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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 카운티의 끝에서 (2024)

관객만 이 상황을 아는 요상한 시작점

by 원일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재미있게 봤던 유마 카운티의 끝에서. 국내에서는 아쉽게도 극장 개봉 없이 바로 2차 시장으로 넘어갔지만, 작년에 본 영화 중 손에 꼽을 정도로 기억에 남는다.

줄거리를 아주 간단히 요약하면, 작은 마을 유마 카운티에서 출장 중인 외판원이 기름이 떨어져 잠시 머무르게 된 식당에서 벌어지는 딜레마, 긴장감, 그리고 연쇄적인 오해와 충돌. 한밤의 무더운 텍사스적 정서와 인간 군상들의 심리가 아주 밀도 높게 얽힌다.


특히 초반부터 '기다리는 유조차는 오지 않을 것이다'는 사실을 관객만 알고 있다는 설정 자체가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핵심 텐션이었고, 그 순간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Love is Blue는 정말 그 장면에 너무 잘 어울리는 곡이었다.

초반부에서 중반부까지 극도의 잔인하거나 폭력적인 장면 없이도 이 정도의 긴장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놀라웠고,

트랙 하나하나도 너무 정교하게 들어맞는다. 감독님이 음악에 관심이 많았기에 가능했고, 그걸 다 염두에 두고 녹여냈다고 했으니 충분히 가능했던 것 같다.



'유마 카운티의 끝에서'는 장르적으로 보면 분명히 스릴러, 느와르, 혹은 네오 웨스턴의 범주 안에 있지만, 그 안에서 보여주는 연출적 감각이나 이야기의 뉘앙스는 단순히 장르적 공식에 기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명확한 오마주가 있다기보단, 여러 영화의 공기와 구조, 리듬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흡수하고 발효시킨 결과물에 가깝다. 그래서일까. 한 번 보면 익숙한데, 다시 보면 낯설다. 오히려 관객으로 하여금 “이건 뭐지?” 하고 끝내 말이 안 나오는 여운을 남기는 건, 그 ‘발효의 농도’ 때문이다. 폐쇄성의 부분은 히치콕의 작품이 생각나고, 군중심리와 광장의 느낌이 나는 건 타란티노의 작품이 생각나기도 하고, 코엔형제의 작품처럼 서서히 건조하게 폭력적임을 터치는 느낌도 있다.



이곳에는 정의도 없고, 윤리도 없다. 다만 생존이 있고, 잘못된 판단이 있고, 그 뒤에 오는 책임이 있다. 그래서 다이너라는 공간은 마치 서부의 마지막 거점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래서 끝에서라는 제목이 붙은 건가.


결국 '유마 카운티의 끝에서'는, 고전과 장르영화에서 가져온 수많은 인용들을 자기 식대로 재조립한 무표정한 비극이다. 너무나 덤덤해서 더 아프고, 너무나 차분해서 더 무섭다. 누구 하나 죽지 않았어도 이 영화는 비극이었을 것이고, 모두가 죽어도 그것은 비극 이상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영화가 오마주한 것들은 많지만, 그것들을 통해 완성한 감정은 굉장히 자기만의 것이다.


익숙한데 신선한 맛, 작년에 취줍을 마다하지 않고 건져낸 나에게 특급칭찬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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