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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낙엽을 타고 (2023)

세상 무미건조한 로맨스가 여기 있습니다.

by 원일


유럽 로맨스 영화라고 하면 보통 프랑스 특유의 감정선이나, 워킹타이틀식 영국 로맨틱 코미디가 먼저 떠오른다.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핀란드’라는 낯선 배경, 익숙지 않은 정서, 그리고 주변의 극찬이 겹치며, 어느 날 문득 이 영화를 보러 가게 되었다.



영화는 헬싱키의 어딘가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여성 '안사'와 고철장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남성 '홀라파'의 이야기다. 그들은 우연히 만난 뒤, 아주 조심스럽고 무덤덤하게 서로를 향한 마음을 키워간다. 특별한 사건이 벌어지는 것도, 큰 감정이 폭발하는 것도 없다. 다만 담백하게, 낙엽이 떨어지듯 서서히 가까워질 뿐이다.



무미건조하다고도 할 수 있는 두 캐릭터는, 감정 표현보다 ‘기척’으로 관계를 이어간다. 마치 T와 T가 만나 마음의 파장을 공유하는 듯한 이들의 썸은, 그 느슨한 온도가 오히려 인상 깊게 다가온다. 서로를 찾아다니는 장면들에는 대사보다도 더 많은 감정이 흐르고, 마침내 스치는 손끝보다 더 큰 설렘을 주는 감정들이 있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두 인물 모두 개인적으로 결코 가볍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지만, 영화는 그들의 배경이나 내면을 깊이 있게 파고들지는 않는다. 그저 대강 스케치하듯, 감정의 결을 ‘인지하게’만 할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나는 오히려 그 ‘슴슴함’이 좋았다. 아주 특별한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더 독특하게 다가오는 영화였다. 어딘가 브레송이나 고다르의 건조한 톤이 떠오르기도 했고, 이야기의 무게감보다는 리듬감으로 전달되는 감정선이 색달랐다.

지극히 일상적인 감정이 마치 깊은 숲길을 걷듯 조용히 따라오다가, 어느 순간엔가 마음을 툭 치는 그런 영화였다. 낙엽처럼 가볍게 떨어지는 감정들이 스며드는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이 영화의 결을 따라가 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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