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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Dec 16. 2023

할인은 안 됩니다, 새 책도 없고요

오프라인 서점의 슬픈 현실

 "할인되나요?"

 "새 책 있어요?"

 서점에서 일하며 가장 많이 받는 질문 딱 두 가지를 꼽으라면 단연코 이것이다.

 나는 그들의 의도를 십분 이해하면서도, 원하는 답을 내어줄 수 없다.

 이것이 바로 오프라인 서점의 슬픈 현실인 것이다.


 "오프라인 서점에서는 구경만 하고 구매는 온라인으로 해요."

 서적 구매에 있어 소비자들에게 일종의 공식처럼 적용되는 말이다. 애초에 나는 서점을 차리고 싶어 서점원이 된 케이스로,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다. 일반 도서의 평균 금액은 대략 15,000원 정도, 온라인 서점은 10% 할인에 5% 적립이 적용된다. 내가 일했던 서점은 적립률이 10%였기 때문에 적립률만 놓고 보자면 온라인 서점보다도 높은 편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1,500원을 위해 발걸음을 돌려 나간다. 그렇게 이 사람 저 사람이 들춰만 보고 나가는 탓에 도서 상태는 점점 안 좋아지고, 그래서 꽂혀 있는 모든 책이 판매용 새 책임에도 불구하고 고객들은 있지도 않은 '새 책'을 찾아 나서는 것이다. 손님에게도, 오프라인 서점에게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는 선택이므로, 이 거리는 결코 좁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은 소비자들이 유독 책 앞에서만 엄격한 잣대를 대입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종합 서점들이 그렇듯 내가 일했던 서점도 문구와 잡화류를 함께 판매했는데, 단순히 온/오프라인 가격을 비교해 보자면 문구 및 잡화류의 가격 차이가 훨씬 더 큰 경우가 많다. 그런데도 문구 구매 고객들은 정말이지 단 한 명도, 할인 여부나 새 상품 유무를 물어오지 않는다. 나는 어쩌면 이것이 도서 정가제의 폐해일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정가제라는 것은 말 그대로 정해진 가격에 대한 타협 가능성 자체를 배제시킨다는 소리다.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려면 온라인 서점도 10% 할인율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정가 규제를 풀어 가격대의 폭을 넓게 형성시킨 다음 소비자로 하여금 최저가를 확실히 알 수 없게 만드는 쪽이 나을 수도 있다. 도서의 경우는 어차피 가장 싸게 사도 10% 할인이라는 기준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검색 없이도 누구나 최저가를 정확하게 알 수 있고, 그렇기에 비교 선택이 다른 상품군보다 훨씬 쉽고 빨라지는 것이다.


 물론 도서 정가제에 대한 논제는 오랜 세월 갑론을박이 이어지면서도 뾰족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는 문제로, 그 안에는 저작권 보호와 작은 서점들의 생존과 같은 예민한 문제들이 포함돼 있어 단순하게 말할 수는 없는 주제다. 오프라인 서점의 생태를 직접 경험해 보았으며 또 온/오프를 막론하고 열심히 책을 사 모으는 독자 중 하나인 나의 입장에서는 현명하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려는 소비자의 마음 또한 너무나 공감할 만하지만, 오프라인 서점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도저히 10% 할인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십분 이해할 수 있어 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도 서점에서 일하며 배운 확실한 사실 하나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랑한다는 것이다. 매일 그 공간에 있던 나는 딱히 실감해 본 적이 없는데도, 손님들은 함박웃음을 머금고 "책 냄새 너무 좋다아"하며 계단을 올라온다. 이 책 저 책을 천천히 둘러보며 동행한 이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표정엔 언제나 미소가 만연해 있고, "나는 서점만 오면 기분이 좋아져."같은 간지러운 고백도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독서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는 하나, 책을 사랑하는 인구는 여전히 차고 넘친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서점이 싸우고, 대형 서점과 독립 서점이 싸우고, 전자책과 종이책이 싸우는 동안에도, 독자들은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가만가만 조용하게 책을 사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사랑하는 이들 모두를 고객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정말 없는 걸까? 크지도 않은 파이를 여러 조각으로 나눠 먹으며, 서로 죽겠다고 아우성치며 아귀다툼을 하는 것만이 최선인 걸까?


 어쩌면 정말 "서점이 안 되는 이유는 서적을 판매하기 때문이다."라는 마스다 무네아키의 말속에 답이 있는 지도 모르겠다. 책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내가 파는 책을 사라고 강요하지 않으면서, 진심으로 그들을 야속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나도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답이 없는 문제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일은 내가 가장 잘 하는 일이니까.

"여기 다 중고인거죠?" 서점에서 들은 말 중 제일 황당했던 말. (참고로 중고 책은 전혀 취급하지 않는 서점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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