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기엔 느릴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의 일기
나는 중화권의 영화를 그리 좋아하는 편도 찾아보는 편도 아니다. 우연히 같은 모임의 형이 시사회에 당첨돼서 극장에서 남들보다 먼저 볼 수 있었다.
나는 중화권 영화를 딱히 즐기는 편도, 찾아보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 우연히, 같은 모임의 형이 시사회에 당첨되었고, 덕분에 나도 남들보다 먼저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큰 기대 없이 앉았던 자리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의 물결이 밀려왔다. 『연소일기』는 내가 영화 보고 눈물을 흘린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들 만큼, 꽤 오랫동안 눈물이 멈추지 않게 만든 영화였다.
연소일기는 선생이 된 남자가 학생의 유서 비슷한 쪽지를 발견하고, 그 안에서 과거였던 한 가정 안에서 어린아이가 겪는 편애와 갈등, 그리고 세상이 주는 작고 날카로운 상처들을 아이의 시선으로 그려낸 대만 영화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두 형제 중 첫째는 느리다는 이유로 부모의 반복되는 외면과 비교, 폭력까지 당하는 환경에서 자라고, 사랑을 받기 위해 그 어떠한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다. 그런 둘째는 형과는 반대였고 사랑을 받으면서 자라오지만 형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통들을 방관할 수밖에 없다. 아이가 어떻게 무너져가는지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어린아이의 시선이기에 더 아프고, 그 아픔이 너무 솔직해서 쉽게 지나치지 못하는 영화였다.
나는 중화권 영화를 자주 보는 편도, 특별히 좋아하는 편도 아니다. 하지만 우연히 모임 형 덕분에 시사회를 통해 연소일기를 먼저 볼 수 있었고, 이 영화는 내 예상보다 훨씬 깊은 여운을 남겼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린아이가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과 슬픔이 눈앞에서 조용히 쌓여가는 걸 지켜보는 느낌이었다. 그 속에서도 아이는 나름대로의 작은 행복을 찾으려 애쓰지만, 결국 그것마저도 무너져 내리는 장면들을 보고 있으니 참 안쓰럽고 마음이 먹먹했다.
그래서인지 연소일기는 단순히 한 아이의 성장기를 넘어,
'가정'이라는 이름으로 덧칠된 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건, 누구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한 아이의 눈물이었다.
나야 그런 환경에서 자라본 적도 없고, 가족 간의 애정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나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덕분에 그런 상처나 트라우마에 대해선 사실, 직접 겪기보다는 TV 프로그램이나 소설, 영화, 뉴스 같은 매체를 통해 간접적으로 접해왔을 뿐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바라보게 되고, 감정이 더 깊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그저 아이답게 자라고 있을 뿐인데, 어른들은 종종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들을 아이에게 투영하고, 그 기대를 강요하곤 한다. 그 무게는 아이가 짊어지기엔 너무 크고, 결국 너무 이른 어른이 되기를 바라게 만든다. 정작 우리는 아이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자신의 소유물인 양 방향을 정하고 감정을 통제하려 든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아이는 종종 가장 가까운 존재에게서 가장 깊은 상처를 받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 영화는 단지 영화적인 이야기로만 남아 존재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의 기억이고, 또 누군가의 현재일지도 모르는 그 시간들의 파편일지도 모른다.
그게 이 영화가 주는 가장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