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어를 먹지 못하는 이유

PART 1. (p.46) 태어났던 자리에서 통조림으로 끝나는 연어

by 마고캐런


여름이라도 북유럽의 여행 시즌은 짧다. 8월 중순, 독일을 경유해 노르웨이 오슬로에 도착한 나는 기차를 타고 항구도시 베르겐Bergen에 도착했다. 노르웨이 최고의 관광명소인 피요르드계곡을 크루즈를 타고 보기 위해서다. 예약도 없이 무작정 도착한 나는 크루즈 잔여석을 얻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를 서둘렀다. 출발 준비를 마쳐두고 오전 7시에 식당 문이 열리자마자 아침을 해결하러 들어갔다. 보통 사람들에게 여행이란 가끔 찾아오는 삶의 여유다. 느긋한 게으름이 허용되는 아침이야말로 여행이 주는 선물. 그래서 여행지에서는 나처럼 새벽같이 일어나는 사람도, 식당 문 열자마자 전투적으로 밥 먹으러 가는 사람도 없다.


생각해보니 나의 여행에는

타인의 여행에는 없는 것들이 있고

타인의 여행에 있는 것들은 종종 없다.


‘어머! 연어회가 있네.’

하룻밤 다인실 침대 한 개의 숙박비가 3만 원 하는 골목 호스텔인데 뷔페 조식에 연어회가 차려져 있었다. 이런

가성비에 가심비까지! 세계여행을 다니며 이런 호사는 또 처음이다. 북유럽이 잘사는 것과 여행자에게 상식 이상으로 너그러운 아침 식탁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여행자의 주머니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이곳의 물가만 봐도 그렇다. 북유럽 여행자들에게는 관광지나 식당에서 요금을 확인할 때마다 지갑을 걱정해야 하는 불안감이 늘 존재한다.


아침부터 연어의 등장에 여행자의 긴장된 마음이 풀어진다. 당시만 해도 나는 날생선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기왕 나왔으니 한두 점만 먹어볼까 하는 생각에 접시에 몇개 담았다. 그 순간 손끝에 전해오는 연어살의 탱탱함이라니. 나도 모르게 꿀꺽 침 넘어가는 소리가 탄력적으로 들렸다. 도톰한 주홍빛깔의 연어살과 세련되게 그어진 고소한 흰색 지방선의 조화가 풍미를 가중시켜 살점이 입에 닿기도 전에 그 윤기에 내가 먼저 녹아버릴 것 같았다.


자리로 돌아와서 연어를 입에 가져간 순간, 나는 연어의 도시 베르겐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푸른 바닷물이

눈부시게 출렁이는 베르겐 항구에는 새벽 고기잡이를 끝낸 어선들이 조용히 묶여 있다. 북유럽의 이 작은 어촌도시에서 낚아 올린 신선한 연어 맛은 그저 ‘맛있다’는 형용사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적당히 기름진 연어에 표현할 수 없이 깊은 맛이 배어 있었다. 베르겐의 연어는 도시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달리 거친 바다의 활력과 생생한 자연의 맛 그 자체를 느끼게 했다.


30여 분이 지나자 여행자들이 하나둘 식당으로 들어온다. 연어로 먼저 배를 채운 나는 남들보다 여유 있게 항구로 향했다. 가는 길에 얌전히 정박한 어선들이 화려한 도심의 배경과 잘 어울려 카메라에도 몇 컷 담았다. 관광안내소에 도착하자마자 크루즈 예약을 문의하니 다행히 오늘이 운행 마지막날이라며 오후에 한 대가 출발한다고 했다. 시간은 기가 막히게 잘 맞췄다.


이후 북유럽 몇몇 도시를 더 돌아보고 한국에 돌아온 뒤에도 기억에 가장 오래 남은 건 이날 아침에 먹은 연어 맛이었다. 막상 돌아오고 나니 ‘베르겐 그 호스텔에서 며칠 더 머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그 후로 몇 년이 지난 2013년 8월 말, 그 해 여름휴가는 알래스카에서 보내려고 계획을 세웠다. ‘알래스카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발데즈Valdez는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낀 작은 항구도시이다. 유럽의 웬만한 소도시들보다 훨씬 작지만 주위를 둘러싼 거대한 산맥의 규모로 보면 스위스보다 웅장하다.


이런 시골항구까지 여행자들이 왜 찾아올까?

나는 안내책자를 보면서 이곳에서 볼 게 뭐가 있는지 살폈다.

어라, 연어부화장 소개가 있다.


‘여기도 연어? 알래스카 연어는 어떤 맛일까?’


노르웨이와 알래스카의 위도를 정확히는 몰라도 위치상 북극과 가까워서 연어가 서식하기 좋은 조건인 것 같았

다. 나는 현지투어를 따라 연어부화장에 구경을 갔다.


“민물에서 태어난 연어는 바다로 나가 세계를 항해하다가 죽을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옵니다. 지금은 연어가 대이동하는 시기는 아니어서 지난달만큼 많이 볼 수는 없어요. 하지만 오늘도 연어는 고향인 알래스카로 돌아오고 있는 중입니다.”


5월부터 시작되는 연어 대이동은 알래스카 여행 성수기인 8월경에 막바지에 이른다. 그러나 지금은 별로 없을

것이라는 가이드의 안내와 달리 내려다뵈는 물속은 연어로 가득했다. ‘바가지로 한 번만 퍼 올려도 며칠 안줏감은 될 것 같은데 지금이 연어가 없는 시기라고?’ 베르겐의 탱탱한 연어 살코기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흥분을 했다.


알래스카에서는 관광객에게도 낚시를 허용한다. 비용을 지불하고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하지만 잠깐 머무는 여행에서도 바로 도시어부가 될 수 있다. 파도도 없는 호수 같은 바닷물 아래에 엄청나게 많은 연어가 떼 지어 다니고 있으니 괜히 폼 잡고 낚시할 필요도 없다. 누구라도 시작하면 스트레스 없이 본전 이상의 재미를 맛볼 수 있다. 연어부화장의 주차장 하늘에 갈매기들이 무척 많이 날고 있었다. 사람도 새도 연어 한번 먹어보겠다고 모여드니, 지금 바다는 완전히 연어 세상이다. 방파제에는 이미 엄청난 양의 연어가 허옇게 아가미를 뒤집은 채 죽어 있었다.


“저기 건물이 민물연어부화장인데 정해진 반경 몇 미터 안에서는 낚시를 할 수 없어요. 이 근처에서 잡으면 수개월 바다를 헤엄쳐 온 연어가 집 앞에서 죽는 거니까 좀 그렇잖아요. 그러나 절대 통제할 수 없는 건 저기 날고 있는 갈매기들입니다. 갈매기는 연어의 눈알만 빼먹는데 여기 죽어 있는 연어들을 자세히 보면 눈이 다 없어요. 고향에 도착해서 집에 들어가기 직전에 갈매기 먹이가 되어 허무하게 죽는 거죠.”


어렵게 고향을 찾아온 연어가 자신이 태어난 집 문 앞에서 공격당해 죽는 이 상황을 어찌 볼 것인가. 좀 멀찍이 떨어져 있다고는 하나 이곳에서 연어를 노리는 낚시꾼들까지 얄미워 보인다.


창문을 통해 부화장 건물 안을 들여다보니 사람들이 컨베이어벨트 앞에서 분주히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살아서 고향에 돌아온 연어들은 자동으로 돌아가는 벨트 위에 올려져 이동한다. 사람들의 빠른 손놀림에 몸은 바로 토막이 나고, 암컷 몸속의 알은 부화를 위해 분리되고, 고기는 캔으로 들어가 통조림이 된다.


‘이렇게 부화장에서 사라진 연어들이 통조림이 되어 세계로 팔려가는구나.’ 연어 통조림을 보면서 처음으로 마음이 아팠다. 죽은 고기가 되어 공장에서 담기는 것도 아니고 조금 전까지 험한 바다를 헤엄쳐 고요한 민물의 집까지 살아서 왔는데, 처음 자신이 태어났던(알에서 부화한) 자리에서 통조림으로 끝나는 연어의 일생이라니. 이젠 연어를 못 먹을 것 같았다.


연어의 일생


바다그물에 걸려 죽거나

민물낚시에 낚여 죽거나

야생 곰한테 잡아먹히거나

갈매기한테 눈만 빼 먹히거나


노르웨이 베르겐에서의 연어와 알래스카 발데즈의 연어는 내게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알래스카 여행의 목적은 대개 로키처럼 웅장한 산맥을 보면서 하이킹을 하거나 크루즈를 타고 수만 년 된 빙하가 녹으면서 부서지는 현장을 보러 가는 것이다. 나 역시 빙하크루즈를 이틀 연속 타면서 1차원적인 버킷리스트는 달성했다. 알래스카 연어도 실컷 먹었다. 그러나 부화장에서 엄청난 양의 연어알과 통조림을 만들고 뼈만 남은 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연어의 최후를 본 뒤로는 지금까지 연어를 먹지 못하고 있다.


알래스카의 잔잔한 바다에서 살려고 헤엄쳐 오는 연어들을 떠올려보라. 잔잔한 수면은 위선이다. 연어들은 물속에서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데 사람들은 우아하게 수면 위에서 아래로 낚싯대를 드리운다. 알래스카에서도 가장 아름답다는 항구도시, 연어의 고향인 발데즈에서 연어는 인간의 손에 잡혀 알과 통조림만 남긴 채 죽는다. 그 알은 다시 민물에서 부화한 후 먼 바다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다 성장해서 고향에 돌아오면, 자신들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한 번의 수정 끝에 생을 마감할 것이다.


여행자의 일생이 오버랩된다. 세계여행 하겠다고 집을 수시로 떠나고 그것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남긴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다. 연어는 죽을 것을 알면서도 거친 바다를 헤엄쳐 집으로 돌아오는데 우리는 왜 밖으로만 향하며 방황하는가. 세상엔 자신의 존재가치도 모른 채 여행하는 사람이 많다.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나는 긴 여행을 하고 다녔던가. 다시 생각해볼 때가 되었다.


누구나 주먹을 쥐고 태어나서 죽을 때 주먹을 편다. 살아있을 때 주먹 쥐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그 무엇도 피하지 말고. 여행이라는 허울 좋은 타이틀로 내가 세상에 버린 시간들이 울고 있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배낭 메고 헤맨 시간이 나를 울린다. 의미 없이 길에서 보낸 많은 시간을 회상하면 차라리 망각하는 여행자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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