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미집 (2023)

창작과 집착, 그리고 세트장 속 잿빛 광기

by 원일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운명처럼 두 번이나 시사회에 당첨되며 개봉 전부터 두 차례나 관람하게 된 영화였다. 개봉 이후에도 한 번 더, 총 세 번. 그렇게 이 영화를 스크린에서 곱씹으며 느꼈던 감정은 김지운 감독의 커리어를 돌아볼 때, 조용한 가족과 같은 초기작의 정서와 달콤한 인생 시기의 리듬감이 동시에 어우러진 작품이라는 생각이었다.


시대는 1970년대. 김열(송강호)은 ‘거미집’이라는 영화의 결말만 바꾸면 걸작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감독이다. 그러나 영화는 이미 검열을 마친 상태. 주연배우들과 스태프들은 뒤엉킨 감정과 입장 속에서, 엉겁결에 다시 모인 세트장에서 김열 감독의 광기에 가까운 ‘리테이크’를 따라가게 된다. 그렇게 다시 돌아가는 카메라 속에서, 영화 밖의 갈등과 영화 안의 이야기가 점점 묘하게 겹쳐져 간다.



극 중에서 김열 감독이 집착하는 작품 거미집은, 정작 관객인 우리에게도 무척 흥미롭게 느껴진다. 고전 미스터리풍의 플롯과, 타협 없는 ‘검열’ 시대의 창작 욕망이 맞물리며, 영화 속 영화가 이 영화를 더욱 입체적으로 만든다. 마치 관객 스스로가 70년대 검열실 옆에서 이 작품을 엿보는 기분이랄까.


이 영화는 촌스럽다고 느낄 수 있는 서울 사투리, 과장된 발성과 대사 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그런데 그 촌스러움이 오히려 은근히 중독적이다. 옛 한국 영화 특유의 ‘연극적인’ 말투가 레트로의 리듬처럼 들리고, 익숙지 않지만 기묘하게 매혹적이다.


이 영화의 진짜 씬스틸러는 단연 전여빈 배우이다. 혼란과 긴장이 겹치는 세트장 속에서 특유의 코믹함과 존재감이 보통이 아니었다. 또 하나 인상적인 건 f(x) 멤버였던 정수정의 연기다. 톤을 잘 잡았고, 영화의 속도감과 유머, 진지함 사이를 꽤 능숙하게 오간다.


영화 후반, 불타는 세트장 속에서 벽에 걸린 한 초상화가 유독 눈에 남았다. 언뜻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을 떠올리게 하는 구도. 그것이 감독의 의도된 오마주인지, 내 개인적인 감정의 투영이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러한 겹침조차 이 영화가 지닌 다층적인 감상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듯했다.

특히 클라이맥스에서 울려 퍼진 샹송 〈춤추는 샹송인형〉(Poupée de cire, poupée de son) 은 의외의 선택이었다. 너무나도 익숙한 멜로디가, 혼란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는 세트장 위에 흐를 때, 그 아이러니함과 아름다움이 묘하게 교차되었다.

예술과 집착, 불타는 창작의 욕망 위로 덧입혀진 그 곡은, 이 영화의 유쾌하고 기괴한 미학을 한층 더 극대화해 주었다.


이 영화는 단순한 ‘메타 코미디’도, 과거 영화에 대한 향수에만 머무는 오마주도 아니다. 거미집은 한국 영화계의 억압과 창작, 타협과 열정이 충돌하는 순간을 흥미진진하게 극화한 한 편의 블랙 코미디이자, 동시에 김지운 감독의 가장 '김지운다운'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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