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한 고찰
작년에 나는 '친구'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던 두 여성과 깔끔하게 손절했다.
이유?
"너는 착하잖아~"라는 그들의 세련된 가스라이팅이 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지겨웠고, 내가 일방적으로 재능기부하며 유지하는 친구놀이가 더 이상 재미없어졌기 때문이다.
둘 다 '공주과'는 아니었다. 철저한 '여왕과'였다.
공주과가 "오빠~ 이것 좀~"이라며 수동적으로 떼쓴다면, 여왕과는 "이거 네가 하면 되지 않을까?"라며 능동적으로 지시를 내린다. (공주과 vs 여왕과 심화과정도 다뤄보겠다)
나는 그들에게 내 시간과 노력, 때로는 그들이 할 수 없는 일들로 도움을 제공했다.
그리고 단지 그 대가로'매우 고마워해달라'는 소박한(?) 요구를 은근슬쩍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여왕님들의 피드백이 가관이었다.
내 도움에 대한 고마움은 "아, 고마워~"로 3초 컷.
대신 "네가 우리 덕분에 얼마나 많이 배우고 성장했는지 알아?"라는 희한한 논리로 내게 받은 '영광'을 어필했다.
객관적으로 내가 받은 그 '영광'이 뭔지는... 글쎄, 그들만이 알 수 있는 비밀인 모양이다.
중년이 되니 깨달았다. 나의 시간을 헛된 곳에 바칠 여유가 없다는 걸.
나만 그런 게 아닌 듯하다. 요즘 세상은 거대한 '손절 축제'다.
유튜브만 켜도 "이런 사람 만나면 바로 손절하세요", "중년에 돈자랑, 자식자랑만 하는 친구는 과감히 삭제!" 같은 인간관계 매뉴얼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정신건강을 해치는 독성인간부터 노년을 망치는 관계 유형까지, 분류법도 치밀하다.
우리는 왜 이렇게 관계의 '정답'에 목말라할까?
사실 그 수많은 손절 이유들과 관계의 법칙들은 모두 하나의 본질이 무너졌을 때 나타나는 증상일 뿐이다.
그 본질은 바로 '거래'다.
우리가 말하는 거래는 통장에 찍히는 숫자만이 아니다.
시간, 감정, 노력, 기대, 안정감, 신뢰... 이 모든 것이 거래 테이블 위에 올라간다.
사랑, 우정, 효도라는 아름다운 포장지를 벗겨내면, 모든 인간관계의 민낯에는 '거래'가 있다.
인간의 순수한 감정을 모독하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순수한 감정이 시들어가는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이렇게 해주는데 왜 댓가가 없지?"라는 계산기가 머릿속에서 돌아가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연인관계는 가장 뜨거운 거래 시장이다.
"내 시간과 독점적인 애정을 투자할 테니, 너는 나에게 정서적 안정감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배당으로 줘." 보이지 않는 계약서지만 어떤 법적 문서보다 구속력이 강하다. 한쪽이 약속된 감정 공급을 중단하거나 다른 매력적인 투자처에 한눈을 팔면? 계약 파기. '권태기'는 거래 활동이 게을러져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세상에서 가장 숭고하다는 부모-자식 관계는 정말 무조건적 내리사랑일까?
부모는 20~30년간 자신의 삶을 갈아 넣으며 자식에게 '헌신'이라는 막대한 투자를 한다. 돈을 직접적으로 바라지는 않지만, 자식의 사회적 성공이나 정서적 유대라는 '수익'을 기대한다. 서로 원하는 거래 조건이 안 맞으면? 천륜도 깨진다.
'더 글로리' 은동이 엄마처럼 자식을 돈벌이 수단으로 보는 부모도 있고, 최근 100억 유산을 받고도 "막내가 더 받았다"며 부모를 살해한 패륜아처럼 자신의 거래 조건이 맞지 않는다고 벌인 참극도 있다. (극단적 예시지만 말이다)
친구는 '감정의 상호 금융' 관계다.
내가 힘들 때는 친구의 시간을 담보로 위로받고, 친구가 기쁠 때는 내 시간을 투자해 이자를 갚는다. 사회적 지위가 생기면 감정+물질적 도움, 네트워크, 정보까지 주고받는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서서히 멀어지거나 갑자기 가까워지는 연락처들이 바뀌는 것도 당연하다. 나이 들수록 "어떤 목적이든 거래가 잘 맞는 사람들과만 시간을 쓰고 싶다"는 솔직한 욕구도 커진다.
인간관계에서 '거래'를 인정하자는 건 관계의 가성비를 따져서 손익계산을 하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서로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솔직하게 마주해야만 건강한 관계가 가능하다는 뜻이다.
이 당연한 사실을 "계산적이라고 욕먹을까 봐" 외면할 때, 관계는 기대와 실망의 지뢰밭이 된다. 내가 원하는 걸 명확히 말하지도 않으면서 상대가 알아서 해주길 바라는 건 일종의 폭력이다.
"당신, 알고 보니 이런 것까지 다 따지는 계산적인 사람이었네!" 부부 사이에서도 뭔가 부당하다는 걸 표현하기만 해도 이런 말을 들을까 봐 두려워한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멀어지는 관계들도 생긴다.
'거래'를 인정하는 것은 관계를 비즈니스로 만들자는 게 아니다.
오히려 서로를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우정이라는 명분으로,
서로의 영역을 얼마나 많이 침범하고 당연하게 요구해왔던가.
이제, 당신의 가장 중요한 관계를 떠올려보라.
그 관계를 생각할 때 드는 감정이...
'고마움'인가,
아니면.....'얄미움'인가?
- 하찮은 홍보-
'여왕님과의 손절'에 대한 이유의 디테일 스토리는 '그 여자의 계산법 7'에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