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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우 Oct 11. 2024

배움을 위한 배움을 지양하기

인생은 실전이다

 소설가가 되고 싶었다. 허구라는 방패 뒤에 숨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마음껏 털어내고 싶었다. 늦게라도 문창과에 가서 제대로 배우겠다며 늦깎이 입시를 준비하던 시절, 무식함을 용기 삼아 무턱대고 공모전을 준비하던 시절, 수많은 책들을 읽어치웠지만, 당시의 나는 모든 책을 공부하듯 읽기 바빴다.  한 줄 한 줄을 분석하려 애쓰며, 있지도 않은 어떤 기법을 알아내기 위해 힘쓰며. 그때의 나는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보다 묘사가 잘된 문장에 밑줄을 쳤다.


 소설가의 꿈을 꽤 오래 간직하며 살았다. 다른 일을 하면서도, 회사를 다니면서조차도, 사실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건 소설을 쓰는 거라고 믿으며. 책이 다시 좋아진 것은, 아니 어쩌면 처음으로 '진짜' 책을 좋아하게 된 것은, 소설가의 꿈을 완전히 접고 난 뒤였다.


 오롯한 독자로 살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어쩐지 책을 팔고 싶어졌다. 독자의 관점에서 좋았던 책을 소개하고, 많이 읽고, 많이 나눌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서점원으로 1년을 지내며, 나는 책이 점점 더 좋아졌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은 팔지 않기로 했다. 나는 가장 순수한 의미의 독자로 남기로 했다. 그것만이 내가 책을 계속 사랑할 수 있는 이유라 믿게 되었다. 꽤나 모순적이게도 나는 현재 책을 팔고 있다. 그러나 늘 책에 대해서만큼은 무한히 관대한 마음을 유지하려 애쓴다. 단 한 권도 안 팔려도 괜찮다는 마음이 단 한순간도 어긋나본 적 없다.


 나는 다독가가 아니다. 플로팅을 오픈한 뒤로는 책을 거의 못 읽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책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책에서 뭔가를 배워야 한다는 마음을 버린 뒤로, 나에게 읽기는 그저 놀이가 되었다. '놀이'라는 단어가 실이라면 '자유'는 바늘이 된다. 자유가 없다면 놀이가 아니다. 내가 책을 읽고 있지 않더라도 내가 책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놀이가 생업보다 우선할 수 없을 뿐이다.


 어느 순간부터 배움을 위한 배움은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아 졌다. 오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하고, 오늘 만난 손님을 즐겁게 응대하고, 오늘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하다 보면, 배우고 싶지 않아도 배우게 되는 것들이 있다. 배움은 우리가 애써 찾아 나서지 않아도 도처에 널려 발에 채일 정도가 아니던가. 나에게는 언제나, 놀이보다 앞선, 배움보다 앞선, 생존의 기로가 기다리고 있으니까. 놀이는 잠시 미뤄 두어도 좋다. 미루면 미룰수록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놀이의 미덕인 것이다.


 그러니까 생각해 보면 학생의 신분이란 얼마나 값진 축복의 시절인가. 배움을 위한 배움에 정진할 수 있는 것은 일종의 권리일지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배움을 위한 배움을 거부할 수 있는 것이 학생 아닌 자의 권리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모든 배움은 결국 실전을 위한 것이니까. 나는 열심히 오늘과 싸우며 실전에 능한 백전노장이 될 테다. 마음껏 놀이만 할 수 있는 날을 만들기 위해 일단 오늘 급한 불을 꺼야지!

생업도 관점에 따라서는 놀이가 될 수 있죠! 이왕이면 즐겁게 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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