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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Dec 30. 2023

어느 서점원의 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 책.

 새로운 꿈이 하나 생겼다.

 나이 예순을 넘어갈 즈음엔 3층 정도 규모의 아담한 꼬마 빌딩을 소유한 건물주가 되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옥상은 정원으로 가꾸고, 3층은 주거 공간으로, 2층은 서재로 만든 다음 1층에 내 이름을 딴 서점을 열고 싶다.


 팔릴 만한 책이라든가, 마진율이라든가 하는 복잡한 숫자 놀음은 다 집어치우고, 내 나름대로 엄선한 좋은 책들로만 공간을 가득 채워 놓고서, 통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듬뿍 받으며 오후 내내 그곳에 앉아 책을 읽어야지. 동네 아이들이 편하게 와 놀다 갈 수 있도록 그림책도 얼마간 구비해 두어야겠다. 한편에는 열심히 모아놓은 만화책들을 부려놓고 동네 사람들만을 위한 소규모 만화 대여점도 운영하면 좋겠다. 그곳이 남녀노소 누구라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동네의 사랑방이 되면 참 좋겠다. 젊은 엄마들이 잠깐 커피 한잔 하러 가거나 마트에 장을 보러 갈 때면 마음 놓고 편안하게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그 공간에서, 먹고살 걱정 없이, 소박한 풍요를 누리며, 천천히 나이 들어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겠다.


 어쩐지 서점이란, 이런 마음가짐으로 운영해야만 할 것 같다. 그러니까 그곳에 나의 생계 전부를 걸지 않아도 될 때, 소일거리 삼아 느린 속도로 운영하는 것이 가능해졌을 때, 받기보다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우선되었을 때, 그때가 나에게 허락된다면 꼭 서점 주인이 되어보고 싶다. 추천해 주는 책은 믿고 읽을 수 있다고 소문이 난 책방 아줌마로, 심심할 때 놀러 가면 언제라도 동화책을 읽어준다는 동화 할머니로, 이웃과 더불어 책과 함께 늙어가는 서점 주인이 되는 꿈이 마음속 어딘가에 여린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며칠 전 서점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 별다를 일 없는 서점 근황을 전해 듣고, 궁금한 단골손님들의 안부를 묻고, 이런저런 책 이야기를 깔깔대며 나누고 돌아오는 길에 문득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더 이상 내가 그곳의 일원이 아니라는 사실이 실감 난 탓이다. 남편과 통화를 하다 나도 모르게 소리 내어 말해 버렸다.

 “나 정말 좋았나 봐, 서점에서 일했던 시간이.”

 정말 그랬다. 나의 길지 않은 인생을 돌아보았을 때, ‘행복’이라는 단어에 가장 가까이 다가갔던 순간을 꼽으라면, 나는 역시, 망설임도 없이, 서점원으로 살았던 지난 1년을 떠올리게 된다. 서점원으로 살며 매일 아침 눈을 떠 출근 준비를 하고, 밤이 되어 퇴근할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나?'

 그 감각이 여전히 나의 세포 어딘가에 기분 좋게 남아 있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세상의 잣대에 휘둘리지 않고, 그냥 그 자체로 충분하다고 여길 수 있었던 편안한 감각이.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렇게 좋았는데 왜 서점을 그만두었냐고. 그대로 충분했는데 왜 새로운 길을 가려하냐고. 나는 아마 약간 멋쩍은 표정을 하고 뒷머리를 긁적이며 이렇게 답하겠지. "그러게 말이에요."

 아마 진짜 대답은 내 나이가 아직 30대 초반이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까? 아직은 더 도전해 보고, 더 성장하고 싶으니까. 그런 때라고 믿고 있으니까. 그래서 지금의 나에게 이대로도 충분하다는 감각은 좋기보다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버렸으니까. 그래서 어느 순간 박차고 나가야만 한다는 결심이 선 것 같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간 나의 세포 속에 각인된 그 편안했던 감각을 찾아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다. 책 속으로, 기묘한 서점의 세계 속으로. 그러니까 나는 역시, 서점원으로서의 시간이 정말 좋았다고,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까지고 그리워하게 될 것 같다고, 이곳에서나마 소심한 고백을 남겨 본다.

요정도 건물이면 딱 좋겠는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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