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디어를 풀어내기
1주, 3주, 6주라는 기간 안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의 범위가 정해졌다면, 이제 아이디어를 구체적인 소프트웨어 구성 요소로 풀어내는 단계, 즉 Structuring이 필요합니다.
이 단계는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일이 아니라, “어떤 뼈대 위에 기능이 올라갈 것인가”를 탐색하는 과정입니다.
많은 팀이 Structuring 단계에서 너무 일찍 와이어프레임이나 목업을 만들곤 합니다.
그럴듯해 보이는 화면은 일시적인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것을 너무 빨리 결정해버립니다.
버튼의 위치, 폰트, 텍스트까지 구체화된 그림은 디자이너와 개발자의 상상력을 제한합니다.
그 순간, 아이디어는 흐르는 강물이 아니라 얼어붙은 호수처럼 멈춰버립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 필요한 것은 완성된 디자인이 아니라 유연한 탐색입니다.
저는 보통 Figma Jam, 노트, 화이트보드를 활용합니다.
재택이 일상화된 지금은 Figma Jam을 이용해 온라인으로 사용자 흐름을 간단히 도식화하고,
각 단계를 이리저리 바꿔보며 동선을 실험합니다.
노트나 화이트보드에서는 메인 플로우와 핵심 화면만 빠르게 스케치합니다.
세부적인 디테일은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펜이나 보드마카로 큰 구조만 그립니다.
이렇게 하면 맥락은 잡히되 디자인은 열려 있는 상태로 남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예쁘게 보일까’가 아니라,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
입니다.
Structuring은 결국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과정입니다.
이 기능은 어디에 들어가야 하는가?
사용자는 어떤 경로를 통해 접근하는가?
화면 위에서 어떤 상호작용이 필요한가?
사용자의 행동은 어디에서 시작해 어디에서 끝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빠르게 확인하며,
아이디어의 흐름과 구조를 잡아가는 과정이 Structuring입니다.
Structuring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이 과정은 단순한 설계가 아니라 협업을 위한 공간을 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품 관리자나 PO가 모든 것을 세밀하게 정리해버리면,
디자이너는 단순한 실행자로 전락합니다.
반대로 맥락과 방향만 제시하고 뼈대만 세우면,
디자이너는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해 더 나은 해법을 제시합니다.
Structuring은 설계와 실행 사이를 잇는 협업의 다리이며,
팀이 함께 참여해야 하는 탐색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추상적인 아이디어는 점차 실행 가능한 형태와 목록으로 구체화됩니다.
하지만 Structuring 단계에서 나온 결과물은 디자이너의 창의성을 제한해서는 안 됩니다.
이 단계의 원칙은 명확합니다.
뼈대는 세우되, 살은 붙이지 않는다.
실행에 필요한 최소한의 구조만 드러내고,
색상·픽셀·아이콘 같은 시각적 디테일은 남겨둡니다.
너무 세밀하게 그려버리면 그것은 ‘계획’이 아니라 ‘지시’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그 순간, 더 나은 해법이 발견될 가능성은 사라집니다.
Structuring 단계에서 나온 결과물은 완성된 문서가 아닙니다.
PRD나 Scope Doc처럼 모든 요소를 정의하려 하면,
결국 문서가 과도하게 상세해지고 탐색의 여지가 사라집니다.
이 단계에서의 산출물은
그 자리에 참여한 사람만 이해할 정도로 모호한 상태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목표는 완벽한 설계 문서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아이디어가 원페이저(One-Pager)로 정리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구체화되는 것입니다.
Structuring 단계와 이어지는 Prototyping 단계를 거쳐
One-Pager가 정리되고,
우선순위 회의에서 Kickoff가 선언되는 순간,
비로소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실행을 시작합니다.
Structuring은 실행 전의 탐색 과정입니다.
아직 프로젝트에 대한 약속이나 책임이 생기지 않습니다.
그저 아이디어가 실행 가능한 형태로 변환되는 과정일 뿐입니다.
이 과정은 마치 원석을 다듬어 보석의 형태를 드러내는 일과 같습니다.
아이디어의 본질적인 형태를 찾아내되,
아직 다듬지 않은 가능성을 남겨둡니다.
Structuring을 통해 우리는
모호한 구상에서 벗어나 실제로 움직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합니다.
그리고 다음 단계에서 정식 검토와 선택을 기다리는 ‘준비된 아이디어’로 전환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