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되고 못되고는 문제가 아냐.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
어릴 때는 꿈이 무슨 백지수표 같았다. 어른들이 ‘넌 커서 무얼 하고 싶니?’라고 물으면, 그냥 하고 싶은 걸 적어내면 되었다. 반대로 어른이 된다는 건 ‘꿈’이라는 단어에 자꾸만 단서를 붙이며 머뭇거리는 일이었다.
‘가능성’이나 ‘현실성’ 같은 것들. 여러 이유를 덕지덕지 붙이며, 비슷한 방식으로 주변의 모두가 어른이 되어 갔다. 눈앞에 당면한 것들을 그때그때 해결하면서, 평균 막대선에 끊임없이 나를 대어 보면서, 나도 그렇게 자라 시시한 어른이 되었다.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의 주인공 ‘료타’(아베 히로시)는 아버지로서도, 사회인으로서도 실패한 어른이다. 소설가를 꿈꿨지만 별다른 성취가 없었고, 변변한 직업도 없이 항상 돈에 쪼들리며 살아간다. 아들 ‘싱고’(요시자와 타이요)는 그런 아버지가 탐탁지 않다.
태풍이 몰아치는 밤, '료타'와 '싱고'는 놀이터의 미끄럼틀 밑에 숨어 과자를 나눠먹는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꿈이 뭐냐 묻는데, 애늙은이 같은 아들은 공무원이 되겠다고 한다.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
“아빠는 아직 되지 못했어. 하지만… 되고 못되고는 문제가 아냐.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 “
료타의 이 말은 언뜻 변명 같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어른이 그럴듯한 말로 때우는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곱씹을수록 진실이 묻어나는 듯하다. 어른의 꿈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이 아닐까.
얼마 전 유튜브 영상에서 장도연이 기안84에게 한 질문이 화제가 되었다. 친분과 관계없이 섭외하고 싶은 게스트가 누구냐고 묻자 ‘G-DRAGON, 윤석열 대통령’이라 대답한 것이다. 대답보다 놀라운 것은 그 이유였다. “꿈이 뭔지 물어보고 싶다.”
인생은 끊임없는 과정이므로, 무엇이 되었다고 동화책처럼 막을 내리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이룰 게 없는 정점 같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그다음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안84는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어른이 가져야 할 것은 ‘어떤’꿈이 아니라 ‘꿈’ 자체인 것 같다. 가능성과 현실성을 고려하면서도 놓지 않는 어떤 것. 죽는 날까지 되고 싶은 무엇. 어른이야말로 꿈이 필요한 존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태풍이 지나가고>의 시나리오 첫머리에 다음의 문장을 적어두었다고 한다.
“모두가 되고 싶은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이 씁쓸하게 느껴진다면 이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안다. 자조가 아니라 위로이고, 체념이 아니라 응원이라는 것을.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라던 무엇이 되지 못했더라도 괜찮다고, 다만 언제나 미래를 쥐고 있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