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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신만나드립니다 Mar 21. 2022

한의약 임상 중개 연구자, 임정태 교수님 (1탄)

한의약의 임상 근거를 만들고 설득하다

3월의 새 학기를 맞아, 대만드의 코알라와 앵무새가 익산의 원광대학교로 떠났습니다. 바로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에 계시는 임정태 교수님을 만나 뵙기 위해서였습니다. 
한의약 임상 근거를 만들고 설득하시는 '임정태' 교수님의 생생한 이야기를 지금 바로 전해드립니다!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의 임정태 교수님
[임정태 교수님 약력]

한방내과전문의 (세부전공 : 한방순환신경내과)

경희대학교 한의학석사 (임상한의학 – 한방내과학)

경희대학교 한의학박사 (임상한의학- 한의약임상연구학 전공)

주 연구 분야 : 한의 임상 중개연구 (Translational Clinical Research of Korean Medicine)

(전)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순환신경내과 전공의

(전) 거창군립노인요양병원 한방내과 과장 

(전) 경희대학교 한의약임상시험센터 연구교수

(전) 동신한방병원 진료교수/ 협진재활센터 부센터장

(전) 청연중앙연구소 연구개발팀장

(전) CY(한약재 제조, 유통, 원외탕전, 제약) 기업부설연구소 연구소장               

(전) 원광대학교 전통의학연구소 연구교수

(현)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한의예과 조교수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경희의료원 한방병원 한방순환신경내과에서 전문의를 취득했고,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에서 한의약임상연구학을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고, 현재 원광대학교 한의예과에 조교수로 있는 임정태입니다. 저는 스스로를 ‘읽고, 생각하고, 쓰고, 설득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제 블로그 프로필 (blog.naver.com/julcho) 에도 나와 있듯이 한의약이 보건의료의 어떤 부분에서 역할이 있고, 효과가 있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지 질적인 혹은 양적인 데이터를 만들고 입증해서, 왜곡된 인식을 바로잡는 일을 합니다. 한의약이 왜곡된 인식과 사다리 걷어차기로 인해 사장되는 것은, 사회적 손실이라는 믿음에서 저의 연구는 출발했지만, 그로 인해 편향된 주장을 하지 않고자 끊임없이 고민하는 연구자이기도 합니다. 쉽게 말하면 “한의약 임상 근거를 만들고 설득하는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외적으로는 한의약 임상중개연구자로 규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중개연구란, 비임상과 임상 연구 사이에서의 중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A.  네 흔히 중개연구라고 하면 ‘실험 연구’를 떠올리는 경우가 더 흔합니다. 제가 수행하고 있는 한의 임상 중개연구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중개연구와는 조금 다르지만 “증례연구와 임상시험 사이의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모든 연구”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최종적으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RCT)을 통해 치료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를 밝혀내야 하는데, 이것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데 필요한 기반이 되는 연구를 수행하는 것입니다. 

 제가 처음에 대학병원에서 임상 연구를 시작했는데, 당시에는 임상시험 초창기여서 시간에 쫓겨 디자인을 짜고 환자를 모아서 임상시험을 했는데 다 효과가 없다는 결과가 나오는 거예요. 되돌아보면 깊은 고민 없이, 너무 겁 없이 바로 무작위 대조 임상시험을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서, <편두통에 한약을 썼을 때 치료효과를 알아보는 임상시험>을 하려면 ‘어떤 약을 사용할지’, ‘치료 기간을 얼마나 할지’, ‘하루에 몇 번 복용시킬지’. ‘두통의 통증/빈도/동반증상 등 어떤 평가지표에 영향을 주는지’, ‘연령, 성별, 중증도에 따라 누구에게 가장 효과적인지’, ‘얼마나 추적관찰을 해야 하는지’ 등을 모르는 상태에서 바로 임상시험을 진행하면 안 되는 것이죠. 그래서 이것을 소수의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증례연구부터 시작해서, 기존 한방 병·의원 자료를 통해서 차트 리뷰하거나, 체계적 문헌 고찰과 메타분석을 하거나, 치료 경험이 있는 의사/환자들에게 심층 면담이나 설문 연구를 하는 등의 여러 임상 중개연구를 진행하여 얻어진 통찰을 통해, 잘 짜인 RCT를 디자인할 수 있도록 증례연구랑 임상시험 사이에서 ‘중개’하는 것입니다. 

증례연구와 임상시험 사이의 '중개 연구', 먼 곳을 이어주는 '연결 다리'가 생각이 나네요!


Q. 교수님의 하루/ 일주일 일정을 알려주세요.

A. 청연과 씨와이에서 일하다가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회사를 나오고, 올해 2월까지는 연구교수로 일하면서 거의 프리랜서, 1인 연구 기업이나 마찬가지였죠. 올해 3월 원광대학교에 임용되기 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나서, 네트워크 메타분석, 건강보험 빅데이터, 질적 연구 등을 공부했습니다. 낮에는 교수님들과 학생들과 회의하고 연락하고, 저녁에는 요가랑 운동을 했던 것 같아요. 오늘 저녁에도 요가 수업 들으러 가보려고요~(웃음)

 원광대학교에 임용되기 전에 연구교수일 때는 학기 중 대면 수업 1~2일 정도 수업하러 익산으로 왔고, 전임교원이 된 현재는 본과 4학년을 위한 OSCE&CPX 수업 등을 준비하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기존에 수행하는 타 대학 연구자와의 공동연구나, 빅데이터 연구 등을 위해 해당 학교나 지역을 직접 방문해서 공동연구도 수행하고 있습니다. 


Q. 한의대에 진학하게 된 계기에 대해서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A.  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한의대에 진학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원래도 의대 가기가 싫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전혀 아니지만, 학생 때 의학보다는 자연요법, 전통 의학 책들을 보고, 양약을 먹으면 몸에 해가 되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죠. 그리고 과학고등학교를 나왔는데 수학, 과학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과학고 진학하고 첫 중간고사 생물 시험에서 꼴찌도 했죠. 생각해 보면 대학에 와서 화학 이런 과목도 꼴찌였던 거 같아요. 

 워낙 수학, 과학도 싫어했고 이과 전공 중에서 가장 문과적인 곳이 한의대인 것 같았고, 전통 의학 친화적이기도 해서 한의대가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내신을 망쳤는데, 한의대는 내신을 안 봤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제가 갈 수 있는 곳은 한의대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고등학교 3년 내내 한의대를 목표로 공부했죠. 그리고 당시 아버지 친구분께서 한의사였는데, 만족도가 높으셨다고 말씀하셨던 것도 영향이 있는 것 같네요. 돌아보면, 사실 뭐 거창한 목표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그냥 많은 고교생이 그렇듯 점수에 맞춰서 대학에 왔던 것 같습니다. 


Q. 학부 시절 교수님은 어떤 학생이셨나요? 

A.  위의 질문에 답했듯이, 학부생 때에는 의학 공부가 필요 없고 한의약이면 다 된다고 생각했던 편협했던 학생이었어요. 지금은 교수님이나 학생들이나 현대의학도 배우고, 연구랑 논문도 강조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01학번인데 그 당시만 해도, 한의학 임상연구나 SCI급 논문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당시는 개원해서 한약 처방하고 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선배들도 많았고, 한약만 잘 쓰면 잘 먹고 잘 산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서 현대의학적 지식은 다 필요 없고 한약의 대가가 되겠다는 생각이 짧았던 학생이었죠.

 수업도 잘 안 듣고, 도망가고, 술도 잘 못 마시는데 술 많이 마시는 동아리 활동도 하고… 학교 수업 때 봤던 모습이랑은 조금 다르죠? (웃음) 물론 지금은 전혀 아닙니다. 병원 생활하면서 현대의학적 기본 소양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죠.



연구자로서

Q. 임상가가 아니라 연구자가 되는 길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 연구를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A. 처음 연구를 접한 것은 심계내과 레지던트로 수련하던 때였어요. 처음에 전문의를 딸 때, 사상체질의학과에 관심이 많았는데 제 친구가 국시 1등을 하고 그곳에 지원해서 못 갔죠. 그런데 마침 심계내과에 인연이 닿아서, 고민하다가 심계내과(한방순환신경내과)로 수련하게 되었습니다. 이 과는 연구를 많이 하는 과였어요. 한의학연구원(KIOM)에서 중풍 환자들 대상으로 중풍 표준화 연구를 진행했는데, 제가 환자들에게 혈액검사 동의서 받고, 변증 설문지 등을 물어보는 역할을 했어요. 이 과정에서 중풍 환자들 대상으로 허증과 실증으로 변증된 사람들이 어떤 차이가 나는지에 대한 논문도 출판하고, 그 논문으로 수련의 논문상도 받으면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이 자리를 빌려, 저한테 그 논문 아이디어를 주시고, 맨 처음 연구의 길에 재미를 붙이게 해 준 민인규 선배님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흥미를 느끼다가 실제로 연구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건, 전문의를 마치고 공보의를 가서 ‘민족의학신문 연구동향팀’ 활동을 하면서부터였어요. 좋은 임상 연구 논문들도 점차 발표되고 있는데도, 온라인상에서 너무 한의약이 비하되는 상황에 안타까움을 느껴서, 주변의 2-30대 한의사들과 함께 임상연구 SCI 논문들을 민족의학신문에 요약 및 소개하는 활동이었죠. 그런데 이 활동을 하다 보니, 데이터를 가공하고 전달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나도 연구해 봐야지!’라는 생각과 함께 시작하게 된 것 같습니다. 

또한 한의약 근거와 관련된 일을 하면서 오랫동안 살아남기 위해서는 ‘내가 데이터를 가공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나?’는 생각이 들고 고민하던 중 김현호 대표님을 만났습니다. 얼마 전까지 한의플래닛에 계시다가 지금은 (주) 7일이라는 한의학 플랫폼의 창업자로 계시는데, 제 고등학교 선배이자 대학교 후배님이십니다. 김현호 대표님께서 경희대 한방병원에 ‘한의약임상시험센터’가 생길 예정이라고 하시면서 거기에 가보라고 추천해주셨는데, 가서 근무하고 연구를 시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네요 (웃음)


Q. 연구하시면서 보람이 되고 뿌듯했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A.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연구와 관련된 상을 받았을 때 예를 들어, 병원 수련 중 레지던트 때 수련의 논문상 받았을 때, 대한한의학회에서 신진 연구자상, 해외 학회들에서의 수상 경험들이 기억에 남네요. 운이 좋아서 받았던 것 같긴 합니다(웃음)

 또 하나는 로컬 원장님들과의 공동연구가 진료와 경영에 도움이 된다는 피드백을 받을 때입니다. 개원가의 우수한 치료 데이터를 논문화하는 작업은, 제가 연구를 시작한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에 미국 화상 학회지에 나왔던 화상 증례 연구도 2019년 무렵부터 시작한 연구인데, 논문 출판 이후에 중앙일간지에도 소개가 되었지요. 또, 제가 씨와이에 있을 때 로컬 원장님들과 비만 진료 기반 연구를 한 적이 있는데, 관련 논문을 잘 활용해서 임상과 경영에도 도움이 되었다고 피드백이 왔던 것도 보람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과 학부생들이 같이 연구하자고 찾아오면 뿌듯합니다. 화상 논문이나 최근 SCI에 등재된 파킨슨병 네트워크 메타분석 논문을 같이 작성했던 것처럼,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함께 논문을 쓰면 성취감이 좋습니다. 예전에는 제 실적을 내기에 급급했지만, 지금은 제 지식과 경험을 활용해서 연구하려는 사람들을 도와줄 때의 즐거움이 있습니다. 


Q. 반대로, 연구하시면서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도 있으신가요? 

A. 대부분의 연구자가 겪듯이, 제일 큰 것은 경제적 문제입니다. 박사 과정을 할 때는 월에 250만 원 정도를 받았는데, 이것도 많이 받는 편이었습니다. 경제적 문제에 더해, 박사과정 때 연구하고 논문을 쓰면 집에도 늦게 들어가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도 있습니다. 제가 공보의 2년 차에 태어난 딸이 지금 11살인데, 어린 시절의 기억이 거의 없네요.

 체력적인 문제도 있습니다. 몸이 버티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저는 운동을 강박적으로 챙겨서 합니다. 요가를 했던 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은데, 요가가 교감신경의 항진을 굉장히 안정시켜 주더라고요. 요가를 안 했으면 심리적으로 망가졌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리고 제가 집중하고 싶은 연구나 주제, 방법론들이 있는데, 제가 원하는 것만 연구하며 살 수 없는 것도 있습니다. 연구비나 혹은 다른 이유로 원치 않는 분야의 연구도 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성과를 내면서 능력을 숫자상으로도 증명해야 한다는 불안감도 늘 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회사의 사정으로 인해, 하루아침에 직장을 나오고, 어렵사리 원광대학교 연구교수직을 구하고 힘들게 연구를 이어 나갔던 개인적인 경험도 있어서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대학에 남고자 노력한 것 같습니다. 아마 제가 가진 불안감은 모든 연구자가 공감할 것 같네요. 



임정태 교수님과의 즐거웠던 인터뷰 현장, 2탄도 기대해주세요~!!
(본 인터뷰는 방역 수칙을 준수하여 진행되었습니다.)



Interviewer. 코알라, 앵무새

Writer & Editor. 코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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