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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남 Aug 19. 2021

4. 서사가 아름다운 기행문

묘향산소기妙香山小記_박제가

코로나19로 인해 평범하던 일상에 큰 변화가 생겼다. 마스크 쓰기와 손 씻기, 거리두기가 생활화되었다. 사람들에게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갔을 때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다수가 ‘여행’이라고 대답했단다. 해외여행은커녕 국내여행도 마음 편하게 할 수 없는 현재 상황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울적하다.


옛 선비들이 여행을 하며 대자연의 풍광과 정취를 적은 글을 산수유기山水遊記라 한다. 일종의 기행문이다. 산수유기 중에서도 초정 박제가의 장편 기행문 <묘향산소기>는 자연을 느끼고 묘사하는 데 새로운 차원을 연 걸작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이 글은 박제가가 스무 살 때 영변도호부사로 부임하는 장인을 따라가던 길에 지은 것이다. 그 가운데 몇 대목만 들여다보자.     


고목이 절벽에 기댄 채 말랐는데 우뚝함은 귀신의 몸뚱이 같고, 서리어 움츠림은 잿빛 같았다. 껍질을 벗은 것은 마치 늙은 뱀이 벗어놓은 허물 같았고, 대머리가 된 것은 병든 올빼미가 걸터앉아 고개를 돌아보는 듯하였다. 속은 구멍이 뚫려 텅 비었고 곁가지는 하나도 없었다. 산에 의지한 돌은 검고, 길에 깔린 돌은 희며, 시내에 잠긴 돌은 청록빛이었다.     


물줄기가 움푹 들어갔다가 소용돌이를 치며 일어나는 모습은 마치 고사리순이 주먹을 말아쥔 것만 같다. 용의 수염 같기도 하고 범의 발톱 같기도 하여 움켜쥘 듯하다가는 스러진다. 내뿜는 소리가 흘러내려 하류로 서서히 넘치더니, 주춤하다가는 다시금 내뿜는 것이 마치 숨을 헐떡이는 것만 같다. 한참을 가만히 듣고 있으려니 나 또한 숨이 차다.     


절벽에 달린 채 말라버린 고목이나 폭포가 다시 솟는 장면을 박제가는 주먹을 말아쥔 고사리손 혹은 용의 수염, 범의 발톱으로 묘사하고 있다. 마치 묘향산에 직접 들어가 앉아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묘향산소기>는 이렇게 끝난다. 이것이 곧 여행의 정석을 말하는 것 아닐까 싶다.     


무릇 유람이란 흥취가 중요하다. 날짜의 제약을 받지 않고, 아름다운 경치를 만나면 바로 멈추고, 나를 알아주는 벗과 함께 마음에 맞는 곳을 찾아야 한다. 복잡하고 떠들썩한 것은 내 뜻이 아니다. 속된 사람들은 선방禪房에서 기생을 끼고 시냇가에서 풍악을 울린다. 이는 꽃 아래서 향을 피우고 차 마시는 데 과일을 두는 격이다. 어떤 이가 내게 ‘산중에서 음악을 들으니 어떻던가요?’ 하고 묻는다.  

“내 귀는 다만 물소리와 스님의 낙엽 밟는 소리만 들었을 뿐이오.”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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