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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땡스기빙 (2023)

호러 마니아에겐 미식, 약한 이들에겐 소화불량”

by 원일


작년, 비를 뚫고 부천까지 갔다. 정확히는 한국만화박물관. BIFAN에서 상영된 해피 땡스기빙을 보기 위해서였다. 공교롭게도 하루 전에는 같은 해 영화제에서 유마 카운티의 끝에서를 보았고, 이 두 작품은 그 해 내 기억 속에서 가장 강렬한 도파민을 선사한 장면들로 남았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작은 마을. 블랙 프라이데이에 몰려든 인파로 인해 대형 마트에서 끔찍한 사고가 벌어진다. 그리고 1년 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존 카버’ 가면을 쓴 의문의 살인마가 당시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을 하나둘씩 끔찍하게 처형해나간다. 진실은 점점 마을의 깊숙한 죄의식과 맞닿아 있고, 모두가 의심받고,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이 작품은 2007년 쿠엔틴 타란티노와 로버트 로드리게즈가 함께 만든 그라인드하우스 프로젝트에서 파생된 영화다. 당시 데스프루프와 플래닛 테러 사이에 끼워졌던 일종의 가짜 예고편 'Thanksgiving'은, 농담처럼 시작되었지만 오랜 시간 마니아들의 기억 속에 남았다. 이후 마셰티처럼, 이 '페이크 트레일러'가 드디어 2023년 실사 영화로 완성된 것이다.



호스텔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라이 로스 감독답게, 이 작품도 고어의 밀도가 꽤나 높다. 트램펄린 위에서의 참사, 오븐 속의 인육, 냉동고와 옥수수꼬치, 쓰레기통 등 살인 도구 하나하나에 상상력이 담겨 있다. 특히 블랙 프라이데이와 SNS, 그리고 가족 중심의 추수감사절이라는 미국적 기념일의 풍경을 배경 삼아, 감독은 유쾌하면서도 잔혹한 블랙 유머를 터뜨린다.


사실 서사적인 측면에서는 다소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슬래셔라는 장르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얼마나 독창적으로 사람을 죽이는가'이기에, 이 영화는 그 기대에 충분히 부응한다. 호러 장르 팬이라면 ‘킬카운트’와 ‘창의성’이라는 키워드에 만족할 수밖에 없다.



아쉽게도 이 작품은 국내 개봉을 하지 못했고, 곧장 OTT로 직행했다. 하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BIFAN 같은 장르영화제를 통해 스크린으로 만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비를 뚫고 부천까지 갔던 그날의 기억은, 영화의 잔혹한 장면만큼이나 선명하게 남아 있다.


P.s) 보기 전에 유튜브에서의 페이크 트레일러를 보시면 좋을 거 같다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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