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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아 Oct 21. 2016

안 될 이유부터 찾는 버릇

그래도 가고싶은 이유

                                                                                                                               

 처음 만난 인도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이제까지 제대로 개발도상국을 여행해본 적이 없는 나에겐 열악한 환경을 보고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우선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공항에서 시내로 나가며 택시의 창밖으로 거리를 보았다. 그 풍경은 마치 우리나라 6·25 전쟁 때 모습을 사진으로 보는 것 같았다. 내 눈으로 보고 있는 이 장면이 지금 일어나는 현실이라는 사실이 받아들여지지가 않았다. 
 무너져 내리는 건물, 길거리에서 물을 퍼내 샤워하는 사람들, 맨발에 제대로 옷도 걸치지 않은 사람들, 더러운 길거리, 질서 없는 차들까지…. 충격에 말이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태양과 상상을 초월하는 습도에 녹아내릴 듯한 더위, 길을 걸어가면 계속해서 부딪히는 사람들, 시끄러운 경적소리와 시도 때도 없이 추적추적 내리는 비는 나를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숙소에 도착한 후 나는 3일간 “집에 가고 싶어”를 시도 때도 없이 외쳤다

. ‘과연 이곳에서 2주간 살 수 있을까?’, ‘살아서 돌아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루에도 수백 번씩 했다.


 하루는 방을 함께 쓴 언니들이 말라리아 약을 챙겨 먹는 걸 보았다. 한국에서 짐 쌀 때 고민은 했지만 따로 말라리아 약을 챙기지 않았다. 그런데 모기한테 한 방 두 방 물릴 때마다 괜스레 불안해졌다. 결국 인도에서 오래 머무른 한국인 언니의 추천으로 현지 약국에서 말라리아 약을 구입했다. 며칠 동안 시간만 맞춰 먹으면 된다고 했다. 복용법도 간단했고 약도 몇 개 되지 않았다. 바로 첫 알을 복용했다. 
 그날 오후에는 친구가 비행기 표를 바꾸겠다며 항공사 사무실에 같이 가자고 했다. 걸어서 30분이 넘는 거리였는데, 한 10분쯤 걸어가니 점점 어지럽고 앞이 안 보이기 시작했다. 속이 울렁거리고 갑자기 배가 너무 아팠다. 식은땀이 흐르면서 내 몸이 가눠지지가 않았지만 정신력으로 걸어갔다. 하늘이 노래져 쓰러질 것 같으면 잠시 주저앉았다가 다시 걷기를 반복하며 겨우겨우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로 화장실에 달려가 다 쏟아내고 나니 조금 나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말라리아 약이 굉장히 독해서 밥이랑 같이 먹어야 하는데 나는 그것도 모르고 공복에 먹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말라리아 병보다 약이 더 무서워서 첫 한 알만 먹고 끊어 버렸다.



 한 3일쯤 지나고 나니 이 나라에 조금씩 적응이 되었다. 길거리에 풍기는 인도 특유의 향냄새도 좋았고 끊이지 않는 경적소리도 내 귀에 배경음악 정도로 여기고 신경 쓰지 않게 되었다. 길거리에서 사 먹는 에그롤과 라씨는 우리의 단골 메뉴가 되었다. 시장에서 자주 사 먹은 망고는 그야말로 입안에서 녹았다. 부리부리한 눈으로 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에게도 불편함을 느끼는 대신 손을 흔들며 웃어주는 여유를 갖게 되었다. 
 그런데 너무 마음을 놓아서였을까. 얼마 후 배탈이 났다. 위생에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잘 먹고 다녔더니, 어디서 먹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화장실을 들락날락했고, 복통이 심해 잠도 제대로 자지 못 했다. ‘이러다 말겠지’하며 버텼는데 3일이 넘게 계속되니 너무 힘들었다. 물갈이라고 치기엔 늦은 감이 있었고 복통은 점점 심해져 밤낮으로 고통스러웠다. 하는 수 없이 날짜를 며칠 앞당겨 귀국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간다고 하니 숙소 직원들 모두가 진심으로 아쉬워하며 배웅해 주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정이 많아서 많이들 서운해했다. 나는 모두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들은 인도에 다시 오면 꼭 여기로 오라고 신신당부했고 나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무사히 한국 땅을 밟았지만, 공항에서부터 손등에 무언가 물린 것처럼 하나둘 올라오기 시작했다. 자고 일어나면 없어질 줄 알았는데 점점 온몸에 퍼져나갔다. 처음엔 기내식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나 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생각보다 심각하게 팔과 다리를 뒤덮었다. 약을 먹어도, 연고를 발라도 차도가 없었다. 그 다음날도 계속 심해졌고, 나는 무서워서 응급실에 갔다. 하필 주말이라 어쩔 수 없이 응급실로 갔는데 다행히 당번 의사선생님이 피부과 담당이었다. 정확한 원인은 모르지만 베드 버그의 일종인 것 같다고 했다. 결국 일주일 동안 매일 주사를 두 대씩 맞았고, 일주일이 지나서야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이야기만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인도는 가고 싶지 않다고 말한다. 도대체 인도의 매력이 뭐냐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인도에 열광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한다. 나 또한 처음 인도를 다녀온 후 한동안은 다신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에도 힘들었지만 마지막은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얻은 피부병은 거의 한 달 동안 지속되어 한여름에 긴팔을 입어야 했었다.
 한 2년이 지났을까. 어느 날부터 조금씩 그때의 느낌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혼란스럽지만 그들만의 질서가 존재하는 길거리와 내가 사랑했던 음식들, 그리고 견딜 수 없는 더위에 모든 걸 내려놓게 만드는 곳. 무질서함 속의 질서가 살아있는 그곳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이상하게 인도는 ‘아, 그때 그곳은 그랬지’ 정도의 그리움이 아닌, 다시 가고 싶어 미칠 것 같은 그리움이었다. 언젠가부터 나도 모르게 “인도 가고 싶어”라는 말이 “인도 갈 거야”가 되었다. 이 말을 습관적으로 하다 보니, 결국 내가 말한 대로 이루었다. 5년 후, 다시 그리웠던 그곳을 찾았다.
 나는 두 번째 인도 여행에 내 동생을 데려갔다. 인도 여행을 조금 길게 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께서 걱정하실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함께할 사람을 찾아야 했는데 마침 동생을 데려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동생이 시간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고, 나는 동생에게 꼭 인도를 경험하게 해주고 싶었다. 내가 5년 전에 처음 인도에서 느꼈던 그 충격과 깨달음의 순간을 동생과 나누고 싶었고, 동생이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해주고 싶었다.  
 


 인도에서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안 될 이유부터 찾는 건 배부른 투정이라는 것’이다. 내 팔뚝만 한 다리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는 릭샤꾼들, 정말 무거운 짐을 양손에 쥐고 머리 위에도 이고 가는 상인들, 생활이 안 될 것 같은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이제까지 편하게만 살아온 나를 돌아보게 했다. 스스로에게 ‘나는 저만큼 노력해보았는가’, ‘나라면 저들이 가진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저만큼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을까’하는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그들 앞에서 나는 이제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나의 약점이나 ‘안 될 이유’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사는 환경이 다르고 하고자 하는 일이 다르기에 비교가 적절하지 않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의지가 약하다고 생각되거나, 도전하기도 전에 쉽게 포기해버리는 성향이 강한 사람들에게 인도 여행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그곳을 경험하고 오면 내가 생각했던 걱정이나 장애물들이 너무나도 작아 보이기 때문이다.
 인도를 경험한 후 내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지내는 동안 힘들었고 귀국 후에도 여러 가지로 고생을 하긴 했지만, 조금 지나 안정이 되고 나니 내가 느낀 것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곳은 내 생각을 많이 바꿔준 곳이다.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나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나를 되돌아보게 했다. 고작 며칠 지내는 것도 불편하다고 투덜대던 나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로 열심히 살아가는 인도 사람들을 보며 내 삶을 대하는 태도를 고쳐나갔다.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장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너무나도 작은 것이었다. 키가 작아서, 몸매가 좋지 않아서, 코가 못생겨서 등 우리가 ‘콤플렉스’라고 부르는 것들은 정말 사치스러운 투정이었다. 그들을 보고 온 이후 나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 일이 안 될 이유부터 먼저 찾는 습관을 버렸다. 그리고 모든 일이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에서 나보다 더 훌륭한 일을 해내고 있는 사람들, 더 열악한 환경에서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 그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그들의 일을 해낼 것처럼 보였다. 
 무슨 일이든 내가 가진 능력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다 잘 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행한다면 그대로 될 것이다. 그런 마음을 가져야 나에게 다가온 기회도 망설임 없이 잡을 수 있다. 내가 해보지 않은 일이거나 자신이 없는 일이라고 해서 두려움에 망설이고, 자꾸만 안 될 이유만 찾는다면 절대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없다. 어떤 일이든 될 이유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그러면 모든 일이 잘 될 수밖에 없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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