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여섯 살에 여권에 처음 도장을 찍은 나는 여행에 대한 열정이 상당했다. 해외출장을 많이 가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고, 돈이 쌓이는 대로 세계를 일주하겠다는 계획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잘 나가는 외국계 회사를 퇴사하고 내 발로 여행사에 입사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일은 재미있었지만 조직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한 탓도 있고 아쉽게도 노동 강도에 비해 급여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1년 만에 퇴사했다. 이후에도 여행관련 프리랜서 생활을 하며 능력껏 해외출장을 다닐 수 있어서 청춘의 한 시절을 나름 행복하게 보냈다.
적금통장 하나 없어도 신용카드라는 보이지 않는 금고를 담보로 이곳저곳 겁도 없이 잘도 돌아다녔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기대치가 높아졌다. 그러나 방문국가가 40곳을 넘어서면서부터 어지간한 풍경에는 감흥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어떤 여행을 해야 나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 40개국을 돌고도 놓지 못하는 이 질긴 여행 습관을 통해 도대체 내가 삶에서 찾고자 하는 건 뭘까.’하는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세계 박람회의 60퍼센트 이상을 개최한다는 독일은 시간관념도 정확하고 어디서나 영어가 통한다. 특히 여성 여행자도 어디나 안전하게 다닐 수 있어서 이상적인 여행국가라 할 수 있다. 독일 내 기차역 어디서라도 유럽의 다른 도시 구간 열차를 한꺼번에 예매할 수 있어서 나의 유럽여행은 언제나 독일에서 시작하거나 독일에서 끝이 났다. 유럽 배낭여행자의 필수품이라고 할 수 있는 유레일패스를 이용하면 국경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것도 장점이었다.
그때는 아침에 일어나 첫 기차를 타고 이웃나라 체코 프라하로 가서 하루 종일 구경하고 저녁 먹고 귀가하거나,
스위스에 가서 점심을 먹고 루체른호수에서 보트를 타다가 저녁기차에서 맥주 한잔을 하며 독일로 넘어오기도 했다. 야간열차를 타는 날은 파리에서 저녁 먹고 6인실 쿠셋◉ -couchette. 프랑스말로 ‘간이베드’라는 뜻.
야간열차에는 누워서 갈 수 있는 칸이 있는데 양쪽에 걸린 간이침대 개수에 따라 4인실, 6인실이 있고 3인실부터는 침대칸(sleeper bed)이라고 한다- 간이베드에 누워 한 숨 자고 일어나면 로마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국경 없이 다니는 유럽 기차여행자들로 배낭여행이 절정을 이루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내 모든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기차로 시작해서 기차로 끝났다. 정말 가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다니는 기차여행의 매력에 흠뻑 빠져서 보낸 20년의 여행시간이 지금도 철로처럼 하나하나 뇌리에 새겨져 있다.
오전에 뮌헨에서 만나 같이 브런치 할까요?
오후에는 비엔나에서 커피 한잔 할래요?
저녁은 부다페스트에서 야경 보면서 와인 한잔 할까요?
이런 대화를 멋으로 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내 여행에는 낭만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역으로 가서 자정이 돼서야 숙소로 돌아오는 무한질주의 여행을 계속했다. 그래서 발생한 해프닝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그날도 독일에서 마지막 기차를 타고 이탈리아로 넘어가려고 플랫폼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돼서 이 기차는 출발하니까 다음기차를 타세요.” 늦은 밤 내 눈 앞에서 기차 문이 닫혔던 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너무 황당해서 열차 차장의 말을 무시하고 그냥 올라타려는 시도조차 못했다. 순간 영어를 잘못 알아 들은 줄 알고 얼어버렸던 것일까.
독일에서 갑자기 길이 막혔다. 국경은 열려 있는데 이동이 막힌 것이다. 방금 내 앞에서 떠나버린 기차는 목적지
까지 나를 데려다줄 마지막 밤기차였다. 사람들이 모두 타면 나중에 타려고 뒤에서 기다렸을 뿐이다. 유니폼을 단정하게 입은 여자 차장은 갑자기 손목시계를 보더니 시간이 되었다며 내 앞에서 버튼을 누르고 문을 닫아버렸다.
‘아니, 이 무슨 일?’ 플랫폼에서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기다리던 사람이 아직 다 타지도 않았는데 출발시간이 되
었다며 기차 문을 닫아버리다니. 아직도 나는 독일 기차역에 가면 긴장이 된다. 그날처럼 플랫폼에 혼자 남겨질까봐.가끔은 너무 정확한 독일의 기차시간이 불안하다. 어떤 상황이 되면 또 정해진 시간 밖으로 튕겨질지 모르는 여행자이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다음기차를 타기 위해 역에서 밤을 지새면서 새벽까지 기다렸다. 기차역에 있는 24시간 맥도날드에서 숙박비처럼 햄버거 세트 하나를 시켜놓고 밤을 보낸 그날의 추운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은 그냥 맥주 한잔 마시며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내게는 꽤 심한 충격으로 오래오래 남있다. 그제껏 소비하듯 다닌 여행을 접고 내 여행의 결핍된 지점을 고민해보게 한 사건이었다. 바쁘게 일정을 짜서 풍경만 훑고 지나가기보다 그 나라, 도시, 인종, 문화를 좀 더 사려 깊은 시선으로 이해하는 여행을 할 필요를 느꼈다.
나는 여러 나라의 여행자들 중에서도 특히 독일 여행자들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다. 여행을 하다보면 길에서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 독일 여행자들이다. 캐나다 북단 옐로나이프Yellowknife에서 오로라를 보기 위해 호텔에 머물고 있을 때의 일이다. 독일에서 온 젊은 친구들은 영하 40도에도 자동차에서 침낭만 덮은 채 오로라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래스카 스워드Seward 게스트하우스에서 내가 삼겹살을 굽고 있을 때 만난 여행자도 독일 사람이었다. 직장을 다니다 퇴사하고 다음 회사에 출근하기 전 한 달의 공백을 잘 보내기 위해 여행을 왔다는 그녀는 캐나다에서 알래스카까지 히치하이킹만으로 횡단을 했다. 내가 숙소에 도착한 그날이 그녀가 캐나다 열로나이프에서 알래스카 스워드까지 히치하이킹으로 15일 만에 도착한 날이었다. 거의 미친 수준의 험한 여행에 도전한 사람들 대부분이 바로 게르만족의 후손들이었다.
정확하고 안전한 여행을 원한다면 기차여행을 추천하지만, 독일여행의 또 다른 묘미는 고속도로다(물론 내가 운전하지는 않는다). 하루는 모젤강변을 따라 달리는 기차를 타고 트리어Trier역에 도착해 와인농장 투어를 신청했다. 역에서 나를 픽업한 농장주 할아버지는 드넓은 포도밭이랑 와인 제조공장을 친절한 설명과 함께 보여주었다. 투어가 끝나자 할아버지는 여기까지 왔으니 드라이브를 좀 하자고 했다. 나 역시 아우토반에 대한 기대감이 있어서 그가 운전하는 차에 올라탔다. 농장과 연결된 도로는 국도여서 할아버지는 규정 속도대로 천천히 달렸다. 그런데 고속도로 진입 표지를 지나자마자 속도를 높이기 시작하더니 쌩 하는 소리와 함께 곧장 시속 160km로 올라섰다. 아니 1분 전에 시속 60km로 달리다가 갑자기 160까지 몰아붙이다니.
“저기 너무 빠른 거 아니에요. 이렇게 운전해도 괜찮으세요?”
“걱정 마슈. 여긴 독일의 아우토반이고 이렇게 차가 없을 때는 빨리 달려야 다른 차에 방해가 되지 않아요. 이
런 도로에서 천천히 달리면 오히려 훼방꾼이 되지. 독일은 차가 좋아서 이 정도 속도는 괜찮아요. 나는 모젤와인의 시원한 맛처럼 이런 스피드를 자주 즐기며 산다오.”
머리칼이 하얀 70세 와인농장 할아버지는 30대를 방불케 하는 속도로 아우토반을 신나게 질주했다. 운전공포증이 있는 나는 당시 30대였지만 할아버지 옆자리에 앉아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 ‘차라리 드라이브가 아닌 화이트와인이나 한잔 마시자고 할 걸.’ 지금도 독일의 모젤와인을 마실 때마다 화이트와인처럼 ‘쏘쿨so cool’하던 할아버지의 스피디한 질주가 생각난다.
내 감정적 온도가 여행의 온도는 아니다.
여행의 속도가 여행의 온도를 달구는 것도 아니다.
다시 유럽에 가더라도 내 여행의 시작이나 끝은 독일의 어느 도시가 될 것임을 안다.
이제 나는 이동수단에도 목적지에도 관심이 없다.
그저 내 가슴이 다시 뜨거워지거나 영혼이 치유되는 여행, 느린 여행이라도 진짜 나를 위한 여행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