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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자까야 Apr 23. 2024

이러니 사람들이 티브이를 안 보지

초등학교 저학년, 일기장에 적었던 문장이 하나 기억 남는다. '오늘은 '해피투게더'를 못 봤다. 내일은 꼭 봐야겠다'. 당시 나는 예능 프로그램을 정말 좋아했다. 해피투게더, 일요일은 즐거워, 놀러와, 상상플러스 등. 우스꽝스러운 게임, 기발한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서 신나게 노는 연예인들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었다. 노래를 틀리면 머리 위에서 쟁반이 날아오고, 게스트가 특정 행동을 하면 MC의 의자가 튀어 올라 수영장에 빠져버리는 그 세계. 현실에서 펼쳐질 수 없고, 웃음만 가득했던 그 세계. 나도 그 안에 있으면 어떨까 상상 했다. 그 당시 내 목표는 '해피투게더 쟁반노래방' 본방송 보기. 밤 11시에 졸린 눈꺼풀을 붙들고 기다렸지만 늘 실패하고 말았다. 그리고 30살이 된 지금, 예능 작가가 되었다. 예능은 나에게 추억이자 밥벌이이다. 최근까지 예능 작가의 삶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요즘 스마트폰으로 재미있는 것을 본 사람들은 말한다. '이러니 사람들이 티브이를 안 보지'. 유튜브, 틱톡과 같은 숏폼이 예능의 자리를 차지했다. 자연스럽게 예능 작가들도 자리도 위태로워졌다. 정규 예능이 줄어들고 단발성 예능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 방송사에서 새로운 예능을 6회 정도 방영 해보고, 시청자의 반응이 안 오면 그대로 폐지해 버리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6개월마다 프로그램을 찾아 헤매는 신세가 되고, 페이도 줄었다 (단발성 프로그램이 정규 프로그램보다 페이가 적다). 티브이는 구시대적 미디어가 되어 가고 있고, 방송 작가는 구시대적 직업이 되어 가는 것만 같다. 밤마다 해피투게더를 기다렸던 추억도, 생계적인 문제 함께 점점 희미해져 간다. 


올해 방송일을 잠시 멈추고 새로운 일을 시도해 봤다. 틱톡, 유튜브 등 여러 콘텐츠 일을 시도해 봤지만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나는 방송에서 배운 공식대로 채널을 운영하고 싶었고, 방송 경험이 없는 동료들은 머릿속에 있는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실현하고 싶어 했다. 내가 너무 고착화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내 아이디어는 동료들의 신선한 아이디어에 걸림돌 같은 걸까. 자학적인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잘 못된 건 아니다. 아직까지 재미있게 하고 있는 일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모임 운영'. 


'문토'라는 관심사 기반 모임 플랫폼이 있다.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임을 만들고 수익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 모임들이 심상치가 않다. 단지 친목 모임이 아니다. '신서유기'에 나오는 게임을 직접 해본다던가, '나는 솔로' 콘셉트의 소개팅을 하는 등 '콘텐츠'가 있는 모임들이었다. '문토'의 유저들은 '콘텐츠'에 기꺼이 시간과 돈을 소비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아 이거구나. '콘텐츠'가 있는 모임을 운영해야겠다. 


곧바로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처음 만들었던 모임이 '내 이야기가 라디오에서'이다. 모임 전날까지 사연을 텍스트로 접수받고 카세트테이프로 녹음 한 뒤, 모임 당일 아날로그 라디오로 재생하여 고민을 공유하는 모임이었다. 당시 장비값, 대관비 등을 포함해서 25만 원을 가량을 지불했다. 보름 동안 핸드폰을 붙들고, 내 모임에 참가할 만한 사람을 찾아 초대 메시지를 보내고 답장이 올까 조마조마 했다. 그리고 첫 회 모임 이후 내가 받은 소득은 4만 8천 원. 


해당 모임을 마치고 내 기분은 어땠을까? 20만 원가량의 적자를 본 것에 대한 실망감? 모임 운영 현실에 마주해 버린 당황감? 아니다. 너무 재밌었다. 참가자들이 내가 녹음해 온 사연에 집중해 주는 것이 너무 재밌었다. 각 사연을 듣고 진심으로 공감해 주는 참가자들이 너무 고마웠다. 내 콘텐츠, 내가 만든 세계에 몰입해 주어 너무 보람찼다. 모임이 끝나고 참가자들이 '잘 될 것 같다', '또 참여하겠다'라고 해주어 기뻤다. 그때 나는 은연중에 알았다. 재미있는 세계가 꼭 티브이 안에 있는 것만은 아니구나. 네모 박스를 나와도 내 꿈을 실현시킬 수 있구나. 


첫 모임을 시작하고 5개월이 흘렀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초보 호스트이지만 팔로워 200명을 넘기고 모임 콘텐츠만 7개를 만들었다. 타 모임 플랫폼 <넷플연가>에서도 모임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내 경험을 혼자 간직하는 것보다 브런치를 통해 모두에게 공유해보고자 한다. 나처럼 꿈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꼭 그곳만이 아니라도 우리는 가치 있을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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