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일이 내 뜻대로 안 풀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했었다. 집을 자주 옮겨야하는 상황을 겪었을 때도, 학교를 옮기는 과정이 힘들었을 때도, 눈치 보는 생활에 지칠 때도 항상 ‘왜 나는 남들보다 이렇게 힘들지?’ ‘왜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잘 사는데 나한테만 이런 일이 일어나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감사할 거리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완벽하지 않은 내 상황이 항상 불만스러웠다. 다른 사람들의 생활은 모두 완벽해 보였다. ‘운이 좋았다’라고 말하긴 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만족하는 생활이 부러웠다. 내 생활에선 완벽이라곤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내 유일한 숨구멍은 일주일에 한 번 엄마와 통화하는 시간이었다. 그 때는 나를 타국에 보내놓고 걱정하시며 아무 것도 못해준다는 사실에 마음만 애태워야 했던 엄마의 마음도 모른 채, 나는 힘들고 서러운 일들만 털어놓기 바빴다. 내가 받은 부당한 대우, 인종 차별, 눈치 보며 사는 서러움, 화나고 힘든 일들 모두 털어 놓다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엄마는 늘 나를 위로하는 말로 전화를 마무리하시며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을 키워주셨다.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것은 나를 강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 중에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한마디가 있다.
“지금은 힘들지만 결국엔 이 모든 것을 웃으며 이야기 할 날이 올 거야. 그 땐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에게 말할 수 있는 좋은 이야기 거리가 될 거야. 그 순간을 상상해봐.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지금을 웃으며 이야기할 날이 온다.’는 말은 큰 위로가 되었다. 이후에도 내가 힘들 때마다 이 말을 생각하며 이겨냈다.
그 후로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바꿨다. 모든 것을 내 이야기 거리로 생각하게 되었다. 견디기 힘든 일도 나중에 웃으며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상상을 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내 입 꼬리는 올라가고 무엇이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조금 창피하지만 친구들에게 가장 큰 웃음을 줄 수 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왜 하필 나일까’라는 생각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던 경험이다. 고등학교 운동부 생활을 하던 시절, 매 시즌 사진을 찍었다. 개인별로도 찍고 팀으로도 찍는데, 팀 사진은 경기장에서 찍는다.그 날은 소프트볼 팀의 단체사진을 찍는 날이었다. 소프트볼은 야구와 비슷한 운동이라 잔디밭에서 한다. 우리는 잔디밭에 모두 모여 사진을 찍기 위해 앉아서 카운트를 하고 있었다.
“자, 웃으세요. 하나, 둘…”
“으악!!!”
나는 내 머리 위에 무언가를 느꼈다. 말로만 듣던 새똥이었다. 날아가던 새가 정확히 내 정수리에 사고를 치고 간 것이다. 나는 순간 얼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순간 화가 났다. 학교 수업 중에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진을 찍고 다시 교실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움직이지 마!!!!”
다행히 나보다 침착한 친구들은 가만히 있으면 사진에는 안 나오니 일단 그대로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모두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고 나는 울상을 펴가며 억지웃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제야 친구들은 웃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나를 앞에 두고 한참을 깔깔대고 웃던 친구들은 친절하게 내 머리위의 새똥을 닦아주었다.
이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대수롭게 말하면서도 재미있다고 웃음을 멈추지 않는 친구들이 얄미웠다. 어떻게 어깨도 아니고 다리도 아닌 정수리 한 가운데에 그렇게 맞을 수가 있을까. 화장실에 씻으러 가는 순간까지는 새똥냄새에 찝찝함까지 더해져 기분이 너무 상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새똥을 씻어내다 보니 엄마의 말씀이 떠올랐다. 생각을 긍정적으로 하니, ‘대체 나는 얼마나 특별한 사람인거지?대체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를 주변에게 들려주라고 이럴 일이 생기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창피하고 기분이 나쁠 수 있는 일이지만 누군가한테 이야기해주는 상상을 하니 나부터 웃음이 터졌다.
생각을 바꾸고 나니 어차피 친구들은 기억도 못할 거라는 생각에 창피함도 사라졌다. 교실에 올라가서 오히려 내가 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나 머리에 새똥 맞았어! 완전 신기해!” 라고 말하고 다녔더니 그 자리에 없던 친구들은 재미있다고 웃으며 놀리긴 했지만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날이었다. 적어도 내가 머리에 새똥을 맞기 전까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날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기억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것이다. 친구들에게는 평범한 사진 찍는 날 중 하루였겠지만 나에겐 특별한 날로 기억에 남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가끔은 어이없을 정도로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걸 이해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일, 내가 계획하는 일만 완벽하게 줄줄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보다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나도 나는 다 내 것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마음을 먹어보자. 그러면 모두 다 나의 스토리가 되고 이야깃거리가 된다.
완벽하지 않을수록 스토리가 가득한 삶이 된다. 무채색의 인생보다는 알록달록한 인생이 더 매력적이지 않은가. 좋은 일만 일어난다고 해서 마음을 놓아버려도 안되고, 기분 좋지 않은 일이라고 해서 크게 속상해할 필요도 없다.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난다 하더라도 이 사건이 내 인생에 갖는 의미가 무엇이며 나에게 온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하다 보면 모든 경험 하나하나가 다 소중해지고 그것마저도 감사하게 된다.
모든 것이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만 흘러갈 수는 없다. 모든 일이 잘 풀리는 것 같은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을 대하는 태도에서 가장 크게 갈린다. 완벽하지 않음은 모자란 것이 아닌, 더 발전할 무한한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실수와 실패 속에서 더 많이 배워 완벽을 넘어서는 인생을 그려본다. 결국 완벽하지 않음으로 인해 일어나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 더 큰 세상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나를 알릴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 주며, 나라는 사람의 그릇을 키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