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이응태 부인
오래전 텔레비전 뉴스 시간에 4백 년 전의 미투리 한 켤레와 여인의 한글 편지가 발견됐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검붉은 빛깔의 미투리와 편지를 보는 순간, 나는 울컥 목이 메고 울음이 복받쳐 올라왔다. 아, 그녀의 슬픔이 얼마나 깊고 컸을까. 그 애절함과 비통함이 오랫동안 내 몸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1998년 4월, 안동시 정상동 택지개발 현장에서 무덤을 이장하던 중 한글 편지가 발견된 것이다. '원이 아버지께'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시신의 가슴 위에 덮여 있었고 죽은 남편의 머리맡에는 머리카락과 삼을 엮어서 만든 미투리가 한 켤레 놓여 있었다.
편지는 1586년(선조 19년) 6월 초하루 안동에 살던 고성 이씨 가문의 이응태가 31세의 나이로 죽자, 장례를 치르기 전 짧은 시간에 그의 아내가 남편에게 써서 무덤에 넣은 것이다. 또한 미투리를 감싼 한지에 ‘이 신 신어보지도 못하고....’라고 쓴 내용으로 보아 병석에 누운 남편의 쾌유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내가 한 땀 한 땀 미투리를 만들었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내의 정성에도 불구하고 뱃속의 아기와 어린 원이만 남긴 채 이응태는 유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편지의 군데군데 떨어진 눈물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다고 하는데 아래의 편지를 읽어보면 남편을 잃은 젊은 아내의 절절한 마음과 깊은 사랑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원이 아버지께
당신이 항상 나에게 '둘이 머리가 희어지도록 살다가 함께 죽자'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어찌 나를 두고 당신 먼저 가셨나요? 나와 우리 아기는 누구 말을 듣고 어떻게 살라고 다 버리고 당신 먼저 가셨나요? 당신은 나에게 어떤 마음을 가졌으며 나는 당신을 향해 어떤 마음을 가졌던가요?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겨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 같을까요?"
이렇게 말하곤 했는데 어찌 그런 일은 생각지도 않고 나를 버리고 먼저 가시나요?
당신을 여의고는 나는 살 수 없어요. 빨리 당신에게 가고 싶어요. 나를 데려가 주세요. 당신을 향한 마음을 이승에서 잊을 수 없고 서러운 뜻은 한이 없습니다. 내 마음을 어디다 두고 어린아이를 데리고 당신을 그리워하며 살 수 있을까요?
내 편지 보시고 내 꿈에 와 자세히 말씀해주세요. 내 꿈속에서 이 편지 보신 말 자세히 들으려 이렇게 편지를 써서 넣으니 자세히 보시고 나에게 말씀해주세요.
당신은 내가 아이를 낳거든 아이에게 할 이야기라도 좀 하고 가시지 아이가 태어나면 누구를 아버지라고 부르게 할까요? 아무려면 내 마음 같을까요? 이런 슬픈 일이 하늘 아래 또 있을까요? 당신은 한갓 그곳에 가 계실 뿐이니 아무래도 내 마음처럼 서러울까요?
하고 싶은 말 한도 없고 끝도 없으나 다 못 쓰고 대강 적습니다. 이 편지 자세히 보고 내 꿈에 와서 당신 모습 보여주시고 자세히 말해주세요. 나는 꿈에서 당신을 볼 수 있다고 믿어요. 몰래 와서 보여주세요. 하고 싶은 말 끝이 없지만 이만 적습니다.
병술년 유월 초하룻날
부부간에 금실이 좋으면 하늘도 시샘한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들 부부의 정은 남달랐고, 아내는 또 아기를 임신하고 있었다. 무심하게 떠난 남편을 원망하면서, 그리워 살 수 없으니 꿈속에 나타나서라도 답을 달라는 말은 안타까움을 더한다. 이 편지를 보면 참사랑의 모습은 지금이나 그때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이야기는 세계적 다큐멘터리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2007년 11월호와 고고학 잡지 '앤티쿼티' 등에 게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