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우 Dec 13. 2023

동료를 사랑해도 될까요?

우연히 찾아온 행운

 서점원이 되어 가장 크게 얻은 수확은 역시 사람이다. 회사 다닐 때의 나를 회상해 보면 지금의 나는 그때와는 180도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 같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던 걸까? 기대를 버렸기 때문인 걸까? 정말 그뿐인 걸까?


 회사원 시절, 나의 회사 생활 모토는 단 하나였다.

 "일만 '잘' 하자."

 귀찮음을 무릅쓰고 매일 도시락을 싸 가지고 다녔던 이유는 밥 정도는 혼자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적인 대화는 되도록 하지 않으려 노력하고, 회식은 웬만하면 피했다. 일을 '잘' 해야 했던 이유는, 업무적으로 빈틈을 보이면 그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면전에 대고 "공적으로만 지내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는 나를 보며,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나 같아도 나 같은 애 정말 재수 없을 것 같긴 해.'

 그래도 나에게는 그게 최선이었다. 나를 지키면서 회사 생활을 지속하기 위한 최선.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재수 없는 인간이 되려던 것은 아니었다. 퇴근하면 팀원들과 종종 술자리를 가졌고, 사적인 스몰 토크를 가볍게 나누며, 서로에 대해 보다 많은 것들을 알아가는 것을 즐기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사적인 자리에서 했던 이야기가 업무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점차로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 후로 수없이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회사는 친구 사귀는 곳이 아니다. 회사는 일하는 곳이다. 눈 닫고, 귀 닫고, 입 닫고, 일만 하자.'

 

 퇴사하던 날, 내가 그토록 악착같이 거리를 두려던 동료들과 함께 울었다. 대체 왜 그렇게까지 해야만 했을까, 헛헛한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앞으로는 어디에 가서 어떤 동료를 만나더라도,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고, 에너지를 쓰며 미워하지도 말아야지. 매일 얼굴 보는 동료를 미워하는 일은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괴로운 경험이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거리를 둬야지. 그들은 친구가 아니라 동료라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말아야지. 처음부터 일만 해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서점 출근 첫날, 식사는 도시락을 배달시켜 다 같이 먹는다는 안내를 받았다. 원하면 점심값을 받아 나가서 먹어도 되지만, 사람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웬만하면 도시락 먹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나는 약간의 PTSD 증상을 느끼며 첫날 식사를 걸렀다. 퇴근 후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다 일단은 도시락을 먹어 보겠다고 했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다 같이 먹는 식사 시간을 기다리게 될 줄은.


 같은 층에서 일했던 내 짝꿍 M은 내가 서점에서 가장 사랑하는 동료였다. 우리는 함께 일하며 쉴 새 없이 웃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1년이 넘도록 M과의 수다는 질리지도 않고 즐거웠다. 입고 직원인 Z는 독서 스타일이 가장 잘 맞는 동료라 눈만 마주치면 책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고, 엉뚱한 4차원 스타일의 N은 점심시간에 엉뚱한 게임을 하자고 졸라대며 모두에게 웃음을 선사하곤 했다. 얼굴 볼 기회가 별로 없는 다른 층 직원들까지 모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는 점심시간은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었다. 나는 그들 모두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게 아쉬웠고, 더 오래 함께 있고 싶었다. 동료가 이렇게 좋아도 되는 건가? 동료가 이렇게 좋을 수도 있는 건가? 이 기막힌 현실이 믿기지 않는 만큼, 꼭 그만큼 나는 더 행복해졌다.


 새로운 직원에게 같이 도시락을 먹자고 제일 적극적으로 어필한 사람도, 우리도 북클럽을 만들자며 독서 모임을 주최한 사람도, 전부 나였다. 퇴사하면 끝인 거라고 전 회사 근처로는 가지도 않던 내가 "나 서점 그만둬도 독서모임은 계속 껴 주는 거지?"같은 소리를 서슴없이 내뱉고, 퇴사 이후로 잡힌 회식 자리에 나도 가겠다고 먼저 손을 드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이 소박하고 안온한 공간 속에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동료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월급쟁이는 월급이 전부라는 소리를 하지 않게 되었고, 직장 동료들끼리 주말여행을 간다는 말에 "친구 없대?" 하며 차갑게 쏘아붙이는 일도 그만두었다. 나는 이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좀 더 나은 인간이 되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을 만난 것만으로도 서점에서 얻을 수 있는 전부를 얻었다고 말할 수밖에.                                               


(다음화는 손님 이야기!)


이전 03화 기대가 없어야 실망도 없는 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