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이곳까지 날아든 걸까…. 다시 날지 않아도 되는데 이름 없는 새처럼 또 홀로 찾아든 섬이다. 더 이상 여행의 거리와 자연풍경은 큰 의미가 되지 못하고 있다. 멀리 떠나오면 올수록 그리움에 떠밀려 난 벌써 돌아갈 채비를 한다.
겨울의 아이슬란드는 오전 11시가 되도록 어둑하고 오후 4시만 되면 해가 지면서 다시 어두워진다. 멍하니 하루를 보내기엔 너무 짧은 여행자의 시간. 오늘 밤엔 별이라도 좀 보였으면 좋으련만 잔뜩 찌푸린 날씨를 보니 천공의 성운을 보기엔 글렀다 싶다. 예상치 못하게 여행의 기대가 무너질 때면 허탈함에 두 다리가 묵직해짐을 느낀다. 이럴 때는 잠시 쉬어가야 한다. 차가운 맥주 한잔에 묵은 기분을 시원하게 털어버려도 좋다.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과 도시의 풍경이 이국적이긴 하지만 여행자의 눈에는 그렇다고 딱히 특별한 무언가로 느껴지지도 않는다.
우선 검푸른 빛깔의 고요한 수평선과 대비되는 아득한 산의 설경을 담아 한 컷 찍고 휴대폰을 접는다. 그리고 걷
는다. 바다가 담긴 엽서 같은 풍경을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나의 여행도 이제 지겹다. 바다는 태초에 존재했던 그대로 변함없이 넓고 자유롭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여행자의 마음 이 어느새 닫히고 시선도 막혀버렸다. 나는 아이슬란드의 눈밭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환호성을 질러보았다. 좋아서 라기보다 여행자로서의 의무감이랄까, 이 순간을 추억해야 만 한다는 여행에 대한 책임감이랄까.
수면 위로 얼어붙은 1월의 얼음장보다 더 차가운 내 마음이 비집고 올라온다. 이 바다에서 제주도의 겨울바람이 느껴진다고 말하면 내가 이상한 걸까? 피부를 할퀴고 지나가는 매서운 바람, 그 바람에 실려 온 바닷내음, 깊고 어둡게 가라앉은 검푸른 바다의 빛깔까지 모두 제주도를 닮았다.
‘이제 멀리 가려 하지 말고 제주도로 가자.’
2010년 겨울, 온 국민이 설날 귀경길에 오를 때 나는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혼자인 내가 부릴 수 있는
사치가 있다면 이런 날 훌쩍 떠날 수 있는 자유로움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밤하늘이 예쁘면 얼마나 예쁘다고,
사막에서도 별과 은하수는 예술인데.
굳이 추운데 무슨 고생을 하겠다고 거기까지 가니?”
정말 그럴까? 여행을 하다보면 알게 된다. 가보지 않고 섣불리 얘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사막의 하늘과 영하 39도 북극의 하늘은 깊이와 색감이 완전히 달랐다. 추위에 약한 나는 삼중내의를 여러 벌이나 챙겨 떠났지만 상상도 못한 추위가 옷의 두께를 뚫고 피부를 지나 뼛속 깊숙이까지 찔러댔다. 현지에서 추가로 제공한 방한복이 아니었다면 동상에 걸렸을 것이다.
아이슬란드에 오기 전까지 오로라 여행을 다섯 번은 했다. 캐나다와 미국에서 총 16박을 계절을 달리하며 여행했지만 오로라를 제대로 본 건 캐나다에서의 하룻밤뿐이었다.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추위를 이기며 올려다본 캐나다 옐로나이프의 하늘이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목록을 바꿔놓았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끝이 없고 여행자의 욕망도 마를 틈이 없다. 잠깐이지만 제대로 본 그 한 번의 오로라(레벨 6◉)에 대한 기억을 갖고 다시 도전한 아이슬란드 겨울여행. 그러나 막상 빙하의 섬에 와보니 기상악화로 오로라는커녕 하늘의 별빛 한 조각도 보기 힘들었다.
비록 반짝이는 별도, 환상적인 오로라도 못 보고 이렇게 폭풍 속에서 검은 바다를 향해 함성만 지르다 가게 되더
라도 나는 이 섬을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 이번이 나의 마지막 아이슬란드 여행이 될지라도 제주도를 생각하며 위로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이제 밤하늘의 아름다운 변화에는 관심이 없어졌으니까.
일탈이 끝난 여행.
그 끝자락에서 다시 시작하는 여행.
모르고 길에서 헤맨 시간들을 이제는 돌리고 싶다.
◉ 밤하늘에 펼쳐지는 무지갯빛의 화려한 정도에 따라 오로라는 최저 레벨 1에서 최대 레벨 10까지 점수가 매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