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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찾는아이 Sep 20. 2021

스텝이 꼬여도, 그게 탱고에요.

알 파치노에게서 삶의 자세를 배우다.

빈아, 잘해야 된다.


 우리 부모님은 나에 대한 걱정과 우려를 항상 갖고 계셨다. (지금도 물론 걱정을 안고 사신다.) 많은 부모님들이 자식에 대한 걱정을 안고 살아간다고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이 답답했다. 대학교에 합격해야한다는 것, 장교에 가야한다는 것 등 수많은 길들을 본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나에게 이야기했다.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까에 대한 우려에서 나오는 말이라는 것을 이해를 해보려 해도 그게 참 어려웠다.


 특히 이 길에서 잘못되면 모든 것이 망가질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신걸까? 나에겐 항상 '너는 늘 불안하다'고 이야기했다. 이런 과정 속에서 부모님과 나는 수많은 갈등을 겪어야했다. 단기복무로 장교 전역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고, 새로운 곳으로 취업하겠다 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엇이든 본인들 손에서 통제가 이루어져야했다. (물론 지금은 내가 한바탕 샤우팅을 날리니 더 이상 그러진 않으신다.)


 이런 부모님의 마인드는 나에게도 영향을 준 것은 분명했다. 나 역시 내가 원하는 방향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곤 했다. 당신들의 기대와 달리 나는 그렇게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내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존감이 떨어지는 상황이 수없이 연출되었으며, 잘해내보고 싶다는 욕심은 내게 사치일까 싶었다. 


 내가 왜 그렇게 실수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면 부끄러움 때문일 것이다. 순간의 부끄러움을 잘 넘기면 되는 건데, 그 부끄러움을 넘기기엔 나는 너무 약했던 것 같다. 실수해서 넘어지고 꼬이게 되면 그 순간 수많은 이들의 시선이 집중되었기에. 창피함을 이겨낼 내 마음이 그리 단단하진 못했다. 그래서 내게 지금 가지지 못한 것(혹은 능력)들은 늘 열등감을 심어주는 대상물이었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어느 단체 활동을 하면서 크게 미끄러진 적이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으레 관계 속에서 갈등이 발생하지 않던가. 나 역시 그 안에서 많은 갈등을 겪어내어야 했다. 예상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예상치 못한 일들을 만들어내면서, 나는 스스로 많이 위축되어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위축은 나를 자꾸 옭아매는 줄처럼 느껴졌다.


 인생 수업처럼 지나가는 순간들로만 생각해보려했지만, 이번에도 '잘 해야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채우고 있었던 것 같다. 관계들 속에서 열심히 해보려 하면 할수록, 깊이 빠져드는 늪처럼 더 나락으로 빠져드는 것 같이 느껴졌다. 무엇이 이렇게 나를 이렇게 만들어가는걸까? 가만히 생각해보아도 엉켜버린 실타래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렇게 허우적 허우적대다가. 일요일에 멍때리면서 TV채널을 돌리다가 어느 영화 채널에서 보게된 영화. 영화 속 눈 먼(실제로 장님 역할이다.) 주인공은 모르는 여자에게 탱고를 추자고 제안한다. 여자는 당황해하며 저 춤출줄 모른다고 실수할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후의 주인공의 말은 관계 속에 옭아매어져 있던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다.


No Mistakes, Tango. Darling. not like life. It's simple.
If you make a mistake, get all tangled up, just tango on.


  탱고에 실수는 없다, 실수하면 다시 일어나서 탱고를 추면 된다... 저 말을 하고 자연스럽게 춤을 추던 알 파치노의 모습이 지금 글을 쓰는 순간에도 떠오른다. 주인공은 탱고는 삶과 다르게 다시 일어나서 춤을 추면 된다고 했지만, 사실 이 탱고처럼 암흑 속에 있던 주인공도 결과적으로는 다시 삶 속에서 춤을 추게 되었다.  


 솔직히 우리 모두 경계선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사는 삶 아닐까? 수없이 미끄러지고, 넘어진다. 수없는 창피함과 부끄러운 순간들이 내 삶 속에서 얼마나 많았을까. 셀 수도 없다. 그럴 때마다 다시 일어나서 다시 춤을 추면 된다는 걸 저 대사 하나로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래서 요즘 내겐 수없는 시도들이 내 삶을 가득 채운다. 실수할까봐 두려운 '나'가 아닌, 스텝이 꼬이면 다시 춤을 추면 된다는 마음으로 시도를 한다. 요리도 그랬고, 악기 연주 시도도 그랬고, 이 브런치 쓰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오랜만에 집에 가서 영화 여인의 향기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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