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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을찾는아이 Sep 02. 2021

"세상 안 무너집니다."

경계선 위에서, 불안해했던 순간들을 지날 때.

그냥 장교로 가면 너의 길이 달라질 거야.


 대학교 처음 입학했을 때다. 부모님은 나에게 육군 장교로 갈 것을 권유하였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군대에 별 관심이 없었다. 장교로 가면 사람이 달라지고, 더 나은 삶을 꿈꿀 수 있고 등등의 이점이 상당하다는 이야기를 어필하셨지만, 내가 왜 군대를 그렇게 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는 상황에서 뜨뜻미지근한 반응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다 보니 나는 솔직히 왜 장교를 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싶지도 않았고, 군 간부라는 직업 자체가 나랑 안 맞는 옷을 입는다는 생각이었다. 

 그러자 부모님은 나를 어떻게든 장교로 보내겠다는 압박 아닌 압박을 하셨다. 달리기부터 윗몸일으키기, 팔 굽혀 펴기. 간부 선발 기초 체력 측정을 달성해야 한다며 때아닌 체력 훈련(?)을 시키셨다.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솔직히 하기 싫었다. 그렇게 억지로, 억지로. 학사장교라는 옷을 입었고, 서툴렀던 순간들을 지나 소위로 임관하였다.


군대에서 장기 복무하면 얼마나 괜찮은 곳인데?


 소위에 임관해서도 수많은 이야기들을 들어야 했다. "군대에 있으면 사회에 있을 때보다 훨씬 낫다.", "전역했던 사람들도 다시 돌아온다.", "소령, 중령 진급하고 전역하면 얼마나 탄탄대로인지 모른다."... 군(軍)에 있어야 할 수많은 이유들을 들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 대부분 군 복무에 대해 그리 만족하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니는 분들이 상당수였다. 본인 직업에 대해서는 자긍심을 갖고 일하기에 쉽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버티고 있는 것일 게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서도 내가 들었던 생각?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군에 대한 헌신을 갖고 일하는 것이야 그런 마음이 우러러 나와서 복무할 때 기쁨이 되겠지만, 내겐 과연 그런 동기가 있었나? 군 자체가 내게 매력적인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장기복무를 할만한 사람도 아니라는 것을 내 마음속에서도 알고 있었다. 밖에서는 취업이 쉽지 않다는 이유를 들어 군 복무를 권유했지만, 과연 이게 옳은 선택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역시나 나에게 장기복무를 권유했다. "밖에서 힘든 것보다, 군에서 힘든 게 훨씬 낫다.", "네가 밖에서 취업 준비할 생각을 하면 답답하다."... 수많은 이야기를 하며 들들 볶아대었다. 사실 군필자가 우리 집에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경험해보지 않은 곳을 그렇게 가보라고 하는 것도 신기할 따름이었다. 장기복무에 지원도 해보았지만, 솔직히 내가 이곳에 있을 인재가 아니라는 생각은 무의식 중에 내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너, 후회하게 될 거야!


 결국, 장기복무가 아닌 전역을 이야기했다. 반응이 좋지 않았다. 대위, 소령, 중령으로 가면 너의 삶이 편할 것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던 분들이었기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단호했다. 군이라는 곳이 나의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전역을 결심했다고 해서, 내가 군 복무를 대충 하거나 하진 않았다.

 하지만 취업 준비 역시 쉬운 것이 아니었다. 군대라는 고단한 일상을 끝내고 공부한다는 것은 에너지를 다 소진한 뒤에 머릿속을 채우는 일이었다고 할까나. 게다가 취업과 더불어 대학원 공부까지 하고 있었으니 여러모로 힘에 부쳤다. 전역 전에 뭐라도 하나 잡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어디 그게 뜻대로 되던가. 

 전역한 직후에도 내가 어디라도 들어갈 수 있을까 걱정과 불안에 시달렸다. 전역을 선택한 것이 괜한 일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문득 떠올렸다. 그래도 여러 번의 원서를 넣은 끝에, 몇 개월 만에 다행히 내 전공과 어울리는 곳으로 취업할 수 있었다.


안 무너집니다.

  

 취업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OTT에서 검색하다가 우연찮게 종영했던 드라마를 정주행하며 보게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화에서의 주인공과 최종 빌런과의 대화.

"황시목이, 우리가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져."

"안 무너집니다."

 이 대사에서 나는 멍했다. 어느 조직이 해체된다고 대한민국이 안 무너진다고 담담이 이야기하는 황시목 검사의 이야기를 들으니, 걱정을 상대하는 황시목의 모습이 몹시 매력적이었다. 물론 최종 빌런은 당연히 자신의 위기 탈출을 위해 그렇게 이야기했겠지만 말이다. 

 순간, 내가 너무 많은 걱정 속에서 힘들어 하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어느 한 부분이 불안해하고 안정적이지 않다고, 내 삶까지 송두리째 무너지지 않는 것인데.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인마냥 살아온 것은 아니었는지를 보게 되었다.  

 전역하고 4년여 시간이 지난 지금. 나는 직장인으로서 살아가기에 바쁜 나날이며, 삶 속에서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살아가고 있다.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왔었던 기록이 있기에 지금의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지, 걱정으로만 살았으면 과연 이 결과가 나왔을까.


세상 안 무너집니다.


 이제 나는 황시목의 대사를 변형해서 이야기를 하곤 한다. 지난 20대를 겪으면서 내렸던 하나의 결론이다. 내가 아무리 걱정하고 고민한다고 한들. 세상은 어제와 같았고,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내가 수없이 걱정했던 것은 대부분 대비가 가능하거나, 아예 나의 손을 떠난 것들이었다.

 나의 머리로 걱정이 해결이 안된다면,  손쉽게 인터넷을 통해 전문가의 손을 빌려서 해결할 수도 있는 요즘이다. 세상의 모든짐을 진 것 마냥 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는데 참 오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리고 정말 위기의 순간은 내가 걱정하지 않을 때 찾아온다. 그걸 해결하는 것이야 말로, 위기 대응에 강하다는 것을 곱씹는 요즘이다. 

 그래서. 나는 큰일났다며 걱정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먼저 이렇게 이야기한다. 


"세상 안 무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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