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남 Jan 19. 2022

23. 선비들이 탐냈던 사물(2)시전지

_풍류와 마음이 담긴 손글씨 편지지

이메일이 일상화된 요즘 현대인들에게 편지지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편지를 쓸 때 다양한 색깔의 편지지에 정성을 들인 글씨로 서로의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런데 컴퓨터 문화가 일반화되고 손글씨 문화가 퇴조하면서 꽃 편지지도 사라졌다. 


2016년 가을, 원주 고판화박물관에서 조선시대 선비들의 시전지에 새겨진 시와 그림 200여점을 공개한 바가 있다. 시전지(詩箋紙)란 시나 편지를 쓰는, 문양이 있는 종이를 말한다. 시전지에는 선비들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사군자 무늬가 많이 들어간다. 옛 선비들이 일상생활에서 시를 쓰고 편지를 주고받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그들은 무늬가 새겨져 있는 시전지에 그동안 전하지 못했던 정다운 소식을 전하곤 하였다. 받는 대상과 상황에 따라 적절한 문양을 사용하여 풍류와 감성을 시각적으로 담고 편지 속에 담긴 마음을 한층 멋스럽게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하였다. 


추사는 지독한 완벽주의자로 지필묵 선택도 엄청나게 까다로웠다. 그는 붓에 잘 맞는 종이, 먹을 잘 받는 종이를 검토하고 조건이 맞지 않으면 글씨를 쓰지 않았다.      


 보내준 종이는 명반수(明礬水)를 너무 들여서 붓을 구사하기에 적당하지 않으니 도리어 이곳 종이만 못하네. 아무리 각본(刻本)이라도 반드시 좋은 종이라야 쓸 수 있다네. (막내 아우 상희에게)

 혹시 서너 본의 좋은 시전지를 얻으면 마땅히 힘써 병든 팔을 시험해보겠네. 두꺼운 백로지 같은 것도 좋으나 반드시 숙지(熟紙)라야 쓸 수 있을 걸세. (오규일에게)      


<연식첩>

또 추사는 좋은 붓과 좋은 종이를 만나면 글씨를 쓰고 싶다고 했는데, 화려한 중국제 시전지에 쓴 《연식첩》이라는 작품을 보면 아름다운 종이를 보고 흥이 나서 거침없이 써 내려간 것 같다. 겸재 정선의 그림에 사천 이병연이 제화시를 써준 종이는 가장 아름다운 시전지다. 당대를 대표하는 화가와 시인이 그림과 시를 써서 만든 《경교명승첩》은 호사스럽다. 바탕에 은은하게 깔린 그림과 이병연의 시와 낙관은 배치나 색채에서 서로 조화를 이룬다.     


조선 후기에는 대체로 개인이 집안에 시전판(詩箋版)을 소장하였다가 필요할 때 염료를 발라 종이에 찍어 시전지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종이를 많이 사용하는 선비들이 자신의 예술적 취향에 따라 독특한 시전지를 개발한 것이다. 특히 이덕무는 여러 종류의 원고지를 직접 만들어서 사용했다. ‘탄호전’이란 이름의 시전지를 만든 다음 그 제작법을 소개하기도 했는데 보통 판화로 찍어 만든 시전지와는 또 다른 느낌이 난다. 그만큼 정성이 깃든 특별한 종이라고 할 수 있다. 탄호전의 제작법에 대해서는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의 <이운지> ‘문방아제’ 항목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시대에 시전지 문화가 있었던 것을 보면 옛사람들이 우리보다 훨씬 여유있고 멋스러웠던 것 같다. 손글씨 편지는 이메일이나 메시지, 카카오톡 문자와는 또 다른 감동을 준다. 우리도   이참에 가까운 지인에게 정이 담긴 손글씨 편지를 보내는 것은 어떨까?    


              <조선 후기 시전지들>


이전 18화 22.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사랑할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