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서 사람이 도착하면 유목민의 환대는 비슷하다. 먼저 마실 것을 내놓고 쿠키랑 과일 또는 고기라도 한 접시 먹게 한다. 오늘 승마체험에는 점심이 포함되어 있어서 유목민 엄마는 도착한 손님들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점심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는 네팔 카트만두에서 먹은 볶음면과 모양이 비슷했다. 몽골, 네팔, 우리나라 모두 같은 인종이라 그런지 면의 맛도 모양도 비슷해서 생각보다 맛있게 먹었다.
식사 중에도 얼른 말이 타고 싶어서 언제 말을 타러 가냐고 물었다. 점심을 먹고 나면 바로 탈거니 일단 많이 먹
어두라고 한다. 그러나 속이 불편하면 승마도 힘들까봐 평소보다 적게 먹고는 기대감에 부풀어 챙겨온 비옷과 산쵸를 모두 꺼내 입었다. 그러고도 날씨가 불안해서 머리에는 모자를 쓰고 목에 머플러까지 둘렀다. 나름 단단히 무장을 하고 비장한 마음으로 밖에 나가니 큰아들이 말에 안장을 얹고 있었다.
“나는 어느 말을 타나요?”
“특별히 오늘은 이 말을 탈 거예요. 다른 말들과는 달릴 때
스텝이 좀 다른데 아주 좋은 말이죠.”
말도 종류에 따라 걸음걸이가 다르다니 신선한 정보다. 말이란 그냥 본능적으로 달리기만 할 줄 알았는데 어떻게 다를까? 오늘의 승마체험을 위해 유목민 큰아들은 몽골 전통의상을 입고 있었다. 나한테는 발목 보호를 위해 두꺼운 가죽천이 둘러진 승마 부츠를 신으라며 준다. 승마용 신발까지 신고 나니 제대로 몽골 승마선수가 된 기분이었다. 파파는 아들이 셋 있는데 큰아들은 매년 마상대회에 나갈 정도로 선수라고 자랑을 했다. 내 옆에서 밥을 먹던 코흘리개 막내도 따라 나오더니 옆에 있는 말 하나를 잡아타고는 초원으로 사라진다.
“어머 저 꼬마도 말을 타네요. 몇 살부터 말을 타기 시작한 거예요?” “여기서는 서너 살 넘으면 아이들도 말을 타요. 일단 이 말을 타세요. 저는 저 말을 타고 따라갈게요. 가이드도 같이 가서 두 사람이 양쪽에서 호위할 테니 걱정은 안 해도 됩니다.”
큰아들이 나를 먼저 황색 말에 태운다. 그의 말보다는 몸집이 작은데 달리는 실력은 다른 말보다 뛰어나다며 안
심하라고 말한다. 그런데 내가 올라타자마자 말이 움직여서 깜짝 놀랐다. “으악! 이건 아니잖아요. 떨어지면 어떡해요. 말 좀 잡아주세요!”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르니 큰아들이 뛰어와서 말고삐를 잡고 멈춰 세운다.
“아니 말이 이렇게 주인 허락도 없이 혼자 가도 돼요? 살짝 걱정되는데요.” “오늘 좀 이상하네요. 말이 이렇게 혼자 움직이지 않는데 손님이 마음에 드나봅니다.” “고맙긴 한데 오늘 승마하기도 전에 떨어져 죽는 줄 알았어요.” 십 년 감수한 마음을 부여잡고 말을 탄 채 갈기를 쓰다 듬어주었다. 말과의 첫인사는 아찔했지만 이 말이 나의 오랜 숙원을 풀어줄 것 같다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승마의 꿈을 위해 몽골까지 온 만큼 나도 조금은 담대해질 필요가 있었다. 마음은 파동이어서 내가 불안하면 동물에게도 그대로 전이된다. 나는 다시 한 번 편안하고 친근한 목소리로 말의 이름을 부르며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오늘 하루 잘 부탁해.”
세 사람 모두 말고삐를 잡고 목장 밖으로 향했다. 경주마 세 마리가 산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5분 정도 걸어가는데 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가이드한테 먼저 말을 걸었다. 큰아들은 정말이냐며 얼굴을 돌려 확인을 한다. 나는 ‘예스!’라는 뜻으로 엄지를 세웠다.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내 말에 채찍을 가한다. 주인한테 한 대 맞은 말은 독일 아우토반을 달리는 자동차처럼 쌩하니 내달렸다. ‘와! 이렇게나 빨라!’ 너무 빠른 속도에 제대로 소리도 지르지 못할 정도였다. 다행히 두 남자가 달려와 줘서 말은 멈추고 마음도 안정이 되었다. 달리던 말이 다시 걷는데 확실히 달릴 때와 걸을 때의 스텝이 달랐다. 처음 말을 타고 달려봤지만 말이 달릴 때는 말과 내가 하나의 움직임으로 가야 한다. 말이 곧 나이고 내가 말이 되어 혼연일체로 달려야 말도 나도 힘들지 않다.
말이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그 순간의 감정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그러나 승마는 생각보다 체력 소모가 컸다. “사람만 힘든 게 아니에요. 계속 달리기만 하면 말도 지치죠. 그래서 걷다가 달리다가 반복하면서 가야 해요. 시간이 되면 자유롭게 풀 뜯어 먹을 시간도 줘야 하고요. 그래도 승마가 처음이라면서 이 정도까지 달린 건 정말 잘 타시는 거예요.” 초원을 달리고 싶었던 것은 맞지만 이렇게 빗속을 달릴줄이야!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나는 몽골 대초원을 멋지게 달리고 있었다. 분명 처음인데 승마를 오래 즐긴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그들과 어울렸다. 비가 내리는 초원은 구름낀 회색이지만 내 마음은 실시간으로 화창한 하늘색이었다. 액자에서 비롯된 오랜 상상이 현실이 된 순간이다. 나는 지금 진짜로 초원을 달리고 있다.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는 순간,
여행자의 시간에 특별한 감동이 더해진다.
아름다운 눈빛을 가진 말이 테를지Terelj국립공원 산자락에서 여유롭게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나를 태우고 무사히 달려준 말이 고마워 쓰다듬고 끌어안으며 마음으로 감사를 전했다. 초원에는 온갖 색깔의 야생화가 가득 피어 있고, 나는 꽃보다 황홀한 감동으로 꿈을 이룬 행복에 젖었다.
“목장으로 돌아가는 길인데 얼마나 더 달리고 싶어요?”
“체력으로는 5분을 버티기 힘들 것 같은데 단 한 번이라도 10분 이상 달리기에 도전하고 싶어요.”
우리는 빠른 진행을 위해 간단한 영어 신호를 정했다. ‘now’ 하면 달리고 ‘stop’ 하면 멈추기로 했다. 그렇게 now와 stop을 반복하며 세 마리의 말이 초원을 신나게 달렸다. 연속 달리기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말이 걸어가다 뛰는 스텝으로 바꾸면 5분을 버티기도 힘들다. 말은 달리면 달릴수록 속도가 빨라지지만 나의 하체는 그만큼의 저항을 이겨내지 못하고 근육이 풀리면서 몸에 균형을 잃는다. 순간에 심취해 “stop”을 외치지 못하고 속도에 집착하면 그 때 사고가 나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앞만 보고 달리려는 질주의 욕망을 갖고 있지만 사실은 ‘go’보다 ‘stop’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몽골 대초원은 경계 없이 무한한 공간처럼 펼쳐져 있다. 그러나 승마도, 여행도, 삶도 멈춰야 할 때 멈출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보통 관광객들은 이렇게까지 오래 안 타요. 사진을 찍기 위해 말을 타긴 하지만 보통 30분 안에 끝내죠. 가끔 영국이나 러시아에서 온 여행자들이 유목민과 함께 숙박도 하면서 며칠씩 말을 타는데 그들도 달리려는 목적보다는 그냥 말을 타고 초원을 산책하는 것으로 재미를 느껴요. 제가 10년 이상 가이드를 하고 있는데 이렇게 오래 달린 여행자는 처음이에요. 저는 내일부터 몸살 날 것 같아요.”
솔직히 내 체력도 바닥이 났다. 그러나 멀리 목장이 보이자 마지막 질주를 하고 싶어서 또 “now”를 외쳤다. 그때 이미 가이드는 달리기를 포기하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고, 큰아들만 내 속도에 맞춰 끝까지 함께 달려주었다. 말을 잘 타는 가이드도 오늘의 마지막 질주를 포기했는데 나랑 같이 두 시간을 달려준 말이 얼마나 고맙고 대견했는지 모른다. 그녀는 아마도 내가 오랜 꿈을 안고 몽골에 온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처음에 올라타자마자 움직이는 바람에 내가 겁을 먹긴 했지만 그녀는 진작 내 마음속에 감춰진 질주 본능을 알아챈 것이다. 큰아들조차 말이 평소엔 안 하던 행동이라며 이상하다고 말한 것처럼, 그녀는 내가 “now”를 외치기도 전에 먼저 뜀박질할 준비를 하며 거친 숨을 내뿜고 있었다. 잘 훈련된 경주마라 숨소리는 거칠어도 얼마나 부드럽게 잘 달리던지.
동물과 하나 되어 이렇게 행복하기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아마도 내 전생의 어느 페이지를 펼치면 말 달
리는 유목민이지 않았을까?’ 몽골의 푸른 초원과 갈색 말 그리고 나. 우리는 대자연 속에서 삼위일체가 되어 함께 호흡하며 신나게 달렸다. 초원을 달리며 말과 하나 되는 기분을 느껴보니, 전생에 내가 북방 기마민족이었다는 생각이 확신처럼 다가왔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가이드는 아마 내일부터 심한 몸살이 올 거라면서 약국에서 진통제를 구입하라고 권했다. 그러나 내 몸은 알고 있다. 나는 절대 아프지 않을 것이다. 고비사막에서 낙타를 탔을 때는 그 낙타와 하나가 되지 못해서 30여 분 타고도 3일간 허리부터 다리까지 온몸이 아파 기어 다녔다. 그러나 오늘은 25년 가까이 품어온 꿈이 현실이 된 날이고, 마음이 간절했던 만큼 말과 하나 되는 시간도 빨라서 오히려 말 타기를 통해 내 몸의 탁기가 다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동물에 대한 나의 오랜 두려움도, 벽에 걸지 못한 먼지 쌓인 액자에 대한 기억도 모두 지워진다. 내가 가진 꿈들을 이룰 수 있으리라는 희망이 그 자리를 채운다. 모든 것이 정리되고 빠져나가는 시간, 그것이 이날 내가 몽골에서 초원을 달리며 얻은 소중한 경험이었다.
숙소에 도착하니 초원에서 사우나를 하고 온 듯 개운하고 몸이 가볍다. 초원을 달린 건 말이지만 내 심장은 아
직 달리고 있다. 인간관계도 오늘 말과의 교감에서 안 느낀 것처럼 상대방의 좋은 파동, 나쁜 파동에 따라 지혜롭게 잘 대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람도 동물도 함께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먼저 맞추는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