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광실보다 게딱지집_임숙영과 이명준
요즘 도시의 집값 상승을 두고 ‘미쳤다’라고 표현한다. 하루아침에 1억, 2억 아니 5억, 10억을 널뛰기하는 곳이 있을 정도다. 엊그제 어느 작가한테 들었는데 전화 중에 그녀 친구가 "우리 집은 3억밖에 안 올랐어." 하면서 투덜거렸단다. 혼자 사는 그녀는 "그러면 대체 얼마나 올라야 좋은 거야?" 하고 되물었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런 비정상적인 부동산 현상이 언제쯤 바로 잡힐지 걱정이 된다.
큰 집을 두고도 스스로 불만스러워한다면 큰 것이 아닌 법이라네. 부귀를 차지한 자들이 거의 다 천 칸 만 칸의 집을 갖고도 불만스러워하는 경우를 보네. 이 때문에 구름 위로 높다랗게 솟은 집이 크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가 크다고 하지 않고 작다고 한 것이라네.
대개 천하의 사물이 크거나 작거나 관계없이 사람에게 만족스러운 것은 비록 작더라도 크게 느껴지고, 만족스럽지 못한 것은 크더라도 작게 여겨지는 법이라네. 게딱지집이 사람에게 만족스럽고 구름 위로 솟은 집이 사람에게 만족스럽지 못하므로 내가 ‘집 가운데 게딱지집보다 더 큰 곳이 없고, 구름 위로 솟은 고대광실이 작은 법이다’라고 말한 것일세. 자네는 달팽이 촉각 위 왼쪽과 오른쪽에 만국蠻國과 촉국觸國이 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하였는가? 사물 중에 이보다 더 작은 것은 없지만 여기에 나라를 둘이나 들일 수 있었다지 않은가.
임숙영(1576-1623)은 광해군 시절 문과 과거시험에서 척신戚臣을 비판하는 과격한 내용을 써서 합격자 이름에서 삭제된 일이 있다. 위의 글은 1621년 사헌부의 탄핵으로 파직을 당했을 때 지은 것이다. 그 무렵 친한 벗 이명준이 벼슬에서 쫓겨나 경상도 땅에 유배되어 있었다. 대대로 벼슬을 한 집안의 아들인 친구가 유배객이 되어 좁은 집에서 지내려니 얼마나 불편할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임숙영이 이 글을 지어 친구 이명준을 위로한 것이다.
집값은 집의 크기, 아파트 평수와도 관련이 되는데 임숙영은 집의 크기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아무리 크고 좋은 집이라도 만족을 모르면 서울 땅을 다 차지하고도 부족하다 할 것이고, 초가삼간에 살아도 마음 편히 살 수 있다면 고대광실보다 넓은 것이라는 뜻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안빈낙도의 검소한 삶을 지향하였기 때문에 혹여 넓은 집에 살더라도 이름은 작은 것으로 붙였다. 그래서 게딱지집이라는 ‘해갑와蟹甲窩’나 곡식을 한 말 넣을 수 있을 만큼 작다는 뜻으로 ‘두실斗室’이나 ‘두정斗亭’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