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노동의 무한 루프'라 쓰고 '서점의 일'이라 읽는다.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제법 규모가 있는 서점에서 마침 사람을 뽑고 있었다. 사실은 내가 하려는 형태와 유사한 독립 서점에서 일을 해 보고 싶었지만, 그런 곳은 웬만해서는 사람을 뽑지 않았다. 아쉬운 대로 집 근처 서점에 이력서를 넣기로 했다.
"그런데 그런 말씀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일찍 그만 두시더라고요."
면접 자리에서 지원 이유를 말했을 때 사장이 나에게 했던 말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언젠가 자기 서점을 하고 싶은 사람, 글을 쓴다는 사람, 아무튼 어떤 이상과 목표를 가지고 들어온 사람들은 오래가지 못한다는 말이었다. 그때는 의아했지만 지금이라면, 아마 나도 같은 말을 하게 될 것 같다.
내가 서점에서 일을 한다고 하면 (책을 좋아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인다.
"와, 낭만적이다! 부러워!"
서점 동료들과 이런 얘기를 공유하다 보면 어느새 모두의 입꼬리가 한쪽만 올라가 있다. 그리고 누군가 외친다.
"그들은 서점을 떠올리며, 대체 무엇을 상상하는 걸까! “
좋아하는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는 잔잔한 재즈 음악이 흐르고, 출근하면 일단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들고 테이블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며 (우아하게) 독서를 좀 하다가, 손님이 오면 반가운 얼굴로 맞이한 뒤 약간의 담소를 나누고, 이런저런 책 이야기를 공유하고, 좋은 책을 추천해 주고, 손님이 떠나고 나면 다시금 잔잔한 고요 속에 몸을 맡기며 독서의 세계로 빠져드는 그림이라도 상상하는 걸까?
만약 서점원이라는 직업을 떠올리며 이런 것들을 상상했다면, 당신은 서점원이 적성에 맞지 않을 확률이 높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나름대로 예습을 착실히 한 덕분인지) 워낙에 최악을 상상하고 갔던 터라 오히려 좋다는 쪽이었지만, 뭐 아무튼! 현실은 낭만과는 제법 거리가 있다는 사실을 미리 말해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떼던 사장의 다음 말이 압권이다.
"체력은 좋으세요? 어디 아프신 데는 없고요? 사실 서점 일이라는 게... (잠시 말을 잇지 못함) 체력이 안 좋으면 힘드실 거예요..."
그렇다, 서점 일의 8할은 육체노동이다. 작은 규모의 독립 서점이나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의 업무 형태는 잘 모르겠으나, 일단 내가 일했던 지극히 평범한 4층짜리 종합 서점의 업무는 그러했다. 그럼 지금부터 '진짜' 서점의 일을 주관적인 나의 경험에 의거하여 간단하게 나열해 보도록 하겠다.
출근하자마자 책이 입고되기 시작하고, (매일 들어오는 책(주문 도서 + 신간)의 양이 수백 권이다.) 입고가 잡히는 대로 턱밑까지 쌓이는 책탑을 양손에 그러안고 계단을 수십 번 뛰어오른다. 또 그 책들을 서가에 꽂기 위해 발에 땀나게 뛰어다니다가, 밀어닥치는 신간에 터져나갈 것 같은 서가를 틈틈이 정리하고, 그렇게 서가에서 설 자리를 잃은 책들을 창고로 올리는 일까지가 매일 반복되는 데일리 루틴이다. 물론 이것만 하는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 손님이 찾는 책도 찾아 줘야 하고, 계산도 해 줘야 하고, 진상과 실랑이도 벌여야 하는데! 아직도 남은 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반품 지옥! 책 정리가 모두 끝나는 저녁 무렵이 되면 비로소 반품 지옥의 서막이 열린다. 개정된 도서의 구판부터 시작하여, 장기 미판매 도서들을 추려 반품을 빼야 하는데, 이건 그야말로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틈날 때마다 계속, 주야장천으로 해야 하는 업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싼 반품 덩이들을 이고 지고 1층까지 내리면 퇴근할 시간이 되는 것이다. 데일리 업무가 이 정도이고, 그 외에도 시즌에 따라 여러 부수적인 업무들이 추가된다.
물론 장점도 있다. 서점을 다니면서 일단 살이 빠졌고, (기분 탓일지도 모르지만) 팔에 근육도 좀 붙은 것 같다. 물론! 서점의 일이란 게 일정 루틴이 매일 반복되는 형태이긴 하나, 숨 가쁘게 바쁜 날이 있는가 하면, 여유롭고 한가로운 시간이 허락되는 날도 분명 존재한다. 대체로 책이 입고되지 않는 주말이 그런 경우로, 이런 날은 그렇게들 부르짖는 '낭만'을 약간은 찾아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낭만이란 것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은 것이고, 주말이라고 언제나 여유롭다는 보장은 없기에 사막의 오아시스보다 귀하고 드문 순간이며, 그러니까 서점에서의 8할은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등줄기에 땀이 밴 채로 하루를 보내게 된다는 소리!
- 그래서 다음화는요? 서점의 저세상 퇴사율에 대한 기막힌 이야기로 돌아옵니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