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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단계의 입주청소

by Pearl K Jun 2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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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내내 공사하고 드디어 월요일, 입주청소를 하는 날이다. 지난번 이사 때 깨끗한 집을 만들어 주신 업체에서 새벽 일찍부터 서둘러 청소를 진행해 주셨다. 덕분에 출근을 하기 전 구석구석 청소하시는 모습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처음 부동산 소개로 집을 둘러보았을 때부터 깔끔한 편이었고, 토요일에 도배와 장판도 모두 마쳤다. 이번에는 크게 청소를 신경 써야 할 공간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아니었다. 외관은 멀쩡하고 깨끗해 보였으나, 한눈에 보이지 않는 곳들은 엉망진창이었다.


   뒷베란다의 창고라든지, 주방 싱크대 안쪽, 화장실 벽면타일 사이, 양변기 뒤쪽 같은 곳은 지저분한 차원을 넘어서 곰팡이의 온상이었다. 화장실을 청소하는 내내 심지어 샤워호스에서도 곰팡이 냄새가 진동했다.

   

   나와 남편은 너무도 충격을 받아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집을 보러 왔을 때 깨끗해 보인다고 했더니 자신은 깔끔한 성격이라던 이전 거주자의 호언장담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정신을 차리고 곰팡이를 뿌리 뽑기로 했다.


   청소업체에서도 직접 제작한 천연약품으로 보이지 않았던 곳까지 구석구석 솔질하고 닦아서 깨끗한 집으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어 주셨다. 너무 지저분해서 재사용할 수 없는 부분들은 미련 없이 폐기하고 연결된 수도관 속까지 청소한 후 새로운 걸로 장착했다.

   

   퇴근하고 돌아와 깨끗해진 집을 보며 내 마음속은 지금 어떤 상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겉으로는 멀쩡하고 괜찮은 듯 하지만 군데군데 비뚤어진 생각들로 썩어버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악취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곰팡이와 같은 죄악들이 어디부터 피기 시작했는지, 또 조금씩 나를 좀 먹고 있는지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나? 얼핏 보면 깨끗해 보이도록 까만곰팡이로 가득한 마음벽 위에 하얀 페인트만 덕지덕지 덧바르며 이만하면 괜찮다고 잘 살고 있다고 위안하고 있는 걸까?


   어디가 얼마만큼 더러워져 있는지, 더러워진 방을 어떤 방법으로 청소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면 깨끗해지기는 어렵다. 존 번연의 천로역정에서 지혜자는 먼지가 가득한 방을 청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크리스에게 보여준다.

   

   첫 번째 사람은 방 안에 빗자루를 하나 들고 들어와 무작정 먼지를 쓸어내려한다. 하지만 먼지가 가득한 방을 빗자루로 쓸수록 오히려 먼지가 더 심하게 일어나 결국 먼지가루 속에서 콜록콜록 기침을 하다가 청소를 포기한다.


   두 번째 사람은 한 소녀인데, 소녀는 먼지가 자욱한 방에 들어가 물뿌리개로 여기저기 물을 뿌린다. 수분과 만난 먼지는 무거워서 바닥으로 가라앉고, 소녀는 그제야 빗자루를 가지고 바닥에 있는 축축한 먼지들을 모두 깨끗하게 쓸어낼 수 있었다.


   요 몇 주간은 유난히 '겸손'이라는 단어가 자꾸 생각이 난다.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괜찮은 것 같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많은 부분이 무너져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 영혼을 청소해야 할 부분이 어딘지 잘 찾아내어 깨끗이 치우고 싶다.

   

   더 이상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아니라 향긋한 라벤더 향으로 가득하게 채워지면 좋겠다. 깨끗한 그릇으로 토기장이가 귀하게 사용하는 그릇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 자만하지 않고 겸손하게 나보다 남을 돌아보는 삶의 태도를 다시금 가져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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