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바꾸고 새로운 사람이 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자른 머리카락을 가만히 내려다보면 어쩌면 순간에 달라지는 내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아이의 중간고사 기간에 잠을 자지 못했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이를 깨웠다. 공부를 한참 해야만 하는 아이의 시간에 졸음과 피곤함이 가득 들어있다. 안쓰럽게 여긴다고 그만하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고, 마음이 복잡하다.
요새는 클래식 공연장에 거의 가질 못했다. 아이가 내가 집에 있는 걸 좋아하고 바란다. 집에 돌아오면 늘 내가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물론 좋은 말은 해주지 않고 툴툴거리지만. 아이가 자신의 시간에 나를 들여보내니, 언제까지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걸 충족해 주고 나의 시간을 내어주어야 하는 게 부모란 자리인 것만 같다. 부모라는 무게가 끝도 없이 내 어깨를 짓누르겠지만, 세상에 나오게 했다는 생명의 책임은 죽을 때까지도 견뎌 내야 하겠지.
2025년 9월 말이다. '한강 읽기' 모임을 입원과 재활로 반밖에 참여하지 못했고, 그 이후로 제주문학기행도 동행하지 못했다. 한강 작가의 책을 좋아한다고 말로만 내뱉었지, 정작 성실하게 모든 책을 함께 읽고 나누지 못했다. 그럼에도 책을 함께 글 벗들과 내보자는 제안은 거절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한강 작가를 다루는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글 벗들과 함께 나누는 것을 마다 할 수는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드러낸다는 것에 망설이기도 했지만, 그냥 가보기로 한 것이 마음을 더 평안하게 해주었다. 추석 때쯤 그 결과물이 나올 것 같다. 두근거리고 설레는 기분은 글 벗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 때문이다. 올해 10월은 달의 뒷면에 감추어진 소식을 전해줄 것이다.
� Jean Sibelius – “The Spruce” (Kuusi), Op. 75 No. 5
이 곡은 핀란드의 국민 작곡가 **장 시벨리우스(Jean Sibelius, 1865–1957)**가 1914년경 작곡한 피아노 모음곡 <5개의 나무 (5 Pieces for Piano, Op. 75)> 중 다섯 번째 곡으로, 핀란드어 제목은 "Kuusi", 영어로는 **"The Spruce(가문비나무)"**입니다.
� 곡의 배경과 의미
시벨리우스는 자연, 특히 핀란드의 숲과 나무를 깊이 사랑했고, 이를 자주 음악으로 표현했습니다. 이 작품도 그런 자연 예찬의 한 예로,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시간과 생명의 흐름, 삶의 덧없음과 숭고함까지 담아낸 시적인 피아노 소품입니다.
“가문비나무”는 북유럽 숲에서 오래도록 자라는 상징적인 나무로, 조용히 세월을 견디는 생명력을 나타냅니다. 시벨리우스는 이 곡에서 나무가 씨앗에서 자라나고, 폭풍을 견디며, 결국 고요히 늙어가는 과정을 음악으로 그려냈다고도 해석됩니다.
✨ 감상 포인트
음악 전체가 말없이 서 있는 숲 속의 나무 한 그루처럼 느껴지며, 핀란드 자연의 정서를 그대로 품고 있습니다.
화려하지 않지만, 깊고 사색적인 아름다움이 있어 “핀란드적 낭만주의”의 정수를 보여 줍니다.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닌, 인생과 시간에 대한 성찰을 담은 **음악적 시(詩)**로 들어보면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 Janne Mertanen의 연주는 특히 서정성과 절제된 감정 표현이 뛰어나서, 시벨리우스가 의도한 자연의 고요함과 존엄함을 잘 살려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