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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퇴사하는 날, 그는 대표에게 무릎을 꿇었다.

자신에게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는 편지와 함께.

by 한지예 Apr 02. 2025

매일 야근하고, 주말에도 일하고 …

구설수에 휘말리고 …


6년을 함께 일했던 나의 상급자였던 그는 내가 퇴사한다고 했을 때 마음을 바꿔보라고 매일 같이 말했다. 관두는 날짜를 조율하고 인수인계 하는 과정 중에도 계속 마음을 바꿔보라고 나를 설득시켰다. 


하지만 뒤에서 그는 다른 행동을 보였다.


그와 대표 사이에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 없다. 단지 그는 나에게 퇴사하는 날 미안하다 말하며, 대표에게 보낸 메일을 보여줬다.


자신을 택해줘서 고맙다고,

자신을 믿어줘서 감사하다고,


관두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지만, 결국 난 관뒀다. 마지막까지 대표가 나와 그를 저울질했는지 당시에는 몰랐다. 내가 관둔다고 했을 때 대표가 그를 정리하고, 나를 택할 생각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나와 의논한 적이 없으니까.


단지 메일 내용에 '내 이름'이 들어갔고, 그는 대표가 자신을 선택한 것에 대해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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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둔 지 2주 정도 지난 어느 날 새벽.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술 마시고 전화한 그는 대표와 사모랑 술을 마셨다고 했다. 나에게 울면서 말했다.


대표님과 사모님이 있는 자리에서 무릎 꿇었다고,


왜 무릎을 꿇었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알고 싶지 않았고, 궁금하지 않았다. 난 이미 떠난 사람이었고, 다른 회사로 출근 중이었다.


알겠다고 전화를 끝내고 싶은 나에게 그는 물었다.


대표님한테 너는 무릎 꿇을 수 있어?


자다가 봉창을 두드린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걸까 싶을 정도로 새벽에 무슨 헛소리를 하나 싶었다. 아무 말하지 않은 나에게 그는 다시 말했다.


너는 할 수 없지?

그게 내가 선택된 이유야.


나는 관둔다고 말한 후 끝이었다. 이미 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날 바로 갈 곳도 정해두었다. 일주일 정도 쉬었다가 바로 출근했는데 관둔 뒤에도 계속 내 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싫었다.


알고 싶지 않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관두고 끝난 일에 자신이 남은 이유를 말하는 것도 우스웠다. 


난 관둔다고 했고, 그는 관둘 마음이 없었다. 애초에 관둘 사람이 관두는 게 맞는 일을 갖고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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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표에게 무릎 꿇었던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했다. 나와 그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녔다.


대표가 자신을 선택한 이유와 무릎 꿇고 편지를 써서 보냈다는 이야기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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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알게 된 건지 물었을 때 두 가지였다.


하나는 대표가 직원들에게 그는 이 정도로 자신에게 충성한다고 자랑했고, 또 다른 하나는 그가 직접 자신의 입으로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다녔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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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충성하는 대가는 분명 있었지만, 결국 그도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회사는 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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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과거에는 하나의 직장에 들어가 근속연수를 채우고 퇴직하는 게 당연했다. IMF 이후 정규직과 계약직, 무기계약직 등 고용형태가 바뀌면서 달라졌다.


지금은 더욱 많이 달라졌다. 이력서를 보다 보면 3년 - 4년의 경력과 다르게 회사를 5번, 7번씩 바꾼 이도 많다. 한 곳에 있는 게 더 이상 미덕은 아니다.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치면서 회사에 헌신하고 충성해도 소모품이다.


우리는 인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우리는 가족 같은 분위기에서 모두가 즐겁게 일해요.


이건 말이다. 말뿐이지 현실은 다르다. 책임져주지 않는 회사를 상대로 혼자 짝사랑하고, 마음 상할 필요 없다.


내 청춘을 갈아 넣어도 건강만 상할 뿐,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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