼 나중에 다른 고민을 할 때 그건 완전히 제외시킬 수 있고!”


 이제까지 나는 ‘해봐야 좋은 줄 안다’라는 생각만 했지, ‘해봐야 안 좋은 것도 안다’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해보고 안 맞으면 그 경험은 나에게 득이 아닌 실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친구의 말이 맞았다. 해보고 확실히 아닌걸 알면 그 다음부턴 절대 그걸 돌아보진 않게 된다. 그렇게 나한테 맞지 않는 것을 하나씩 지워가는 것도 내가 원하는 걸 찾는 또 다른 방법인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원을 했다. 하지만 내가 지원했던 곳과는 다른 나라로 배정이 되었고, 결국 가지는 않았지만 그 때 친구의 조언에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직접 해봐야 아닌 것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이 이제까지 ‘내 길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잊어버린 일들에 다시 한 번 관심을 갖게 했다. 

 몇 달 후 나는 진로고민을 할 시간도 필요했고 세계여행도 하고 싶어 휴학을 했다. 휴학 중이었으니 더더욱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스페인에서 함께 지냈던 친구 A에게 전화가 왔다. 다음 주에 멕시코를 간다는 것이었다. 갑자기 왜 가냐고 물었더니 통역 일을 하러 간단다. 자기 학교로 의뢰가 들어왔고 자신을 비롯해 몇 몇 선배가 가기로 했다고 하는데 굉장히 부러웠다. "좋겠다! 잘됐다!" 라고 말을 하면서도 ‘나도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당시엔 일을 하고 있었고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며칠 후 친구가 다시 전화를 했다. 사람을 급하게 구하는 중이었는데 아직 자리가 빈 것 같다는 것이다. “나 추천해!” 라고 농담처럼 말을 했는데, 친구가 “정말 할까?” 라고 받아쳤다. 나는 바로 “응! 나도 가고 싶어!” 라고 대답했다. 

 이번엔 망설이고 싶지 않았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과 가보지 않은 나라에 갈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바로 떠나게 되면 내가 해결해야 할 것들이 있었고, 앞으로의 계획이 틀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다 감수하고라도 가고 싶었다. 

 친구가 담당자에게 나를 추천했다. 나는 바로 서류를 보냈고 전화로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스페인어를 오랫동안 안 쓰기도 했고, 여태껏 나는 절대 통번역은 하지 않겠다고 생각해왔기에 고민이 되긴 했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통번역가의 삶을 체험해 봄으로써, 둘 중 하나는 확실히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나는 통번역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한 내 결정에 대한 확신이고 또 다른 것은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 것도 나랑은 잘 맞는 직업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이다. 

 모든 일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인터뷰를 진행한 바로 그 주말에 출국을 했다. 다행히 하던 일은 정리가 잘 되었고 문제없이 준비할 수 있었다. 그렇게 스페인에서 함께했던 A와 멕시코에서 또 행복한 두 달을 보냈다.

 두 달 동안 힘든 일도 많았지만 소중한 인연과 좋은 추억을 얻었다. 결과는 예상대로 ‘통번역은 내 길이 아니야’에 대한 확신이었다. 그러나 내가 이 곳에 옴으로서 포기했던 다른 것들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세계여행은 못했지만 거기서 번 돈으로 멕시코와 북미를 여행했고 그리워했던 미국 땅도 다시 밟을 수 있었다. 내가 가지 않을 길을 잠시 걸어볼 수 있었고, 이제는 ‘나랑 안 맞는 것 같아’ 가 아닌 ‘내가 해봤는데 내 길이 아니더라.’ 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함에 앞서 여러 가지 계산을 하게 된다. 내가 얼마나 투자해야 하며 그 것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본 후 결정을 내린다. 많은 사람들은 ‘경험’ 그 자체에서 얻을 수 있는 배움이라는 ‘득’ 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실’을 먼저 본다. 내가 예측하는 ‘실’이 손해라고 생각되면 시도조차 해보기 전에 겁을 먹는다.

 하지만 득과 실은 경험을 해봐야 아는 것이며, 그 경험을 하는데 있어 돈과 시간을 절약하고자 한다면 아무것도 제대로 겪어볼 수 없을 것이다. 금전, 체력, 감정 등 무엇이든 잃어도 된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새로운 일 앞에서 현재 내가 가진 것을 손에 꽉 쥐고 놓지 않는다면 제대로 된 경험을 할 수도 없다. 

 우리가 생각하고 지레짐작하는 것들은 이제까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겪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예상은 틀릴 가능성이 더 높다. 나에게는 없는 정보를 바탕으로 다가올 미래를 점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고 따지다 보면 내 인생을 바꿔줄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나도 모르는 새 놓치게 된다. 다양하게 경험하고 마음먹은 일은 행동으로 옮겨봐야 한다. 가진 것을 다 잃어도 괜찮은 게 청춘이며 잃을 것이 없는 것 또한 청춘이다. 도전 없는 인생은 무의미하며 계속해서 경험하지 않으면 청춘은 빛을 잃는다. 청춘은 아끼면 사라질 뿐이다. 

이전 10화 어른이 된다는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