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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찾는아이 Sep 29. 2021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불안이든, 행복이든. 결국 다, 지나가는 것.

 내 마음 속에 불안함이 가득했던 순간이 단 한번도 없었다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다. 내 20대의 절반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면, 단언컨데 '불안'이라는 키워드를 꼽겠다. 불안함은 항상 나를 긴장시켰던 키워드이자, 더 나아가 나를 유연하지 못하게 만들고 경직되게 했던 키워드였다.


 왜 불안했을까? 무엇이 나를 그렇게 불안하게 했던걸까? 불안하게 만든 수많은 요인들이 있었겠지만 그 중에서 당장 떠오르는 것은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미래의 일'들이 상당수를 차지했다. '내일 행사 준비했는데, 잘못되서 망치면 어떡하지?', '합격자 결과 내일 나오는데, 안 되면 어떡하지?', '내일 시험 있는데 망쳐서 남들한테 망신당하면 어떡하지?'... 내가 당장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었음에도, 자기 전에 어떻게 될까 고민했던 기억들이 가득하다. 


 그 밤잠을 설쳤던 불안함이 결국 현실로 이어졌을까? 반은 맞았고 반은 아니었다.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았던 것인지 불합격되기도 하고, 망신도 당하기도 했다. 또한 일이 잘못되어서 한동안 '동굴'속에 갇혀 있던 순간들도 있었다. 때로는 도망가고 싶어서 한동안 해외에서 일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혹은 혼자서 일해도 잘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한참 찾아보기도 했다.


 반면 불안함을 원천으로 끊임없는 준비 끝에 기우(起雨)로 끝났던 일들도 많았다. 실수해서 다음 날 깨질 각오를 하고 회사에 나갔지만, 의외의 일들이 나를 기다려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바로잡히는 일도 있었다. 남들 앞에서 망신당할 줄 알았었지만, 내가 생각치못했던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박수를 받았던 적도 있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안함이라는 내 감정이 있었기에 이런 일들이 더 극적으로 다가왔다.  


 이처럼 불안함이라는 키워드는 나를 힘들게 했지만, 나를 성장시켰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무엇인가를 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끝끝내 무엇인가를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원천이 된 것은 분명했다. 20대 그 경계선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걸어가는 나의 모습이 짠하기도 하며 불쌍하게 여겨질 때도 있었지만, 내겐 남들만큼 멋진 모습이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끊임없이 해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가. 기진맥진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불안함에 시달리는 내 자신을 자꾸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기서 무너지면 끝장이야.', '다음엔 어떻게 해야하지?' 하며 끊임없이 내 자신을 채찍질하였던 나였기에. 탈진이 안 되는게 이상했다.


 결정타를 날린 건 아슬아슬한 불안함으로 있다가 사람들 앞에서 거절 당하는 경험을 겪고나서였다. 이 일이 '스모킹 건'으로 작용하여, 한동안 우울함에 시달린적이 있었다. 무엇을 더해볼수 있을까, 아니 과거의 내가 어땠으면 달라졌을까 싶었다. 과거의 나를 탓하며, 계속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밤에 라디오에 귀기울이다가 듣게 된 노래 가사.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OST였다. OST 나올 때에는 관심도 없었는데, 이 노래를 들으며 마음의 응어리가 풀어지는 경험을 했다. 감정이 울컥하며 많은 힘겨웠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나서 내가 지나온 길을 돌아보면서 나와 함께 걷던 불안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가지 생각으로 정리했다.


 첫 번째, 지나간 일은 지나간 대로 둘수 밖에 없다. 불안함의 원천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과거에 어떻게 했어야 했는데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다. '과거의 내가 안 그랬다면 지금의 내가 이렇게 불안할 이유가 없는 거였는데.' 하지만. 그 과거를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으며, 나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과거가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


 두 번째, 나의 불안함에 영향을 주는 행복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이 모든 일은 순간으로 스쳐지나간다. 불안함 자체로 인해 불안한게 아니라, 불안함을 자극하는 일들로 인해 불안함을 느낀다는 것. 어떤 일에 대해서 불안함은 내 안에서 생성되는 감정이라는 것을 그 때서야 깨달았다. 결국,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 불안함이 달려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일은 언젠간 다 지나가게 되더라는 사실.


 이 2가지를 깨닫고 나니, 내 마음 속 무거운 짐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데로 두면 된다고 생각하니 기분도 좀 한결 가벼워졌다. 결국엔 지나갔던 '내'가 있기에, 오늘의 '나'가 있는 것이니까.


한 동이 노래에 꽃혀 살았다.

영원한 건 절대 없다고 믿는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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