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담자가 되어보는 경험
내가 1학기에 신청한 과목은 정신병리학, 심리치료, 그리고 전공필수이자 심리상담의 시작인 '상담면접' 과목이다.
우리는 타인의 모습을 보며, 나의 행동을 돌아보고 안 좋은 점은 고치고 좋은 점은 발전시킨다. 그리고 때론 타인의 상황에 당사자보다 더 화가 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한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서로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하는 것은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만 상담사와 내담자가 되면 이런 점은 다소 위험할 수 있다.
간단히 전이와 역전이로 설명할 수 있겠는데, 전이(Transference)는 내담자가 과거의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주요 인물에게 느꼈던 감정이나 행동을 상담사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엄격한 부모님에게 양육받았던 내담자가 치료자를 부모님처럼 인식하여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와 반대로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는 상담사가 내담자에게 자신의 감정을 투사하는 것을 의미한다. 흔히 치료자가 내담자의 상황에 과도하게 몰입하고 반응하는 경우이다.
이것은 상담장면에서 발행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분석과 활용을 잘한다면 내담자의 무의식을 탐색하고 변화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그러나 심리상담사로서 전이와 역전이가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한 채 상담에 임하다 보면 내담자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주의해야 한다.
* 전이의 부정적인 영향:
- 내담자가 상담사에게 지나친 의존을 할 수 있음(신뢰로운 관계형성은 상담관계를 촉진하지만 지나친 의존은 집착이 될 수도 있어서 유의해야 함)
- 반대로 내담자가 상담사에게 적대적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경우, 내담자가 마음의 문을 닫아 문제가 악화될 수 있음
* 역전이의 부정적인 영향:
- 내담자가 상담사에게 의지하는 것을 인식하고 내담자에게 과도하게 반응하고 보호하려 함
- 과거 상담사가 경험한 상처가 상기되는 것을 피하고자 내담자에게 거리를 두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임
심리상담사는 내담자가 어떤 마음으로 상담소에 찾아왔는지, 상담과정에서 불편한 점은 무엇인지, 상담사와의 관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내담자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상담면접 교수님은 강의 첫 시간부터 과제를 안내하셨다.
교수님: 선생님들 반갑습니다. 상담면접 과목은 1학기 동안 상담 과정과 사례운영의 실제에 대해 이해하고 상담면접에 사용되는 기법들을 이해하고 실제 상담에 효과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거예요. 이미 심리상담을 받아본 경험이 있으신 분들도 있을 거고 생소한 분들도 계시겠죠? 심리상담사가 되기 전에 먼저 내담자로서 상담을 경험해 보는 것이 중요하고 반드시 필요해요. 제가 무료상담센터 몇 곳을 안내해 드릴 건데 이중에 한 곳을 선택해서 상담을 받은 후 경험보고서를 작성해서 기말고사 때까지 제출하시면 됩니다.
나는 대학원에 진학하기 전에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심리상담 프로그램을 경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상담선생님의 상담기법이나 표정, 말투 등이 자세히 기억이 나진 않았어서 이번 과제를 통해 제대로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보통 상담회기는 8회기~10회기 정도로 진행돼서 기말까지 경험보고서를 제출하려면 상담센터에 최대한 빨리 예약하는 것이 좋았다.
직장을 병행해야 했기에 상담시간은 퇴근 이후 저녁, 집과 회사에서 멀지 않을 것 내 나름의 조건이 있었다. 교수님께서 안내한 상담센터 중 위의 조건에 만족하는 센터를 찾게 되어 예약을 했고, 간단한 인적사항과 현재 문제가 무엇인지 작성해서 보냈다.
* 내가 겪고 있는 현재 문제:
일상이 무기력하고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인간관계에서 내가 마음을 준 타인에게 그만큼 마음이 느껴지지 않은 상황이면 회의감을 느낍니다. 주로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동료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인데, 일상에 지장은 없으나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신경이 쓰입니다. 스스로가 그런 인간관계에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우고, 타인의 마음을 지레짐작하여 왜곡하지 않게 건강한 마음으로 지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어서 상담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서울시 상담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때와는 달리 대학원생으로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내담자 경험이라 온전히 내담자로서 상담과정에 집중할 수 있을지 내심 걱정되었다. 그렇지만 아는 만큼 얻어가는 게 있다고 학생으로서 상담선생님의 말과 행동, 상담기법을 배워갈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끼고 성실하게 임하기로 했다.
어느덧 상담예약시간이 다가왔고, 2023년 3월 22일, 내담자로서 첫 상담이 시작되었다.
상담센터에 10분 전에 도착해서 프런트에 접수를 마치고, 그렇게 상담선생님과의 첫 만남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담 전에 문자로 선생님이 여자분이시고 성함이 OOO이라는 것만 안내받아서 선생님이 어떤 분 일지 기대되고 긴장되기도 했다.
18:00이 되었고, 인자한 미소를 띤 단발머리 선생님이 말하셨다.
상담선생님: "글몽이님이시죠? 안녕하세요. 상담사 OOO입니다. 이쪽 방으로 가실까요?"
(*당시 상담센터의 사진을 찍지 못해서 유사한 이미지를 가져왔다)
방에 들어가자 깔끔한 분위기의 탁자와 의자가 있었고 자리에 앉아 첫 면담이 시작되었다.
상담선생님: 글몽이님 반가워요! 상담센터 찾는데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중략) 접수하신 내용을 잘 읽어보았어요. 상담에 앞서 저희가 앞으로 진행할 사항에 대해 안내해드리려고 해요.
내가 접수한 내용을 토대로 하나씩 읽어가며 상담진행에 관한 전반적인 안내사항과 녹취 등에 대한 동의서도 작성했다.
상담선생님: 글몽이님의 현재 고민과 상황에 대해 써주신 내용을 보았어요. 오늘은 어떤 일이 있으셨나요?
글몽이(나): 일상에서의 무기력함과 무의미함을 느낄 때가 있고, 특히 인간관계(주로 회사)에서 내가 마음을 준 타인에게 그만큼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 상황이면 회의감을 느끼는 거 같아요. 주로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동료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인데, 일상에 지장을 주는 정도는 아니지만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신경이 쓰이는 정도예요. 스스로 이런 인간관계에 대해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우고 타인의 마음을 지레짐작하여 왜곡하지 않도록 건강한 마음으로 지내고 싶어요.
상담을 받는 동안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에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청하는 태도를 보였고, 등받이 의자에 등을 기대기보다 상체를 앞으로 살짝 구부려 자세만으로도 나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상담선생님: 글몽이님은 눈치도 빠르고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어서 타인이 캐치하지 못하는 부분을 볼 줄 아는 장점이 있는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어떠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원인을 본인에게 귀속시키려는 것보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할 거 같아요. 예를 들면 '저 사람이 인사를 안 받았네, 내가 뭘 잘못했나?'가 아닌 '몸이 안 좋거나 무언가 생각하고 있어서 못 들었겠지' 이런 식으로요.
상담은 1회기에 50분 정도 진행되었고, 다음 회기 때는 타인의 좋지 못한 반응이 내 탓이 아니고, 타인의 감정이라는 ‘생각분리’ 해보기에 대한 이야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첫 회기가 마무리되었다.
상담선생님: 오늘 첫 상담은 어떠셨을까요?
글몽이(나): 예전에도 상담받아본 경험이 있어서 낯설지는 않았는데 그때와는 또 다른 느낌인 거 같아요. 제 고민을 이야기하는데 마음이 편안했고 앞으로의 상담이 기대돼요.
상담선생님: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저도 감사하네요! 오늘 하루도 고생 많으셨어요. 다음 시간에 봬요.
첫 회기를 마치고 내가 과연 상담선생님처럼 내담자를 편안하게 잘 이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50분이라는 시간 동안 내담자에게 집중하고 그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적절한 기법을 사용하는 것, 내담자가 거부감이 들지 않도록 그러나 너무 감정이 이입되지 않는 적정선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음이 느껴졌다.
(*심리상담사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에도 내담자는 영향을 받기 때문에 책임의 무게가 엄청난 직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에 비해 상담사의 직무에 대한 고충이나 중요성이 덜 부각되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내가 내담자가 되어보니 상담사가 되면 이런 점은 유의해야 되고, 이런 점은 활용하면 좋겠고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지가 보였다. 내담자 경험은 과제를 위한 일시적인 것이 아닌, 심리 전문가가 되기 위한 기나긴 여정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공부만 할 때가 좋았는데 왜 그때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
직장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정말 토 나올 정도로 힘겨운 과정이었다.
다음 시간에는 끊임없는 과제와 강의에서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