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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Dec 23. 2023

서점원의 기쁨, 서점원의 슬픔

서점의 일장일단에 대하여

 모든 일이 그러하듯 서점의 일에도 일장일단은 존재한다.

 나는 오늘 전지적 서점원 시점에 의거하여 서점원의 기쁨과 슬픔이라는 두 개의 주제에 따라, 서점의 일에 대한 장단점을 이야기해 보려 한다.


#1_기쁨 편

 일단 서점원의 가장 큰 기쁨은, 도서를 싸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일했던 서점의 경우, 직원은 서점 입고가, 그러니까 원가로 도서를 구매할 수 있었기 때문에, 도서 정가제가 법으로 적용되는 이 나라에서는 서점원이 아니라면 절대 불가능한 금액으로 도서를 살 수 있다는 엄청난 메리트가 있다. 서점에서 제공하는 공식적인 복지는 도서 할인이 거의 유일했으므로, 나는 지난 1년 동안 복지를 야무지게 챙겨 먹기 위해서라도 책을 열심히 사 나를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평소 관심이 없었던 자연과학 도서를 제법 읽게 되었고, 죽기 전에 한 번쯤 읽어봐야지 마음먹었던 벽돌책들을 비교적 부담 없이 나의 서가에 채워 넣을 수 있게 되었으며, 한참을 잊고 살던 만화책 사 모으는 재미를 다시 한번 느껴 볼 기회를 얻었다.


 둘째는 내가 평소 관심 없던 장르의 도서들이 주류를 이루는 층에 근무하게 되어 얻을 수 있었던 의외의 행운과 관련이 있다. 처음엔 문학 장르가 배치된 층에 근무하기를 희망했으나, 오래지 않아 자연과학이나 수험서를 다루는 일에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서점원으로 일하며 세상에 얼마나 많은 직업이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으며, 수험생들마다 장르별 특성이 존재한다는 흥미로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었고, '세상에 이런 책도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매일같이 하며 그간의 편협한 독서 생활을 반성하는 한편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이야기는 결국 '책'이라는 한 가지 상품군으로 총집결된다는 깨달음을 얻으며 도서의 방대함에 압도되면서도 책의 매력에 더더욱 빠져드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는 출근만 하면 책 이야기 나눌 사람이 언제든 내 옆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명 북스타그램을 시작하기 전까지만 해도, 온/오프를 막론하고 책 이야기 나눌 사람 하나 없이 세상에서 책이란 것은 나 혼자만 읽는 것 같은 오만한 고독감에 빠져들기 일쑤였다. (북스타그램을 시작하며 느꼈던 문화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온라인 세상에는 책을 미친 듯이 많이 읽는 사람들이 미친 듯이 많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는 모르나 이상하게도 내 주변을 장악하고 있는 대부분의 가족 친지들은 책과 담을 쌓고 사는 케이스로, 책 이야기를 꺼낼라치면 대번에 약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으므로 웬만해서는 책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그러니까 언제든 편하게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매일 내 주변에 존재한다는 것은 나에게는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고, 그러니까 이것은 책을 싸게 살 수 있는 기쁨과 비견될 만큼의 큰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2_슬픔 편

 일단 서점원의 가장 큰 슬픔은 짜디짠 월급이다. 그 월급을 받아서 서울에서 혼자 월세방 자취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수준이고, 아무런 빚 없이 부모님 집에서 생활을 할 경우라면 기본적인 문화생활 정도는 할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이라고 볼 수 있다. 연차가 쌓인다고 연봉이 쑥쑥 오르는 것은 다른 세상 일이고, 법적 최저시급 인상률과 동일하게 매년 월급이 오르긴 오른다. 일을 하는 이유가 오직 돈에 있다면, 차라리 동네 고깃집 직원을 하는 편이 대우는 백번 천 번 낫다고 할 수 있다.


 둘째는 손님들의 오프라인 서점을 대하는 태도에 있다. 물론 내 가게는 아니고, 책 한 권 더 판다고 해서 내 월급이 오르는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너무나 서슴없이 "야, 사는 건 인터넷으로 사!" "야, 여긴 할인 안 해준대." 따위의 말을 우리들 코앞에서 내뱉으며 쌩 하고 나가 버리는 손님들이 정말 엄-청 많다는 사실! 엄밀히 따지자면 나랑 그다지 상관없고, 그들의 결정은 대단히 합리적인 편으로 충분히 이해할 만하지만, 그래도 서점원의 입장에서는 왠지 야속한 마음이 든다. 왜냐하면! 그들이 대충 훑어보고 사는 건 인터넷에서 사겠다며 아무 데나 꽂아놓고 가는 책들을 제자리에 정리하는 일은 우리들의 일이니까..! (안 살 거면 얌전히나 보고 가라 좀...)


 그런데 이 글을 쓰며 다시금 깨달은 점이 있다. 그래도 역시, 서점원으로서의 삶은 슬픔보단 기쁨이, 단점보다는 장점이 더 많았다는 사실. 기쁨에 대해서는 사실 쓸 말이 더 많다. 내가 찾아 나서지 않아도 대부분의 신간 도서들이 내 앞으로 밀려 들어온다는 것, 그래서 출판 시장의 트렌드와 흐름을 가만히 앉아서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는 것, 팔리는 책과 안 팔리는 책의 차이를 어느 정도 구별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보석 같은 책을 제법 자주 찾아낼 수 있다는 것 등등. 그런데 슬픔에 대해서는 애써 고민해 봐도 추가로 떠오르는 점이 없다. 굳이 꼽자면 책을 쓸데없이 많이 사게 된다는 것 정도랄까? 여느 서비스 및 판매직이 그러하듯 무례하고 황당한 진상 고객을 상대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을 수 있으나 사실은 이상한 손님보다 좋은 손님이 훨씬 더 많다. 회사 다닐 때는 우리 회사 사람들은 다 병신인 걸까? 같은 고민을 진지하게 했다면, 오히려 서점에서 불특정 다수의 많은 손님들을 마주하면서는 역시 세상에는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구나 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아무튼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냐에 따라 서점원이라는 직업이 최악의 직업이 될 수도 있겠죠?

 모든 일이 그러하듯, 생각하기 나름이니까요! :)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 (반드시 그렇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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