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수는 종종 도서관을 찾아오는 아이였다. 예의도 바르고, 똑똑하고, 성격도 쾌활한 편이어서 나와도 곧잘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누구를 만나든 금세 쉽게 친해지는 것 같아 사회성이 참 좋은 아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가끔 겉으로 드러나는 밝은 모습 외에 약간의 그늘이 있어 보인다고 느꼈었다.
어느 날, 준수의 담임 선생님이 도서관에 오시더니 오늘 교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준수가 평상시와는 다르게 갑자기 감정이 폭발해서 욕을 하면서 오열하더니, 급기야 반 친구의 얼굴에 주먹을 휘둘렀다고 했다. 선생님이 주변 친구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었는데 준수는 평소에도 그 친구가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모습을 좋아하는 여학생에게 들켜버린 준수는 더 괴로워했다고 한다.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여준 탓에 더 큰 자괴감에 빠진 것 같았다. 결국 다른 친구들이 말려도 듣지를 않았고 본인 감정에 취해 머리끝까지 화가 난 상태로 교실 바깥으로 뛰쳐나갔다고 했다. 몇 시간 동안 행방을 감추었던 준수는 아이들이 모두 하교하고 난 후에야 교실로 돌아왔단다.
내가 아는 심리학이라곤 대학교 때 교양으로 배웠던 게 전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수가 하는 행동들을 볼 때 준수의 현재 심리상태가 꽤 위험하다고 여겨졌다. 교내에서 상담한 기록이 있는지 여쭈어봤더니 나중에 진학할 때 기록에 남을까 봐 부모님이 원치 않으셨다고 한다. 학생 때의 상담기록은 모두 삭제하기 때문에, 전혀 남지 않는다고 설득했지만 끝내 준수가 교내 상담을 받는 것을 완강하게 거부하셨다는 것이다.
준수의 마음이 이미 너무 많이 응어리져 있어 하루라도 빨리 그걸 풀어주어야 하는데 너무 안타깝고 답답했다. 전문상담사는 아니어도 이야기는 들어주는 역할은 할 수 있을 것 같아 먼저 담임 선생님께 준수와 이야기를 나눠보겠다고 제안했다. 담임 선생님은 안 그래도 내게 부탁하려고 하셨다며, 아이들 자습 시간에 도서관에 심부름 보내는 것처럼 하고 준수와 따로 이야기할 수 있는 타이밍을 만들어 주기로 하셨다.
며칠 동안 준수가 심부름으로 도서관에 오기를 기다렸지만. 준수는 오지 않았다. 평소 도서관에 찾아오던 주기를 볼 때 나를 일부러 피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난번 교실에서의 감정 폭발 사건으로 보면 하루라도 빨리 쌓여있는 감정들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이대로 가다가 또 다른 사건이 벌어져 준수 본인이 더 견디기 어려워질까 봐 걱정스러웠다.
긴급히 담임 선생님께 연락을 드려 준수의 안부를 물었더니 다행히 아직까진 잘 지내고 있다고 하셔서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준수에게 저랑 이야기하라고 설득해보셨냐고 물었더니 안 그래도 물어봤다고 하셨다. 준수는 자신이 가진 어려운 마음을 얘기하면, 본인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봐 말하기가 싫다고 했단다. 사서 선생님까지 자기를 이상하게 보면 참을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된다고 했지만 무리하게 설득하면 역효과가 날까 싶어서 기다리기로 했다.
얼마 후, 드디어 준수가 도서관에 찾아왔다. 안 그래도 갑작스럽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었는데, 가기 전에 인사하러 온 것이었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지랖일 수도 있을 테지만 참견을 좀 하기로 했다.
“준수야 왔어? 잘 지냈냐. 너 당분간 유학 간다고 들었어. 축하할 일인 거지?”
“뭐, 그냥요. 형도 갔었고 그러니까.”
“그래도 대단하네. 유학에 필요한 시험 다 통과해서 가는 거잖아.”
“네. 그렇죠”
“준수야, 있잖아 세상에서 가장 이상한 사람이 누군 줄 알아?”
“.. 누군데요?”
“본인이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왜요?”
“사람들은 누구나 어디 한 구석은 이상한 데가 있어. 너도 이상해? 나도 이상해. 근데 각자가 그 이상한 구석들을 서로 잘 맞춰가며 살아가는 거야. 그럼 괜찮은 거고.”
“.....”
“근데 반대로 나만 정상이야 니들이 다 이상해. 이런 사람은 맞출 생각도 의지도 없는 거니까 어떻게 보면 제일 위험한 사람인 거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이상하다고 이상한 건 아냐.”
“하하. 말이 좀 뭔가... 이상한데요?”
“말이 좀 이상하지만 샘이 무슨 뜻으로 말하는지는 알겠지? 이상하다는 게 이상한 게 아니고, 내가 이상한 구석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정상이야. 눈이 한 개인 나라에 눈이 두 개인 사람이 가면 눈이 두 개인 사람이 비정상이 되잖아. 그 기준이 사람마다 달라질 수 있는 거고. 그러니까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에게는 항상 이상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거지.”
“뭔가 쉬우면서도 어렵네요.”
“나도 말하면서 점점 더 이상해진다. 암튼 샘이 말하고자 하는 취지는 알겠지?”
“네. 감사합니다.”
“그래. 즐거운 유학 생활이 됐으면 좋겠다. 자신감 가지고! 너 되게 괜찮은 놈이야.”
“하하, 네~~ 감사합니다. 잘 다녀올게요.”
몇 주 후, 준수는 홀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1년만 다녀온다고 하고 갔는데 다시 학교로 복학하지 않아서 돌아왔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었다. 어느 날 우연히 SNS 친구 추천에 준수의 이름이 떴고, 궁금해서 클릭한 계정에서 한국에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준수는 이제 20대의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었다. 그동안 준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 수는 없지만, 사진으로 볼 때는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준수가 자신의 이상함을 이상하지 않게 받아 줄 수 있는 좋은 인생의 친구들을 만나기를. 이상하고 복잡한 인생을 함께 헤쳐나갈 믿을만한 좋은 사람들이 주위에 많아지기를.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감을 멋지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기대해 본다. 이상하다고 이상한 건 아니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