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들의 변명
스타의 갑질을 도운 스탭, 조고의 지록위마, 벌거벗은 임금님의 옷을 찬양한 인물들의 공통점은?
바로 간신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들은 절대 '간신'이란 타이틀에 대해 용납할 수 없다. 이제 그들의 변명을 시작하겠다.
상상해 보자. 당신은 트럼프 대통령의 수석 참모다.
어느 날, 트럼프가 '무차별 이민자 추방정책'이라는 위험한 카드를 꺼내든다. 안된다고 그를 설득해 봤자, "You're fired!"라는 고함과 함께 팀 전원의 해고는 뻔할 것이다. 이제 선택의 시간이다.
팀 전원의 해고를 감수하고 '투쟁하는 충신'이 될 것인가? 아니면 국가의 미래에 드리워질 그림자를 외면한 채 '동조하는 간신'이 되어 일단 살아남을 것인가?
이 극단적인 딜레마 앞에서 우리는 깨닫는다. 그동안 간신을 얼마나 단편적으로 이해해 왔는지를.
간신에는 두 종류가 있고, 그들을 만들어내는 리더의 결함 또한 다르다.
첫째는 리더의 유약함과 의존성을 파고드는 전통적인 '권력형 간신'이다. 박근혜 정부를 뒤흔든 국정농단 사태가 그 대표적인 예시다. 리더가 공식적인 통치 시스템보다 사적인 관계에 과도하게 의존할 때, 그 권력의 공백을 파고든 '비선 실세'는 대통령의 권위를 등에 업고 국정을 농단하며 막대한 사적 이익을 추구했다. 이는 리더 개인의 실패가 한 명의 '괴물'을 탄생시키는 과정이다.
두 번째는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독선적 리더가 양산하는 '생존형 간신'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반복적으로 지적되는 '소통 부재'와 '독선적 리더십'은 이 유형의 간신들을 만들었다. 그들은 오직 '심기경호'를 위해 아첨과 웃음으로 대통령이 듣고 싶은 말만 하는 '간신짓'을 남발했다. 국가를 위해 리더를 잘 보필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이들의 만들어지는 생성과정은 명확하다.
1단계, 비극의 시작은 '딜레마'다. 리더가 비판적인 목소리를 배척하고 자신과 코드가 맞는 측근들로만 주변을 채울 때, 조직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입을 닫는다. 소신을 지키는 대가가 개인의 안위를 넘어 조직 전체의 고통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기에 결국, 침묵하고 동조하는 간신짓을 하는 간신으로 변한다.
2단계, 비극의 심화는 '보상 없는 소모'다. 이들의 '간신짓'은 권력과 부를 향한 투자가 아니다. 오히려 리더의 분노를 피하기 위한 '소모적인 방어 행위'일뿐, 양심을 판 대가로 돌아오는 것은 하루짜리 평온과 깊은 무력감뿐이다.
3단계, 파국의 시작은 '인재의 역선택'이다. 결국 독선적 리더 주변에는 훌륭한 인재가 떠나고 예스맨만 남게 된다. 이는 조직의 인재 풀 자체를 오염시켜, 장기적으로는 회복 불가능한 '인사 실패'와 '잘못된 의사결정'을 시스템적으로 고착시킨다.
간신은 잘못된 리더의 결함이 만들어낸 산물
권력형 간신을 만든 리더는 조직의 '자산'을 잃게 하고, 생존형 간신을 양산하는 리더는 조직의 '미래(인재)'와 '영혼(문화)'을 모두 파괴한다. 형태는 다르지만 결과는 동일하다. 조직의 몰락이다.
서두의 질문으로 돌아갔을 때, 진짜 비극은 잘못된 답을 선택한 참모가 아니라 그런 선택 앞에 서도록 내몬 리더 자신에게 있다. 유약함이든 독선이든, 리더의 결함이 충신을 간신으로 만드는 파괴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 그 모든 책임은 리더에게 있다.
왕의 눈을 멀게 하고, 사리사욕을 채우며, 나라를 망하게 하는 간신, 간신은 리더의 결함이 만들어낸 산물일 뿐, 충신도 간신도 모두 왕이 선택한 캐릭터다.
비단 정치뿐만이 아니라 기업, 학교, 재단 등 조직이 형성된 곳이라면 이런 현상을 아예 본 적이 없다며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없다. 개인적으로 정치적 성향은 없다. 누군가의 잘못을 타산지석 삼아 같은 과오를 범하여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