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임장을 시작한 지 1년이 넘었다. 그동안 15개가량의 모임 콘텐츠를 만들었다. 그리고 요즘 한 회당 70만 원 수익을 내는 모임 <문제적 연애남녀>를 집중적으로 운영 중이다. 가까스로 돈이 줄줄 새는 통장 상황을 면하고, 수익과 지출의 숫자를 맞출 수 있게 되었다. 1년 전에 비교해서는 많이 성장했지만, 걱정도 생겼다.
첫째, 모임 제작 원동력을 잃었다. 이전에는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소규모 모임 위주로 만들었다. 하지만 대규모 모임 한 번으로 70만 원이라는 수익을 올리자 더 이상 소규모 모임을 만들고 싶지, 않아졌다. 굳이 소규모 모임을 만들어 대관비의 리스크를 감당해야 하나 생각이 든다.
그러면 똑같이 대규모 모임을 하나 더 만들면 되지 않느냐? 이것도 어렵다. 아이디어가 생각나지 않는다. 남들이 하는 평범한 모임은 경쟁력이 없다. 예능 작가 출신의 모임장한테 요구할 수 있는 획기적인 모임이어야 수익을 낼 수 있다. 하지만 다음 모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문제적 연애남녀>는 소규모 모임에서 통했던 모임 콘텐츠들이 대규모 모임으로 됐던 경우다. 하지만 지금은 소규모 모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고, 의욕도 나지 않는다.
이전에는 내 아이디어를 담은 대규모 모임을 만들고 싶었고, 해당 목표만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렇게 <문제적 연애남녀>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고 난 뒤 나는 이제 뭘 해야 하나 싶어 허무함이 느껴진다.
둘째, 불안하다. 그나마 <문제적 연애남녀>로 수익을 유지하고 있지만, 콘텐츠가 언제 없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실제로 모임 정원이 안 모인 적은 10번 중 딱 한 번이지만, 참가자들이 늦게 차거나 성비가 너무 차이가 나면 불안감 때문에 참가자 현황만 계속 확인하게 된다.
셋째, 소규모 모임보다 만족감이 적다. 소규모 모임은 재미있다. 적은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그들의 온기를 느끼는 보람이 있다. 하지만 대규모 모임에서 나는 모더레이터 역할일 뿐이다. 호스트의 존재는 적게 하고, 게스트들만의 관계가 증대될수록 좋은 모임이 된다. 수익적인 만족감은 크지만 모임에 참가하여 참가자들과 관계를 쌓을 수는 없다.
내가 가진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례도 찾아보고, 커뮤니티 사업 모임도 참여해 봤다. 나만의 커뮤니티도 만들어봤지만, 아직 성과는 없다. 지금 내가 갈 수 있는 방향을 정리해 봐야 하는 필요성을 느꼈다. 나에게는 여러 가지 옵션이 있다.
먼저, 내 커뮤니티 운영하기. 창의적인 모임을 만들고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커뮤니티를 만들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불안정한 수익도 해결되고 모임에 대한 재미와 의욕을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최근 지인들이 모인 50명 규모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모임을 올려봤다. 하지만 아직 참가자는 없다. 과연 ‘아이디어’와 ‘경험’이 우선시되는 커뮤니티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두 번째로, <문제적 연애남녀>의 규모를 늘릴 수도 있다. 내가 만약 ‘수익’만 좇는다면 해당 모임을 키우는 게 가장 좋은 결정이다. 이미 다른 모임장들이 모임 콘텐츠를 인스타그램으로 지원을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레퍼런스도 있어 그 과정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만약 일이 잘 되고 통장 잔고에 돈이 차면 조금 더 안정감을 느낄 수 있겠다. 그리고 그 돈으로 커뮤니티를 더 키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아직 내가 돈이 급하다거나 커뮤니티 운영에 큰돈이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규모 확장에 확신이 들지 않는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는 뾰족한 방법이 아니라,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기도 하다.
세 번째로, 나 자체를 브랜딩 하는 것이다. 예능작가로 7년, 모임장으로 1년 동안 콘텐츠를 만들었다. 이런 경력을 잘 브랜딩해서 다른 크레이이터나 기업과 협력을 하거나 강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협력’이란 건 어떻게 실현이 될지 구체적으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강의’가 안정적인 수입은 맞겠지만, 내가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도 모르겠고, 흥미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강의’만을 목적으로 하기엔 동기부여가 약하다.
모임을 시작하고 가장 높은 수익을 벌고 있지만 공허한 마음은 지울 수 없다. 다음 목표를 위해 나아가야 되는데, 내가 지금 갈 수 있는 지점, 가고 싶은 지점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