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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Aug 27. 2023

카이스트를 거쳐 하버드까지, 김명호 교수님

한의사, 한방내과 전문의,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하버드 박사후연구원에 이르기까지!
하나만 해내기도 힘들 것 같은 이력들을 모두 갖고 계신 김명호 교수님을 만났습니다!
교수님의 한의대 시절, 연구자, 그리고 현재 교수님으로서의 생활까지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약력]

동국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한방내과 전문의

한국과학기술원(KAIST) 의과학대학원 박사 (의과학 전공)

미국 하버드 의과대학 부속 메사추세츠 종합병원 박사후 연구원

(현)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한방내과 교수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현재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한방병원에서 한방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는 김명호입니다. 임상 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진료하고 연구하며,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Q. 현재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시나요?

A.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오후 하면 보통 11타임입니다. 저는 그중에서 8타임을 진료합니다. 쉬는 타임이 세 번 있는 셈이죠. 그 외에는 다 진료시간인데, 진료시간에도 진료만 하지는 않아요. 수업 준비도 하고 연구계획서도 쓰고 연구 관련된 회의도 합니다. 지금은 방학이라 조금 여유가 있는데 학기 중에는 강의 관련해서 준비할 것이 많아요. 한 마디로 진료와 교육, 두 가지 일정을 소화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학창시절>

Q. 교수님께서 한의대에 진학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요즘 한의대생들은 조금 덜할 수도 있는데, 저는 어렸을 때 병원도 병원이지만 한의원을 되게 많이 다녔던 것 같아요. 보약 같은 것도 자주 먹었고, 발목이 삐든 비염이 심하든 한의원에 자주 갔었어요. 그래서 사실 수능 치고 대학을 지원할 때쯤, 의대 갈 수 있는 성적대가 나왔고 공대 쪽도 고민해보긴 했어요. 그런데 의학 계열 쪽에서 선택을 한다고 하면 뭔가 한의학 쪽이 더 끌린다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의 경험도 있고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얽혀서 한의대를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성적에 맞춰 온 것도 있지만 어느 정도는 저의 경험과 성향도 고려해서 내린 선택이었죠.


Q. 학부생 시절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셨는지 궁급합니다!

A. 제가 예과 2학년 1학기 때 뒤에서 3등을 했어요(웃음). 예과 때까지는 그냥 열심히 놀았고 여러 가지 동아리 활동도 많이 했었습니다. 공부에 크게 관심이 있지 않았어서 주변에 휩쓸려서 살다가 어느 날부터 공부를 좀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조금씩 공부에 관심을 가지면서 공부를 좀 했고 그래서 졸업을 할 때 중상위권 정도로 졸업을 했어요. 공부를 되게 열심히 하는 학생은 아니었고, 그냥 하고 싶은 공부 하면서 즐겁게 지냈던 것 같아요. 수련 생각도 딱히 없었어요. 본과 4학년 2학기부터 수련 병원을 지원하는데 그 전까지는 병원 갈 생각을 안 했어요. 그냥 '군대 갔다와서 개원해야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4학년 2학기가 되니까, 수련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하게 고민을 안 해봤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마침 그때 성적도 조금씩 올라와서 지원할 수 있는 성적도 되고, 수련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Q. 학부생 때부터 연구에 관심이 있으셨는지, 주로 어떤 공부에 관심이 많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예과 때는 학교 수업 위주로 하고 양방적인 내용은 당시에 별로 중요하게 생각을 안 했던 것 같아요. 시험 봐야 되니까 시험 공부 위주로 공부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장 관심 있었던, 가장 재미있었던 과목을 뽑으라고 한다면 방제학이에요. 지금도 저는 환자 진료하다 보면 딱 처방 하나만 정해서 그것만 쓰지는 않아요. 환자 상태에 따라서 가감도 하는 그런 과정이 재밌다고 느꼈습니다. 학교 수업 외에는 동의보감 연구회라고 방학마다 하는 스터디캠프가 있는데, 거기를 본과 4학년 때까지 네 번 정도 갔었던 것 같아요. 요즘도 동의보감 보면서 처방도 정하고, 어떤 환자의 생리 병리적인 부분도 동의보감을 보면서 고민하곤 해요. 


 

<한의과학자>

Q교수님께서 전문의 수료를 하고자 결심하신 계기가 있는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내과를 수련하기로 하신 이유가 있는지 궁급합니다.

A. 아까와도 이어지는 답변인데 전문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던 큰 계기는, '내가 지금 의료인으로서의 소양이 갖춰져 있나?'라는 고민이었어요. 이렇게 국가고시만 딱 합격하고 나갔을 때, 내가 실전적으로 할 수 있는 의료인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동국대 한방병원같은 경우에는 양방이랑 같이 있어서 병원 실습을 하다 보면 양방이랑 접할 기회가 많아요. 양방이랑 같이 있는 환경에서 수련을 하면 꼭 한방 위주의 진료 소양뿐만 아니라, 양방 지식까지 포괄하는 균형 잡힌 의료인으로서의 소양을 갖출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련을 선택했습니다. 그 목적은 잘 이루어진 것 같아요. 양방측에 협진을 의뢰하면  합리적으로 답변도 해주고 설명도 해줘서, 그런 부분에서 많이 배웠습니다. 차트를 보고 병동 환자를 관리하면서 무슨 진료를 받는지, 약물이 어떻게 나왔는지, 무슨 검사를 했는지 이런 것들을 볼 수 있는 되게 좋은 환경이었어요. 정리하자면, 의료인으로서 양방 지식을 포함한 소양을 갖추고 싶어서 수련을 지원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중에 내과를 선택한 이유는 제 성향과 관련되어 있는데, 저는 원래도 인문학 철학같은 것을 좀 좋아하는 편이에요. 질환을 볼 때도 내과적인 질환에 관심이 많았고 '왜 이렇지? 어떤 기전으로 그렇지?' 그런 걸 늘 궁금해하는 성향이었습니다. 지금 로컬 한의원에서는 근골격계 질환을 많이 보는데, 제가 졸업할 때만 해도 한의원 내원 환자는 근골격계 질환과 내과 질환이 반반이었어요. 근골격계도 잘해야되지만 내과적인 질환도 잘 봐야된다라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도 마찬가지로 '한의학은 내과지'라는 마인드가 은연 중에 있었어서 내과를 선택하게 된 것 같아요. 


Q. 교수님께서는 전문의로서 임상을 하시다가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 즉 기초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드셨는데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A.  두려움이 아예 없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크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카이스트에 갔었던 이유가 연구에 대한 궁금증 때문이었어요. '연구를 제대로 하는 건 어떤 걸까?' 그런게 궁금해서, '나도 배워보고 싶다'하는 마음으로 갔었습니다. 실제로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꼭 해보고 싶었던 일이라 두려움이 그렇게 크지는 않았습니다. 분명히 힘들었고 배우고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할 만 했습니다.

 

Q. 카이스트 의과학대학원이나 하버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하시면서도 한의학과 관련된 연구를 하실 수 있었나요?

A. 일단은 단정적으로 얘기를 하면 거의 없었습니다. 카이스트에서는 연구실 소속 없이 입학을 해서, 랩 로테이션을 통해서 여러 랩과 연구 분야를 경험해보고 몇 개월 후에 분야를 정하는 시스템이었거든요. 저는 진세노사이드(ginsenoside), 인삼의 구성 성분 중 하나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었던 간 질환 연구실에 들어갔어요. 그래도 나는 한의사니까 진세노사이드에 관련된 연구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그 실험실을 선택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 연구실이 한약에 관심이 있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간 질환 연구실이니까, '간 질환에 있어서 진세노사이드가 큰 효과가 있는가? 기전은 무엇인가?' 그런 식의 접근이었기 때문에 한의학적인 연구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미국에서도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어요. 그래서 카이스트를 거치고 미국에 가서 연구하다 보면서 그래도 나는 한의학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어서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결정을 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카이스트나 하버드 매사추세츠 종합병원에서 감질환 연구를 많이 하셨는데, 특별히 간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많은 연구를 하게 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A. 카이스트에서 제가 간 질환 연구실을 선택했기 때문에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간 질환 연구실을 선택한 이유는 간에 대단한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아까 말했던 랩 로테이션을 하다보니 지도 교수님이나 연구실 분위기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여기가 제일 괜찮다라고 생각이 들어서였거든요. 어쨌든 그런 선택을 함으로써 '카이스트에서 기초 연구를 배우고 싶다'라는 목적은 달성은 한 거니까 그 점에서는 굉장히 만족을 해요. 그런데 이제 간 분야에 한정해서 연구하기보다는, 앞으로는 간을 포함한 소화기 내과라는 분야를 조금 넓히고 싶어요. 양방에서는 간이 소화기 내과에 포함이 되잖아요. 지금은 저도 암쪽으로 연구를 하고 있으니까 간 자체보다는 소화기 내과 전반적으로 연구하고 싶습니다.


Q. 지금까지 진행했던 많은 연구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연구가 따로 있으실까요?

A. 크게는 두 가지가 있어요. 

둘 다 미국에서 했던 건데, 하나는 코로나와 관련된 연구였어요. 제가 2019년 11월에 미국에 갔는데 코로나가 딱 터졌어요. 그래서 다음해 3월부터 6월까지 연구실을 못 나갔어요. 그 전에도 들어간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실험 좀 세팅하는 정도였는데, 이제 그마저도 못 나가게 된 거예요. 그래서 되게 막막하던 와중에 랩에서 코로나 관련된 연구를 하게 됐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다들 안 하려고 하길래 그냥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코로나에 걸린 사람들의 중증도에 따라서 면역 반응이 어떻게 다른지를 환자의 혈액 샘플을 가지고 분석하는 연구였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시의성이 있고 되게 재밌게 했던 연구여서 기억에 남아요. 

두번째는 조금 기초 연구이기는 하지만 고지혈증 치료제 스타틴(statin)에 관한 연구였어요. 스타틴이 기존의 후향적 임상 연구를 통해서 여러 가지 암을 예방할 수 있다라는 결과가 많이 나오고 있잖아요. 그래서 스타틴이 어떻게 왜 간암을 예방할 수 있냐는 연구를 했었는데, 같은 스타틴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성분에 따라서 한 8가지가 있거든요. 그런 것들 중에서 유독 어떤 두 개, 지질성 스타틴이 친수성 스타틴보다 간암 예방 근력이 더 높았어요. 연구를 해보니 다른 스타틴들에 비해서 작용하는 타켓이 여러 개였다는 걸 알게 되었죠. 결국 한약도 멀티 컴파운드 멀티 타겟이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연구했던 이것도 더 다양한 타깃에 작용을 해서 더 효과가 좋다는 말인데, 결국 한약도 똑같은 건데 여기서 이걸 연구하기보다는 한약을 연구해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어서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Q. 활발하게 연구 활동을 하시는 원동력이 있으실까요?

A. 수련의를 마치고 연구를 하러 갔던 이유 중에 하나가 결핍이었어요. 한의학의 한계, 부족한 점에 대한 결핍을 느꼈고 레지던트 1년 차 때까지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병원에 양방이랑 같이 있다 보니까 배울 수 있는 건 많은데 내가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한계를 되게 많이 느꼈거든요. 양날의 검이었던 셈이죠. 환자가 조금 상태가 안 좋아져서 양방적인 처치가 필요한 것은 명확한 사실이고, 나는 어느 정도 선에서는 이 사람한테 뭐가 필요하다는 걸 알지만 내가 할 수 없는, 그 좌절감이 되게 컸거든요. 그런데 일단은 하던 걸 끝내야지 하는 생각에 수련을 마쳤죠. 근데 어쨌든 이 결핍은 사라지지가 않으니까, 우리가 직역의 문제로 할 수 없는 것은 그렇다쳐도 과학적인 부분들은 누군가 해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답답해서 차라리 내가 조금이라도 하는 게 내 속이 편하겠다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연구를 하게 됐고 그게 계속 원동력으로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물론 쉽지 않고 오래 걸릴 수도 있겠지만, 한의학이라는 것을 얼마나 과학적인 언어로 설득하여 현대 사회에 통할 수 있게 만들어내느냐는 이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에서의 박사후연구원>

 

Q. 교수님께서는 뉴욕에서 포닥 과정을 밟으셨는데 미국에 가기로 결심하신 계기가 있으셨나요?

A. 두 가지 정도입니다. 

하나는 이제 대학원 박사 과정 하면서 시행착오가 많이 있었어요. 박사학위를 따긴 했지만 내가 박사로서, 주도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인지에 대한 의문이 많이 들었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제 겨우 딱 그 문턱을 넘은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한 거죠. 박사로서 내게 주어진 과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경험을 좀 해보고 싶었어요. 그게 보통 포닥의 과정이니까, 그래서 포닥을 하려고 생각을 했던 거예요.     

두 번째로 굳이 해외로 갔던 이유는, 내가 거기서 몇 년 정도 돈을 벌면서 해외 생활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갔었어요. 집에 돈이 많으면 일 안하고 그냥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스스로도 딱히 그런 걸 바라는 사람은 아니라서요. 그래도 내가 스스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해외로 나가야지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이고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저보고 맨날 홍길동 같다고 그러셨거든요. 동의보감연구회같은 활동 외에도, 본과1학년 때 합창 동아리 회장도 했었어요. 회장 하면 이래저래 사람들 만나러 다니잖아요. 방학 때면 선배들 막 찾아다니고 스터디 하러 다니고. 그러니까 방학 때 어딜 그렇게 싸돌아다니냐 그러셨어요 (웃음). 그때는 뭐랄까 회장으로서 약간 주어진 과제였기도 했지만 지금 와서 보면 저는 늘 바깥 세상에 대한 궁금증이 있는 것 같아요. 카이스트도 그러한 계기로 가게 된 것 같아요. 미국도 내가 그런 곳을 가면 새롭게 느끼고 배우는 게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늘 했었어요. 미국은 완전히 다른 환경이잖아요. 그런 환경에서 배우는 것도 많고요.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부딪힘으로써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되게 좋은 계기도 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미국에서의 삶은 한국이랑 완전 다른데 미국의 어떤 문화나 부분들은 한국보다 되게 좋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그 환경 속에서 내가 잘 몰랐던 나의 모습도 발견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덧붙이자면, 보통 미국에 포닥을 가더라도 미국 중부 이런 곳을 목표로 하면 엄청 쉽게 갈 수 있거든요. 그럼에도 하버드 의대 병원으로 가려고 했던 거는 아까 얘기했던 것처럼 뭔가 보고 배운다는 의미에서 선택했었어요. 그래도 큰물로 가야 배우는 게 많을 것이다 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하버드 의대로 가게 되었습니다. 카이스트로의 진학도 그렇지만 하버드도 그렇고 이게 뱀의 머리보다는 용의 꼬리가 이득이 되는 게 많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내가 갈 수 있는 최선의 환경으로 가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Q. 보스턴에서의 생활은 어떠셨나요?

A. 일단 되게 좋았어요! 어쨌든 나는 일을 하는 입장으로 갔었던 거지만, 근무 환경이 한국에 있을 때보다 훨씬 좋았거든요. 카이스트에 있었을 때는 같은 연구를 하더라도 학생이었고 미국에 갔을 때는 박사로서 갔잖아요? 이게 한국에서도 그렇지만, 박사 학위를 딱 따면 사람들의 대우가 좀 달라져요. 지도교수님도 이제 김 박사라고 부릅니다 (웃음). 그리고 미국에는 박사로서 온 거니까 어느 정도 동등하게 대우를 해주는 것도 있고요. 미국이 원래도 수평적인 문화라서 일하기도 되게 편했죠. 또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근무 시간도 자율적으로 할 수 있었고요. 내가 할 일만 다 하면 내가 뭘 하든 상사도 상관하지 않으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는 일 열심히 해놓고 주말에는 눌러가고요. 아니면 주중에도 실험이 있다고 해도, 오전에 잠깐 실험실 나와서 일 했다가 오후에는 집에 와서 일을 하거나 놀거나 그럴 수 있었어요. 그런 자율적인 근무 환경이다보니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거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회사생활을 하든 이렇게 포닥으로 일을 하든 간에 본인이 하기 싫은 일을 하게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게 많은데요. 하버드 의대같은 곳은 부잣집이라서 그런지 그런 일도 좀 덜했어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하면서 즐겁게 할 수 있었거든요. 저는 딱 만 3년이라는 기간을 정해놓고 갔었어요. 한국에 돌아오겠다는 생각을 하고 미국에 갔었거든요.  이런식으로 기간을 정해놨었으니까, 이 시간 동안은 어쨌든 내가 열심히 일 하고 열심히 놀야야지, 하고 갔던 거라서 더 즐겁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카이스트 졸업 후에 해외에 포닥으로 나가는 준비과정이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A.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요. 미국에 대학원생으로 간다고 하면 준비할 거 많잖아요? GRE 시험도 쳐야 하고, 준비할 게 뭐가 많아요. 미국 네이티브들, 특히 바이오분야는 대학원 과정을 잘 안하거든요. 그냥 학부 졸업하고도 일할 곳이 많기 때문에 그래요. 진짜 학문적으로 관심 있는 사람들이 주로 대학원을 하려고 해요. 늘 바이오 쪽에는 박사급 연구원이 부족해요. 그걸 다 한국이나 중국, 인도같은 외국에서 충당을 하죠. 하지만 분야는 맞아야 해요. 그 연구실에서 하는 연구 분야와 필요로 하는 능력을 가져야 하죠. 그렇게만 되면 경쟁이 엄청 치열하지는 않은거죠. 물론 미국의 인기 있는 곳에 가려면 이야기가 다를 순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이야기했을 때는 대학원을 가는 것보다는 포닥으로 나가는 게 훨씬 편합니다. 시험도 없지! 돈도 벌지! 


Q. 미국에서 포닥 과정을 밟으시면서 주로 어떤 업무와 연구를 진행하셨나요?

A. 기초 실험 즉 세포 실험 연구도 하고, 동물 실험도 했죠. 그런데 미국에서 병원이라는 기관으로 포닥을 가게 된 이유는 임상과 관련된 연구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이었어요. 다행히도 그런 환자 샘플 분석도 하고 임상 시험에도 참석을 해서 결과 분석도 했어요. 의학 분야에서는 할 만한 연구를 다양하게 했던 것 같아요. 세포 실험, 동물실험, 임상 시험 등등 모두 다양하게 했었어요.


Q. 미국에서 같이 일하셨던 분들이나 일반 미국 사람들이 한의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A. 한의학이라고 하면 그냥 한국의 전통 의학 그렇게 생각을 하고요. 조금 관심 있는 사람들은 어쨌든 보완 대체 의학의 하나로서 관심이 있어서 논문을 찾아보는데요. 요즘 중국에서도 근거가 이만큼 있다 없다와 같은 논문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어떤 약이 어느 질환에 효과는 있네. 근데 아직 조금은 근거가 부족하네?” 그 정도로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우리(한의사)가 보는 연구 결과 그대로 비슷하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래도 관심이 좀 덜하죠. 아무래도 근거 수준이 조금 낮다 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저를 소개할 때 MD라고 하는데, 여기에 'Korean traditional'을 붙여요. 'Korean medicine' 하면 못알아 듣거든요. "MD인데 Korean traditional에 speciality를 가지고 있다."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러면 "아 그래~ 너는 이제 의료인인데 주로 전통 의학 쪽의 intervention을 하는구나." 그렇게 이해를 하거든요. Herbal medicine이나 Acupuncture 이야기를 하면 중국인 포닥이 많으니까 알아듣는 편이죠. 그 분들은 중의사들을 아니까요. “그렇구나. 중국에서도 중의사 있고 의사 있는데 너는 한국에서 전통의학 분야를 하는 사람이구나.” 그렇게 생각을 하죠. 제가 있던 연구실도 결국 병원이니까 포닥들 중에 MD 출신이 있거든요. 프랑스 MD인 분이 있었는데, 이 사람도 기초연구를 계속하면서 경력이 오래되어 거의 조교수급인 분이 있었어요. 프랑스에서 MD인데도 미국으로 와서 계속 연구를 하는 거죠. 시리아에서 온 MD도 있고, 중국에서 온 MD도 있어요. 다 비슷한 레벨로 보는 것 같아요.

*MD: Doctor of Medicine, 의학 박사


Q. 미국이나 한국에서 연구를 하시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은 어떤 순간이셨나요?  

A. 첫 번째는, 어쨌든 연구라는 게 어떤 것을 증명하는 게 하나의 목적이잖아요. 어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했는데 이게 내 생각대로 안 된다면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죠. 실험이 잘못됐는지, 내가 진짜 잘못된 가설을 세웠는지. 실험을 하다보면 그런 식의 실패를 되게 많이 하거든요. 실험을 하다 보면 그 실패를 극복하기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과정이 굉장히 괴로워요. 그런데 이건 기초 과학자들이랑 차이인 것 같아요. 이 분야 사람들은 그러한 시행착오를 겪어가면서 극복을 해서 결국 해내면 아주 만족감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정도는 아니었어요. '이제 드디어 하나 끝냈다. 이제야 됐다.' 그냥 그 정도의 느낌이었었거든요.
두 번째 어려웠던 것은, 제가 대학원생에서 포닥으로 가고 지금 이제 교수까지 왔으니까, 조금 더 독립적인 연구자로서의 어려움인데요. 아무래도 이제 과제를 따야 되는데 과제 따는 게 그것도 경쟁이고 성공률이 높지가 않기 때문에 실패를 계속 경험을 해야 된다는 거에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려고 하지만 어쨌든 실패를 계속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건 꼭 연구자가 아니더라도 다 겪는 경험일 것 같기는 해요. 그래도 어렵더라구요. 연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과제를 지원했다가 실패를 하는 경험이 힘든 것 같아요. 이게 또 돈이 없으면 연구를 하고 싶어도 못 하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요.

학생 때는 그냥 주어진 일만 하면 됐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돈이 없으면 연구를 할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인건비가 굉장히 커요. 사람이 있어야 업무를 하는데 사람을 쓰려면 또 돈이 있어야 하거든요. 돈을 벌기 위해 과제를 따야 하는 거죠. 원래는 연구비가 좀 있었더라도 연구원과 같이 일을 하다가 이 연구비가 점점 떨어지게 되면 과제도 계속 더뎌지고요. 연구비 규모가 유지가 안 되면 하던 연구도 잘 못하게 돼요. 그게 되게 힘든 것 같아요.



<양한방 통합암치료>

Q. 교수님께서는 현재 간보다는 암 치료를 주로 보고 계신다고도 하셨는데, 그렇다면 양한방 통합암치료에서 요즘 교수님께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시는 분야는 어떤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A. 아직 본격적으로 연구를 한다고 하기는 좀 어려워요. 이제 연구를 하고자 하는 분야라고 하면 한의학적으로 접근하는 암 치료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근거를 계속 만들어 나가는 그런 연구를 하고 싶어요. 가끔 항암수술을 받거나 항암치료를 받은 후 굉장히 컨디션이 안 좋은 환자들이 오거든요. 근데 그 환자들이 ‘항암치료하고 끝! 집에 가서 쉬세요.’라는 이야기를 듣고 나와요. 이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수가 문제도 있고 또는 양방치료로 딱히 해줄 게 없기도 해서 그냥 일단은 집으로 가셔라 이렇게 하는 거거든요. 다행히도 한의학에서는그런 컨디션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상황을 개선시켜줄 여지가 실제로 있다고 생각을 해요. 생각으로 끝낼 게 아니라 진짜 있다는 걸 계속 보여줘야 돼요. 이런게 연구의 원동력이 이기도 해요. 효과가 있다는 걸 제가 경험적으로 아는데, 이게 진짜 그렇다는 걸 근거로 보여주는 그런 연구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가는 거죠.


Q. 항암제나 방사선을 이용한 기존의 암 치료와 양한방 통합암치료는 뭐가 다른지, 또 주로 어떤 식으로 치료가 이루어지나요?

A. 암 치료도 크게 보면 두 가지죠. 하나는 진짜 종양 자체에 대한 치료가 있고 또 하나는 종양 외적인 증상에 대한 치료가 있어요. 여러 가지 항암 치료를 받은 이후에 동반하는 환자 상태를 관리해 주는 가이드라인이 있어요. 한방에서도 ‘암 관련 증상 한의 진료 지침’이 있는데 만성통증, 불면, 소화불량, 오심구토 등 7개 정도 증상이 있거든요. 이런 식으로 동반하는 증상을 잘 개선시켜줄 수 있는 치료가 있고 종양 자체에 대한 치료가 있어요. 증상에 대한 치료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진료 지침도 나올 정도로 어느 정도 근거가 있어요. 문제는 종양 자체에 대한 한방 치료는 조금 어려운 거죠. 제가 생각하는 가장 큰 한계는 제약회사 문제에요. 항암제는 대형 글로벌 제약사에서 개발을 한단 말이에요. 그런 큰 제약사에서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서 개발을 한 약을, 또 엄청난 돈을 쏟아부어서 대규모 임상시험까지 끝내고 항암제로 나오게 됩니다. 그 정도의 항암제와 비교해서 한약이 어느 정도 동등하다 아니면 훨씬 더 우월하다는 걸 증명한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그 정도의 돈을 쏟아 부으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얘기니까요. 아니면 정말로 효과가 엄청난 한약 물질이 나타난다면 대형 제약사에서 이걸 사간 후에 그들의 힘으로 임상시험 3상까지 끝내서 ‘이거 진짜 좋은 거야.’라고 나오지 않는 이상, 굉장히 힘든 일인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한약이라는 천연물이 단일 성분의 항암제들만큼의 효능을 나타내는 게 힘들 거라고 생각을 해요. 기존에도 어느 정도 보고가 되고 있지만 항암제와 한약 병용 치료를 하면, 단독으로 치료를 했을 때보다 훨씬 더 좋다라는 사실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 가능성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드러나고 있어요. 이를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근거로 만드려면, 적어도 국내에 있는 의사들이랑 같이 일을 해서 제약 회사에다가 제안을 한다거나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항암치료를 할 때 특정 한약물과 병용 치료를 했을 때 훨씬 더 좋다라는 식의 연구가 있으면 이게 굳이 양방의 영역으로 넘어간다고 생각할 문제는 아닌 것 같거든요.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서 환자 상태에 따라서 항암제 외의 다른 약이 필요하게 될 때, 한의과에서 선택할 문제다라는 식으로 협진의 의미로서 저는 병용 치료가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요약하자면 양한방 통합 암 치료는 증상에 대한 관리는 어느 정도 되고 있는 현재이지만, 조금 더 근거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한방 치료 단독으로는 종양 자체에 대한 치료가 어렵다 보니까 항암제와 함께 병용 치료를 하는 식의 치료가 필요할 거예요.


Q. 환자 입장에서 기존 암치료와 비교하여 양한방 통합 암치료를 선택했을 때의 장점이나 차별점이 있을까요?

A. 조금 러프하기는 하지만 지금까지의 연구들로 양한방 통합 암치료를 했을 때 생존율도 더 높고, 삶의 질도 더 높다라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어요. 예를 들어 폐암 환자 다 뭉뚱그려서 여러 가지 한약 치료를 받았을 때 생존율이 높고 삶의 질이 좋다. 이런 결과들이 나오고 있거든요. 좀 더 질환이 세분화돼서 나오면 좋겠지만 그래도 그 정도의 연구 결과라도 있는 건 되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직접적인 연구결과를 근거로, 암 환자들이 이런 종양 치료를 함에 있어서 병용 치료를 했을 때 치료 성과가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장점이나 차별점이라고 한다면 항암 치료 과정 중의 증상 관리의 부분에서는 한의학적인 치료가 분명히 차별성을 가진다고 생각을 해요. 결국은 삶의 질이라고 할 수 있겠죠. 장기적으로 보면 생존율도 높인다는 연구가 명확하고요.


Q. 한의계의 발전을 위해서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암치료 연구가 이루어지면 좋을까요?

A. 지금 로컬에 암 한방병원이 정말 많잖아요. 실제로는 한의학적인 방식으로 암을 치료한다기보다는, 어떻게 보면 보완대체의학적인 치료로서,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느껴지거든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의학적으로 진행하는 데에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아요. 저는 그 한계를 연구를 통해서 극복을 해내야한다고 생각해요. 면역력을 높여주는 주사 이런 것보다 '어떤 한의학적인 치료를 했을 때 어떤 부분이 더 좋아진다'라는 걸 연구를 통해 명확히 보여줄 수 있으면 우리가 설득력을 가질 수 있고 환자들한테도 더 도움이 될 수 있죠. 꼭 환자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런 연구 결과가 있어야 한의계 밖의 사람들도 ‘한의학 그냥 조금 효과 있네.’라는 생각에서 그치지 않고 ‘정말 이 치료는 의미가 있네.’라고 받아들여주겠죠. 그럴 수 있게 연구를 해야 하죠. '이 연구를 통해서 한의학의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연구에 임하고 있어요.



<현재 그리고 미래>

Q. 어떤 성향의 학생들이 기초실험 연구에 적합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답변하기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카이스트에 있었을 때는 진짜 기초 연구를 했거든요. 한의학 관련된 건 아니더라도 간질환이 생길 때 면역 세포들이 어떻게 병리적으로 작용을 하고 그 기전이 뭔지를 밝히는 연구였어요. 그런 연구 방법론을 배워가는 거는 재미가 있었는데 그 연구 자체가 재밌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국에 박사후연구원으로 나갔을 때는 병원으로 갔어요. 병원에서 연구를 한다면 임상적인 의미를 더 찾을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병원으로 가서 했던 연구는 물론 기초 연구적인 부분도 있었지만, 너무 깊이 있는 기초 연구보다는 임상적으로 생기는 의문도 해결하고 임상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연구가 대부분이었어요. 예를 들면 약물을 개발한다거나, 이 약물이 어떻게 어떤 기전으로 작용하는지와 같은 연구였죠. 그러면서 저는 스스로 기초연구보다는 중개의학이나 임상연구를 하는 게 더 맞는 사람이다라고 느낀 거죠. 그래서 어떤 성향의 학생들이 기초 실험 연구에 어울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카이스트에 있었을 때는 한의사, 의사같은 의료인들 뿐만 아니라 학부 때 생명과학을 전공했던 친구들도 있었거든요. 그 친구들은 좀 다르더라고요. 어떤 기전으로 작용하는지 과학적으로 너무 궁금해하더라고요. 이런 분야에서 이만큼 밝혀져 있다고 하면, 밝혀져 있지 않은 부분이 너무 궁금하다는 거예요. 저는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부분에서는 즐거움을 잘 못 느꼈던 거죠. 기초의학 연구에 관해서는 저보다는, 한의대가 아니더라도 기초 연구에서 즐거움을 느끼고 계속 해나가는 분들이 더 잘 이야기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기초연구를 비롯해서 연구 전반에 이미 관심은 있다.'라고 한다면 저와 같은 길을 가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수련을 하면서 약간의 기초 연구를 경험하고, 임상에 있으면서 기초 연구하는 분들이랑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역량을 갖춘 임상의라면 또 할 수 있는 역할이 되게 많은 것 같아요. 실제로 한의계에서도 기초만 하시는 분들뿐만 아니라 임상까지 하시는 분들이 잘 할 수 있는 그런 과제들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각자의 성향에 따라서 만약에 저처럼 기초 연구에 별로 의미를 못 찾는다고 하면 임상을 같이 할 수 있는 연구자가 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Q. 교수님과 같은 길을 걷고자 하는 학생들한테 혹시 해주고 싶은 말씀 있으실까요?

A. 학생들에게 수련의 생활을 하면서 기초연구도 전일제 대학원생만큼 해내라는 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임상이라는 아이덴티를 가지고 있으면서 기초 연구를 어느 정도는 잘 알고, 그러한 기초 연구자들과 같이 연구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출 수 있는 길을 갔으면 좋겠다라고 얘기를 해 주고 싶어요. 그런데 결국은 그런 길이 잘 다져져 있어야 후학들이 갈 수 있는 거니까, 저를 비롯한 몇몇 뜻 있는 사람들이 그 길을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 길이 있어야, 미래가 좀 보여야 학생들도 이 길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는 거니까요.


Q. 한방 공부 중에서 특히 어떤 것을 공부하면 좋을지 추천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A. 정말 개인적인 생각으로 <동의보감>이랑 <동의수세보원> 이렇게 두 가지를 다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임상을 하면서 두 가지를 늘 참고하거든요. <방약합편>의 경우는 너무 처방집이잖아요. 뭔가 한의학적으로 생리적, 병리적 사고를 하면서 약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런 처방집보다는 좀 더 스스로 공부를 하고 활용할 수 있는 책이 좋을 것 같아요. <상한론> 같은 책도 좋긴 한데 저는 개인적으로 관심이 덜해서 잘 안 쓰는 것 같아요. <동의수세보원>을 말해보자면, 제 진료 특성 상 저는 사상 체질을 딱 감별해서 쓰지는 않아요. 소음인과 소양인이 쓰는 약이 다른데 환자를 보다 보면 소음인이지만 소양인의 약을 써야 될 만한 상황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여러 가지 처방이나 본초를 보는 데 있어서 소양인이니까 소양인이 쓰는 약이라는 생각보다는 청열약, 보중익기, 이수삼습, 이기약처럼 처방들을 각각 구분해서 언제 어떻게 필요한지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 있어서 <동의수세보원>이 편해요. 수세방의 연장선 상에서 <동의보감>을 말씀드린 건데 <동의보감>을 보다보면 너무 본초가 많이 들어가는 그런 처방들이 있어요. 이렇게 본초가 많이 들어가서 이게 다 효과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것도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하지만 실질적으로 쓰기 위해서는 <동의수세보원>이 참고하기가 좋죠.


Q. 앞으로 한의사이자 연구자교수로서의 next step은 무엇이며 교수님께서 꿈꾸는 일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요?

A. 저는 제가 하는 일을 진료, 연구, 교육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진료는 결국 연구랑 이렇게 좀 붙어 있는 것 같아요. 진료의 측면에서 단순히 ‘잘 치료하는 사람’ 이런 건 누구나 할 수 있고 이미 잘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저는 조금 더 연구와 결합을 시켜서 연구와 관련된 환자들을 위주로 보면서 진료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특정한 질환에서 한의학적인 치료가 실제로 효과가 있다는 걸 보여주는 연구를 하고 싶어요. 그게 환자들한테도 도움이 되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세상을 어떻게 바꿀까라는 측면에서는 제가 최근에 자주 드는 생각을 말씀 드리고 싶네요. ‘조선시대 때 의사들이 중인이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의사는 세상을 바꾼다기보다는 그냥 사람들을 건강하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오히려 세상을 바꾸는 건 정치의 능력인 것 같아요. 사실 우리 한의사들이 겪는 어려운 점에 사회 정책적인 것들도 포함이 되잖아요. 그래서 세상을 대단히 바꾼다기보다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게 도와주는 정도가 우리가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만으로도 저는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해서 세상을 바꾼다는 표현은 저에게 너무 거창한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교육자로서는 내가 연구나 진료에 있어서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학생들한테도 잘 가르쳐서 이를 따르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도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할 수 있도록 양성을 하는 게 저의 next step이에요. 사실 원래 교육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학교에 와서 학생들 보고 하다 보니까 교육도 되게 보람이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일단 한의대생들이니까 다 나 같이 연구에 관심 있는 사람은 아닐 거잖아요. 저의 연구가 이런 학생들이 후에 한의사 일을 할 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 또 한편으로는 나랑 뜻이 맞는, 연구와 진료를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을 잘 커나갈 수 있도록 선배로서 길을 마련해주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Q. 혹시 한의대생들에게 전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A. 양방도 잘 알고 한의학도 잘 아는 그런 사람이 한의사가 되도록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해주고 싶네요. 요즘은 이 말의 의미가 옛날과 반대가 된 것 같은데 요즘 특히 통증을 보는 의사들이랑 경쟁을 많이 하잖아요. 근데 한의학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있는데 그거를 너무 등한시함으로써 오히려 우리가 살릴 수 있는 차별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거든요. 물론 아직 많은 연구가 필요한 상황이긴 하지만 어쨌든 한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자 한다면 한의사만의 아이덴티티를 잘 살릴 수 있게 공부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연구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라면 학생 때부터 연구라는 분야가, 또 한의학이라는 분야가 나랑 맞는지 안 맞는지 경험도 해봐야 할 것 같아요. 만약 나랑 맞는다고 하면 로컬에 나갔다가 대학원에 다시 오는 것과 같은 시행착오를 덜 겪을 수 있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이 이제는 그냥 한의사라고 해도 살아남기가 되게 힘든 상황이거든요.  그러면 결국 그냥 한의사가 아니라 무엇을 하는 한의사처럼 수식어가 붙어야 차별성을 나타낼 수 있는 거예요. 그러려고 한다면 한의대라는 울타리 내부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다녀야해요. 내가 한의사인 것 외에 장착할 수 있는 무기가 무엇인가라는 걸 학생 때부터 생각을 해야할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평균적인 한의사들에 비해서는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거죠.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하면 양한방 공부 다 열심히 하고 연구나 한의대 밖의 세상에도 관심을 가지고 경험을 좀 많이 해보면 좋을 것 같다는 얘기를 하고 싶네요.


Q. 저희 [대신만나드립니다]가 다음에 인터뷰하면 좋을 것 같은 분이 있다면 추천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A. 먼저 통합암치료 분야에서는 방선휘 원장님을 추천드리고 싶어요. 통합암치료 쪽에 뜻이 있으셔서 대전대 유화승 교수님께 따로 수련을 받고 지금 한방병원을 하고 계시거든요. 물론 로컬에 계셔서 연구를 엄청 활발하게 하시지는 못하지만 연구에 관심이 많으시고 한의통합암한의학회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시는 분이에요. 

그다음에 해외 연구 분야에서는 해외로 나가서 한의사로서의 아이덴티티를 살린 사람과 아예 새로운 길로 나아간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어요. 먼저 아예 새로운 길로 나간 사람으로는 제 동기 중에 김홍석이라는 친구가 있어요. 공보의를 하다가 통계 석사를 받고 존스홉킨스에서 또 석사를 받고 브라운에서 박사를 받은 상태인데 지금은 컨설팅 회사에서 대형 제약사의 외주를 받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하고 있거든요. 본인의 길을 새로 찾아 떠난 케이스라고 보면 돼요. 임상과 연구를 같이 하고 계시는 분으로는 동국대에 김호준 교수님이라고 있어요. 한방 재활과에 있으신데 한방 비만 학회에서 활발한 활동도 하고 계시거든요. 국내에서 초창기에 장내 미생물 연구도 좀 하시고 연구를 활발하게 하시는 그런 교수님이셔서 추천드리고 싶어요. 아니면 그 밑에서 연구하고 계신 한경선 박사님도 추천드리고 싶어요. 저희 아내인데 한방 재활과 전문의를 하고 한의약 연구원에서 한 4~5년 있었어요. 이 중에 한 3년은 저랑 같이 미국에 갔었는데 지금은 돌아와서 펠로우로 일하고 있거든요. 초기 단계 연구자이긴 하지만 제가 생각했을 때 여성이면서 연구와 임상을 동시에 하는 사람도 흔치 않으니까 만나보면 좋을 것 같아요. 


김명호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서 한의학의 근거를 세우기 위해 헌신하시는 분들의 노력에 대해 다시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의 미국 생활, 한의 통합암치료, 그리고 앞으로 교수님의 비전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인터뷰를 허락해주신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행보도 응원하겠습니다! 

Interviewer. 비버, 병아리, 플라밍고

Writer & Editor. 비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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