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가져다준 고요한 하루

PARAT 3. (p.109) 하루를 여행자처럼 보낼지 노동자처럼 보낼지

by 마고캐런

사람은 보이는데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코까지 가려진 마스크를 쓰고 눈만 내놓고 있다.


전철을 타면 타인의 지친 얼굴을 보면서 나의 하루를 위로받기도 하는데 이제 그런 얼굴이 없다. 힘들 때는 힘든

얼굴로 위로받고 기쁠 때는 그들의 환한 미소로 함께 유쾌해지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동거리와 머무는 공간에서 타인의 얼굴을 볼 수가 없다. 그저 눈만 내놓고 있을 뿐. 그 눈도 쳐다보기 어렵다. 어떻게라도 노출된 눈은 정면보다는 손에 쥔 휴대폰을 보고 있는 시간이 많다.


미디어의 재잘거림에 현혹되어 스마트폰도 바쁘게 뉴스 페이지를 갱신하고 있다. 잠시의 이동도 걱정스러운 요

즘이다. 아니, 미디어가 더욱 그렇게 느끼게 만든다. 한국에서의 시간이 외국에서 여행할 때보다 더 불안해졌다(비단 한국의 상황만은 아니지만).


나란 여행자는 미디어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미디어에 시간을 빼앗겨도 좋을 만큼 단순한 현재를 살고 있지 않다. 굳이 본문까지 읽지 않고 헤드라인만 훑어도 상황을 파악하는 데는 충분하다. 세상은 뉴스거리로 넘쳐난다. 이슈가 클수록 뉴스 제목은 자극적이다. 그럼에도 쉽게 낚이지 않는 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너무 직접적으로 접하지 않고 사람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읽으며 내부충격을 완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2002년 사스가 처음 발생한 홍콩이 피해야 할 여행지 1순위였을 때의 일이다. 나는 30대가 되면서 해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구멍 뚫린 항아리처럼 세계 일주에 돈과 시간을 쏟아 붓고 있었다. 마침 여행시장이 극도로 안 좋아지면서 이때다 싶은 마음에 내 인생 최장기 배낭여행을 준비했다. 그것도 피해야 한다는 홍콩을 경유하면 비행기가 가장 싸진다는 것을 알고 홍콩 경유 인도행 티켓을 일부러 찾고 있었다.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내가 사스가 발발한 홍콩을 거쳐 간다는 사실을 알고는 미친 짓이라며 여행을 만류했다. 그러나 하지 말라면 더 하고 싶은 게 나 같은 일탈형 여행자의 속성이라 나는 쾌재를 부르며 배낭을 꾸렸다. 당시 내 체력으로는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잠을 자거나 기차역 플랫폼에서 밤을 새워도 피곤하지 않을 때라 어디를 간들 겁나는 게 없었다. 결국 최종 선택한 티켓은 홍콩공항에서 12시간을 체류하는 최저가 항공권이었다(공항에서 오래 머물수록 가격이 저렴하다).


여행이란? 누군가는 꼭 피하고 싶은 지역이지만 그런 도시를 일부러 찾아가는 알뜰한 여행자도 있는 법이다.

친구들은 묻는다. 왜 여행을 하는지. 죽으려고 여행하는게 아니면 피할 건 피해야 하지 않느냐며. 나는 대답한다. 모름지기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를 모르고 예측불허의 즐거움을 찾아 떠나는 것이 여행인데 왜 죽음을 염려하느냐고.


옛날 얘기지만 내가 그렇게 죽을 목숨이었다면 일곱 살에 부산 친척집에 놀러가서 교통사고가 났던 그때 죽었어

야 했다. 골목에서 동네 아이들과 뛰어놀다가 달려오는 트럭에 부딪혀 허공에 붕 떴다가 아스팔트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그때 운이 나빴다면 즉사, 아니면 평생 불구자로 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일은 부모님조차 딸이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지도 몰랐을 정도로 감쪽같이 지나갔다. 할머니의 비밀작전 덕분에 나는 이마에 상처만 살짝 남긴 채 무사히 퇴원했고 누구도 걱정시키지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초등학교 입학식 하루 전날 밤에 시골에 있는 우리집에 잘 도착했으니 말이다.


캄캄한 밤하늘에 잠깐 빛났다 사라지는 별처럼 나는 병원에서의 힘든 시간을 모두 리셋해버렸다. 그때 나는 부산에서 잘 놀다온 개구쟁이였을 뿐이다. 가족들은 나중에야 사고 얘기를 들었지만 평소처럼 잘 뛰어노는 나를 보고 별일 아닌 듯 받아들였다. 당시 엄마는 연락 가능한 통신수단이 없어서 교통사고를 늦게 알았고 어린 형제들은 내가 사고를 당했는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러나, 어린 나는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지만 사고당한 병원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원망과 피해의식이 생겼던 것 같다. 병원에 홀로 내버려진 나는 가족의 보살핌도 없이 치료를 받았고, 그 트라우마로 아직도 병원에 가는 게 두렵다.


‘교통사고가 났을 때 그냥 죽었어야 했을까? 난 혹시 주워온 자식일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매일 밤 침상 머리에서 나를 괴롭혔다. 그래서 부산은 물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여전히 내게 먼 곳이다. 부산에서 대학을 졸업했지만 추억이 없다. 해운대 광안리에서 수영 한 번 한 적 없고 데이트를 해본 적도 없다. 내게 한국의 부산은 독일의 뮌헨보다 낯설다. 부산에서 보낸 시간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잊고 싶은 기억은 잊어버린다. 나는 지금도 부산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너라는 아이는 좀 이상해. 평소 말하는 것도 그렇고 행동도 그렇고. 아무래도 교통사고후유증인 것 같아. 지금은 어디 아픈 데 없니? 아무래도 그때 뇌가 좀 손상된 게 아닐까?” 걱정 반 위로 반. 이미 지워버린 교통사고의 기억을 굳이 떠올리고 싶지 않지만 그 얘기를 아는 사람들은 가끔 내가 이상하다고 말한다. “뭐가 이상해? 난 정상이야.” “아니, 네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비정상이야.” 10년을 알고 지낸 언니가 마흔이 되었을 때 한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맞다. 나는 그들보다 개성이 강하고 자유로운 사람이며, 솔직하고 당차며 겁도 없다. 그러나 나는 모든 바퀴를 무서워한다. 자전거도 탈 줄 모르고 오토바이 뒤에 앉아서도 불안해서 눈을 감는다. 1종 보통 초록 운전면허증을 가지고 있지만 연수받다가 강사가 나를 포기했다. 내 삶은 어릴 때의 교통사고와는 상관없이 잘 굴러가는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어떤 바퀴 달린 것도 운전하지 못하는 걸 보면 정신적

후유증이 남아 있는 것도 같다. 그래서일까. 나의 여행은 언제나 기차와 버스를 중심으로 한 대중교통으로 시작되었다. 여행 가서 하루에 16시간을 걸어도 자전거 한 번, 렌터카 한 번 빌린 적이 없다. 피곤하다. 그래도 좋다. 걸어 다녀도 신난다.


“차 가지고 오셨죠? 어디에 주차하셨나요?”


서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미팅이 끝나면 주차장부터 찾는다. 나는 길 위에 앉아 허비하거나 주차를 하지 못해

헤매는 시간이 없다. 주차딱지를 떼여본 적이 없고 속도위반을 한 적도 없다. 비상시에만 신분증으로 사용하던 운전면허증조차 잃어버린 지금, 새로 발급받을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살고 싶은 도시를 고를 때도 나는 대중교통이 편리한 도시를 꼽는다. 겨울엔 스페인 마드리드이고 여름엔 독일 뮌헨이다. 자동차가 필요 없는 서민적인 도시, 여행자가 밤에도 편하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안전한 도시, 그런 도시가 또한 서울이다.


오늘도 전철을 타고 강남으로 미팅을 간다. 평소와 다른 건 옷을 좀 더 신경 써서 입고 머플러로 포인트를 준 것

뿐이다. 그래도 강남인데 하며 신경이 쓰인다. 내게 강남은 독일의 대도시보다 불편하다. 남의 눈을 의식해 챙겨 입어야 하고 괜히 신경 써서 걸어 다니게 된다. 여행을 가면 몸치장할 이유가 없고 신경 쓸 시선도 없어서 좋다. 멋이 없어도 자유가 있다. 나의 캐리어에는 언제나 유행 지난 옷들과 사이즈가 작아서 못 입는 옷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여행 중에 매일 한 꺼풀씩 벗겨낸다. 여행가서 버릴 게 너무 많다. 옷도 버려야 하고 마음도 비우고

와야 한다. 여행 초반에 불룩했던 가방은 여행이 길어질수록 가벼워진다. 마지막으로 귀국할 때 고장 난 캐리어까지 버리고 온 적도 많다. 한때 유행한 미니멀라이프는 생활에만 적용할 것이 아니라 여행에서 더 필요하다.


서울에서의 미팅 장소는 대부분 고층 건물이다. 그래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거나 계단을 걸어 올라가면 내비게이터에 의존하지 않아도 목적지가 쉽게 보인다. 차로 왔으면 건물 주차장으로 가서 신속하게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겠지만 나는 그 시간에 건물 주변을 둘러본다. 이쪽 동네 맛집은 뭐가 있는지,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카페 분위기는 어떤지, 우리 동네에 없는 간식으로 무엇을 파는지 살펴본다.


오늘도 미팅 한 시간 전에 도착해서 카페부터 식당 메뉴까지 주변을 훑고 있다. 여행 중에 아시아음식이 그리울

때마다 찾아서 먹던 베트남쌀국수 집에서 오후 간식을 해결하기로 한다. 싱싱한 숙주가 흠뻑 담긴 매콤한 면을 먹으며 잠시 추억여행을 떠난다. 그런 순간만큼은 강남에 미팅하러 온 게 아니라 맛기행을 하러 로마에 온 골목여행자 같다.


똑같은 근무시간. 반복되는 이동. 우리는 하루를 여행자처럼 보낼지, 노동자처럼 보낼지 선택할 수 있다. 나의 경우엔 자주 여행의 순간을 떠올린다. 전철을 타도 사람들 얼굴을 보려 하고, 어색해지면 벽에 부착된 광고

문구라도 읽는다. 스마트폰에서 뉴스를 클릭하거나 영화나드라마를 다운받아 보지 않는다. 지금까지 휴대폰으로 게임을 해본 적도 없다. 전철 출구를 나와 거리를 걸을 때는 하늘을 본다. 그리고 가로수 잎들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낀다. 가끔은 큰 도로보다 주택가 골목길을 일부러 찾아 걷는데 그럴 때면 지나가는 차가 뿜어대는 매연마저 향기롭게 느껴진다. 다행히 나는 후각이 예민하지 않아서 언제나 시각으로 많은 것을 즐긴다.


특히 요새는 코로나19로 거리에 사람이 줄어 산책하기가 더 좋다. 전철에도 사람이 줄었고 도로에도 사람이 없

으며 가게들에도 손님이 없다. 모두 어디로 숨었을까. 이럴 때 나는 어디로 가면 좋을까. 퇴근시간 사람들은 바삐 움직이는데 금방 거리가 빈다. 나는 생각한다. 이제 집으로 갈까, 카페로 갈까, 쇼핑하러 갈까.


오늘 하루도 나의 여행은 지하철 2호선을 한 바퀴 돌며 커피를 세 잔, 간식을 두 번 각각 다른 장소에서 먹었다.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떠는 것도, 파트너 회사를 찾아가 미팅하는 것도 내겐 모두 여행이다. 여행이 뭐 별건가, 꼭 멀리 간다고 여행이 아니며 배낭을 메고 걸어야 여행인 것도 아니다. 사진 한 장 안 찍어도 우리는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기억할 수 있다. 여행하는 태도로 오늘 하루의 소소함을 특별하게 느끼며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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