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에너지를 만나다

PART 2. (p.56) 기? 도? 그게 뭡니까?

by 마고캐런


처음 서울에 와서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을 때였다. 인상이 좋은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대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있는 내 집으로 들어왔다. 일요일이라 친구들은 볼일을 보러 나가고 혼자 집안 대청소를 하면서 바쁘게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기를 믿습니까? 도를 아십니까?”

“기? 도? 그게 뭡니까?”


호기심이 많은 나는 처음 듣는 말에 되레 질문을 쏟아 부었다. 딱 걸려버린 하루다. 순진한 내 질문에 그들은 내심 얼마나 쾌재를 불렀을까. 두 사람은 자세히 설명해주겠다며 어디론가 같이 가자고 했고, 뭣도 몰랐던 나는 호기심 반으로 그들을 따라나섰다. 그때 그들의 세계를 살짝 접했다. 처음 간 곳에서 바로 기를 느끼거나 도를 믿은 건 아니다. 그런 단체도 있다는 것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그 후로도 나는 자주 그런 사람들에게 걸린다. 길을 가다 만나기도 하고 터미널 앞에서 설명을 들어야 할 때도 있다. 같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도’나 ‘기’ 같은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2011년 8월. 그해의 유럽 배낭여행은 큰 맘 먹고 5주 장기로 떠났다. 유럽은 국가가 많아서 한 번 가서는 다 볼 수가 없다. 매년 가고 있지만 10년을 다녀도 아직 안 가본 도시가 있다. 이 여행엔 불가리아와 루마니아를 추가했다.


소피아Sofia에서 출발한 야간열차 2인실 침대칸에서 불가리아 여대생을 만났다. 그녀는 항구도시 바르나Varna가 고향인데 주말이라 집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이렇다 할 계획도 없이 기차에 올라탄 나는 그녀가 잠들기 전에 필요한 현지 정보를 파악하고 싶었고, 전공이 관광학이라는 그녀는 생각지도 못한 유용한 정보를 많이 들려주었다. 무척 고맙다는 인사말로는 부족해서 시내에서 만날 수 있으면 맥주한잔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아침에 바르나역에 도착하면 남자친구를 만나 데이트를 할 건데 같이 다니겠냐고 물었다. ‘이런 행운의 여신이!’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수다는 덜컹거리는 기차 안에서 자정까지 계속되었다.


이른 아침,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밤새 달려온 기차에서 승객들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나는 일단 숙소에 짐을 맡기고 그녀와 만나기로 한 터미널로 향했다. 잠시 후 덜컹거리는 중고차 한 대가 내 앞에 멈췄다. 중고차라기보다 정확한 이해를 돕기 위해 고물차라고 하는 게 맞겠다. 기차보다 덜컹거림이 심한 똥차를 타고 우리는 좁은 시골길을 달렸다. 순간 내가 보헤미안 집시 커플한테 납치당하는 건 아닌지 뒤늦게 걱정이 되었다. 생각해보면 기차에서부터 너무 술술 풀린 게 의심스러웠다.


“아니, 이 벌판에 뭐가 있다는 거죠? 아주 신비스런 곳이라고 해서 기대를 하긴 했는데….” “들어가서 보기 전까진 이야기할 수 없어요.” 40여 분을 달려 도착한 곳은 현지어 안내판이 달랑 하나 붙어 있는 휑한 관광지였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아니, 저기 정문이 보이는데 왜 다른 곳으로 가요?” “저곳은 정문이라 들어가려면 표를 사야 해요. 이쪽으로 가면 담을 넘어 표 없이 들어갈 수 있거든요. 우리가 데이트할 때마다 오는 곳이라 지형은 잘 알고 있으니 걱정 마세요.”


도대체 저 안에 뭐가 있어서 돈까지 받고 표를 파는가 싶었다. 숲길에 차를 세우고 낮은 담을 타고 들어간 그곳의 첫 느낌은 그저 큰 돌 여러 개가 어지럽게 뒹구는 보통의 건설현장 같았다. 돌기둥의 규모가 더 웅장하고 조각이 화려했다면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정도를 상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건 아니다. 돌들은 길이가 제각각인데 전반적으로 기둥처럼 생기고 짧은 돌에도 홈이 파인 걸로 봐서 아마도 과거에 어떤 용도로 쓰였던 것 같다.


그들을 따라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니 돌기둥이 점점 많아졌다. ‘아니 이런 돌기둥 몇 개가 무슨 신비라고?’ 제법 넓은 면적이긴 하나 나는 여전히 뒹구는 돌기둥들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했다. ‘이 돌이 뭐라고 입장료를 받지? 그럼 영어로 안내판이라도 하나 세워두든지. 도대체 정체가 뭘까?’ 일단은 도리 없이 청년의 설명에 의존해야 했다.


“이곳은 지구에서도 몇 안 되는 좋은 기가 나오는 곳이에요.”

“뭐? 기(energy)라고요?”


‘기를 믿습니까?’ 사건 이후로 다시 기를 만난 곳이 불가리아의 작은 시골이다. ‘지금 논밭에서 장난하니? 이런

돌기둥에서 무슨 기가 나온다고.’ 그러나 표정이 사뭇 진지해진 남자는 아마도 청동기시대인지 철기시대인지 아주 오래전부터 거주 흔적이 발견된 중요한 유적지라며 목청을 높였다. 일반에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불가리아 사람들은 다 알고 기운을 받으러 오는 곳이란다. 이곳에서 분명히 지구의 엄청난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불가리아여행을 온 김에 지구의 좋은 기를 많이 받아가라며 선심을 베푼다.


‘지구의 에너지?’ 나 또한 명상을 하고 있어서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신하게 되는 이 감정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갠지스강변에서 만난 구루나 아쉬람의 요기들이 말하는 신비한 이야기는 믿으면서 이 나라 국민들이 신성하게 여긴다는 영적인 지구 에너지(기)에 대해서는 왜 신뢰하지 못한 걸까. 인도에 살면서 좋은 기운을 받겠다고 갠지스강 상류인 히말라야 리시케시Rishikesh까지 1박2일 야간버스를 타고도 찾아가지 않았던가. 기차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 커플의 데이트 차까지 얻어 타고 편하게 기 받으러 왔으면 그저 감사나 할 일이지 지금 무슨 의심을 하는 건가.


내가 표정관리를 하지 못하고 차가운 돌만 성의 없이 쓰다듬고 있자 커플은 이 많은 돌기둥 중에서도 기운이 가장 폭발적으로 발산되는 돌은 따로 있다며 나를 다른 방향으로 데리고 갔다.


“바로 이 돌이야. 보기엔 요만큼 올라와 있지만 땅속 깊숙이 박혀 있는 큰 기둥의 일부야. 여기 보이는 돌들의 지

하부엔 엄청난 길이의 오래된 돌기둥들이 뿌리를 내리듯 빽빽이 박혀 있는데 오랜 시간 지구의 지각변동으로 일부만 올라와서 우리 눈에 보이는 것뿐이야. 실제로 이곳의 땅을 파보면 아래에 많은 돌기둥이 숲을 이루고 있다는 거지. 그중에서도 이 돌이 가장 에너지가 강력한 돌이야.”


그가 제대로 된 영어를 하고 있고 내가 그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은 거라면, 는 지금 지구의 핵 위에 올라서 있다.

화산이 폭발하면서 분출된 용암이 굳으면 현무암이 된다. 이 돌들은 그냥 생긴 게 아니라 지구폭발과 같은 강력

한 에너지 발산을 통해 만들어진 파편이다. 지구에는 여러번의 대폭발이 있었고 위로 치솟은 용암들이 녹아 흘러내리면서 엄청난 규모의 돌기둥이 만들어졌다. 이후 지각변동을 통해 대부분은 지하에 묻혔지만 지금 보고 있는 이 돌기둥들은 노출되었다는 얘기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 나는 인터넷을 통해 ‘바르나의 돌’ ‘불가리아 기 에너지’라는 단어들을 검색해보았지만 그 이상 구체적인 정보를 찾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일은 여행자의 머릿속에서 짧은 해프닝으로 오랫동안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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