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는 감자는 조별 발표가 싫어요.
첫 번째 진땀 나는 강의가 끝난 후, 동기들끼리의 첫 모임이 있었다.
직장인들이 많다 보니 최대한 저녁 시간으로 정했지만 그럼에도 일정이 안되시는 분들은 몇몇 불참했다.
학부를 갓 마치고 자대 대학원으로 진학하신 분들은 이미 친구가 된 것처럼 친해 보였고, 활발하신 분들은 단체 톡방에서부터 존재감을 드러내며 랜선 친분을 쌓은 것 같았다.
나는 낯가림도 심하고 혼자 있는 게 편하고 익숙해서(그렇다고 사회부적응자는 아닙니다) 첫 만남에 동기들의 이야기만 듣다가 오게 되었다.
시끌벅적한 분위기에 왠지 모를 에너지가 소진되는 기분이었지만 새로운 분들과 첫 만남에서 새로운 시작을 함께하는 내적 설렘을 느끼게 된 시간이었다.
정치인 겸 방송인 모씨는 자신은 대학생활 4년 동안 토론에서 지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토론과 토의를 통해 상대방의 의견을 들으면서 자신의 생각이 편협하진 않았는지 돌아보게 되고 몰랐던 정보를 알게 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니까. 서로의 상호작용 속에서 배움과 발전을 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게 과제가 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배움을 위해 대학원에 진학했지만 결국은 성적을 잘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배움의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는 성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학부 때를 떠올려보면 조별 발표를 안 하는 과목이 없었던 것 같다. 적어도 2명씩 발표하는 과제는 하나씩 꼭 있었으니까.
2명씩 하는 과제는 그나마도 서로의 할당량을 미룰 수가 없다('나' 아니면 '얘'가 해야 되니까 눈치가 보여서라도 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3명 이상부터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한다.
발표를 위해서는 각 주제에 대한 자료조사, 내용정리, PPT 만들기, 발표자 선정 등 분배가 필요하다.
기한에 맞게 제출하려면 계획대로 진행되어야 하고 모두의 협조가 필수인데 여기서 빌런이 등장하면 명치가 갑갑해져 오는 것이다.
무튼, 이러한 경험들 때문인지 나는 조별과제가 정말 싫었다. 잘되든 못되든 과제의 미흡함에 대한 책임은 나한테 있다고 생각하는데 조별과제는 원치 않게 피해 보는 누군가가 생기기 마련이다.
두 번째 강의는 '심리치료' 수업이었는데, 각자 한 챕터씩 발표자료를 만들어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정신병리학 과목이랑 동일하다).
정신병리학 과목과 다른 점은 심리치료 교수님은 해당 챕터 발표 후에 반드시 토론을 시켰는데, 랜덤으로 2-3명씩 조를 만들어서 해당 주제에 대해 인상 깊었던 점이나 이론에 대한 의견 등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했다.
그리고 토론 시간이 종료되면 2-3조 랜덤으로 호명하고,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물어보셨다.
심리치료는 특히나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기 때문에 토론이 필수인 교수님의 강의는 교과목에 최적화된 방식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발표 공포증에다가 조별과제에 취약한 말하는 감자일 뿐이라 초반에 수업방식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다.
심리치료 수업 첫 강의는 그 유명한 프로이트(Sigmund Freud) '정신분석치료'로 정신분석 치료의 개요부터 주요 개념, 치료이론, 치료의 실제 등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다.
여기서 잠깐 정신분석치료를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이론을 바탕으로 발전한 것으로 교육·상담·심리학 등의 주요 이론으로 등장하며, 분석심리학 및 개인심리학을 비롯한 다양한 이론에 영향을 주었다.
추동은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로서 프로이트는 성적 추동을 무의식을 움직이는 원동력으로 보았으며 리비도(Libido)라고 한다. 리비도를 중요하게 보기 때문에 성 에너지의 집중부위에 따라 인간발달의 단계를 구강기-항문기-남근기-잠복기-생식기로 구분하였다.
남근기 단계에서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남자아동이 어머니의 사랑을 얻기 위해 아버지를 경쟁상대로 느끼는 심리적 갈등), 엘렉트라 콤플렉스(여자아동이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어머니를 경쟁상대로 인식)의 경험들은 신경증을 유발하는 주요한 원인이라고 보았다.
불안이 발생했을 때 작동하는 방어기제는 합리화, 투사, 반동형성, 부인 등이 있으며 자아가 불안을 감소시키기 위한 무의식적인 기능이다. 정신분석치료의 기법 중 자유연상, 꿈 분석은 내담자가 떠오르는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하여 그것을 통해 무의식을 해석한다.
내담자의 과거경험에서 중요한 타인에게 느낀 감정을 치료자에게 나타나는 것을 전이라고 하며, 치료자는 전이를 유도하고 분석함으로써 내담자의 무의식적 갈등을 이해할 수 있다.
역전이는 전이와 반대로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나타내는 것으로 교육분석을 통한 치료자의 무의식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 필요하다.
* 위의 내용은 '현대 심리치료이론과 상담이론'(권석만 저)을 바탕으로 학습한 것을 정리한 것이다.
해당 강의를 다 듣고 나서 토론의 시간을 가졌는데, 내가 흔히 사용하는 방어기제와 전이의 경험이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내용이었다.
나는 주로 투사, 합리화를 사용하여 일상에서 오는 불안이나 불쾌감을 감소시키려고 하는 면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회사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직장상사가 원망스러웠는데 상사가 나를 싫어하고 미워해서 힘들게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고, 내 업무성과가 좋지 않은 것은 직장상사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로 인한 것이고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스스로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동기들은 어떠한 방어기제를 사용하는지, 전이의 경험이 있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론에 대한 정리와 함께 동기들에 대한 성향을 이해하게 되는 기회가 된 것 같았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저 교수님이 랜덤으로 지목하는 조별 발표에 걸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소수의 2-3명 앞에서 의견을 말하는 것과 20여 명이 넘는 그리고 교수님 앞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하는 것은 긴장도가 다르니까.
교수님: 정신분석이론은 우리가 학부 때부터 처음 배우는 이론이라 익숙하긴 하지만 알면 알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죠. 이야기는 잘 나눠봤겠죠? 2-3조 정도 어떤 주제로 이야기했는지, 토론을 통해 배운 점이나 뭐든 좋아요. 발표 한번 해보도록 하죠. 저기 글몽이 선생님네 조부터 발표해 볼까요?
(오 마이 갓. 교수님 왜 이러세요. 저는 그저 말하는 감자일 뿐입니다. 왜 하필 저를 선택하셨어요.)
글몽이(나): 아, 네 교수님. 저희 조는 일상에서 내가 흔히 사용하는 방어기제와 전이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습니다.
교수님: 좋아요. 선생님들 어떤 방어기제와 전이 경험이 있었는지 말씀해 주세요.
앞에 소개까지는 좋았는데, 발표를 하려고 하니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우리끼리 이야기할 때는 곧잘 나왔던 내용들인데 동기들과 교수님이 지켜보고 집중한다고 생각하니까 말을 더듬게 되었다. 보다 못한 동기가 불안한 내 모습을 보고 말을 이어갔다.
동기 1: 아! 교수님, 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방어기제는 어쩌고 저쩌고 저쩌고 어쩌고 이렇습니다. 전이 경험은 아직 해본 적은 없고요. 다른 동기들이 경험한 방어기제를 들으면서 흥미로웠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진 것 같았습니다.
(아!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 멘트는 나도 하고 싶었는데. 어쩌지.)
다행히 동기 1이 이야기를 잘 이끌어주었지만 결국은 돌아가면서 의견을 다 말해야 했다.
글몽이(나): (마음 같아서는 교수님, 제 의견은 비... 밀입니다!!라고 하고 싶었다)
저.. 저는 회사에서 주로 투사, 합리화를 사용하는 거 같습니다. (버퍼링) 상사가 힘들게 해서 아 아니 제가 상사를 미워하는데 상사가 저를 미워한다고 생각한다거나 성과가 좋지 않은 것도 상사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저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것 등이 있었어요. 저도 전이를 경험한 적은 따로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동기들의 이야기를 듣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와 동기의 멘트를 복붙 한 것 같은 찜찜한 마무리로 발표를 마쳤다.
교수님과 동기들은 박수를 쳐주며 나의 숨 막히는 토론을 격려해 준 것 같았다.
교수님: 좋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아요. 방어기제는 불쾌한 상황이나 위협으로부터 무의식적으로 실제 욕망을 조절하거나 왜곡하면서 자신을 보호하려는 적응행위로 누구에게나 있는 면이에요. 방어기제 없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들걸요? 토론이 익숙하지 않았을 텐데 게다가 모두 앞에서 발표까지 하는 건 더 어려웠을 거예요. 한 학기 동안 제 강의를 듣다 보면 어느새 토론에 익숙하고 자연스러워질 거예요. 정답을 찾기보다 서로의 의견을 경청하고 교류하는 것을 통해 배움을 얻어가는 것 그게 필요한 거니까요. 선생님들은 앞으로 심리학자가 될 분들이니까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면 잘 들어야 하고 이야기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져서는 안 돼요.
교수님의 멘트를 끝으로 첫 번째 진땀 나는 조별 토론발표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교수님의 취지와 강의 방식을 지지하지만, 조별발표 알레르기가 있는 나는 앞으로 이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 독자님들, 2년 동안 말하는 감자에서 사람이 되기까지 고군분투한 과정을 지켜봐 주세요.
다음 주 연재는 '상담면접' 과목에 대한 에피소드를 풀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