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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Mar 05. 2023

3월 4일에 본 것

넷플릭스, <새들과 춤을>

<새들과 춤을>을 봤다. 사실 보다가 중간에 잠들었다. 온몸이 형광주황색이어서 초현실적인 느낌을 주는 새가 등장했을 때, 색깔에 감탄하는 것도 잠시 정신을 놓아버린 것 같다. 너무 피곤했다. 눈을 뜨니 어마어마하게 큰 둥지 같은 것이 나오고 있었다. 새가 지은 구조물이라고 하기엔 꽤나 컸다.  


사실 졸아서는 안 됐다. 주인공 새들이 춤에 들이는 정성을 생각하면 잠들 수가 없다. 먹이가 풍부하고 큰 포식자가 없는 곳에서 사는 새들은 걱정 없이 몸단장과 춤맵시에만 집중할 수 있다. 멋진 깃털이 돋보이는 새들은 모두 수컷이다. 암컷을 매혹하기 위한 구애의 춤은 지극히 정성스럽다. 


춤을 추기 위한 무대도 따로 있다. 구애용 나뭇가지가 따로 있다는 것도 그들이 프로라는 걸 증명한다. 춤으로는 부족해 구조물을 만들고, 친구 아닌 바람잡이를 불러 함께 춤을 추기도 한다. 검은낫부리극락조를 보자. 생존에는 전혀 쓸모가 없을 것 같은 거추장스러운 어깨깃을 이용해 참으로 유연하게 춤을 춘다. 매 스테이지가 마지막 무대인 것처럼 최선을 다하지만 스쳐간 인연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다가온 암컷이 그냥 날아가버리면, 참으로 유감. 그러나 무대는 영원히 이어지는 법.


맹-고



입이 민트색이야! 열두줄극락조가 등장했을 때는 거의 소리를 질렀다. 내적 외침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샐쭉해 보이는 뒷모습을 보면 잘 익은 망고가 생각나고, 정전기가 일어난 것 같은 꼬리깃털은 그 어느 새보다 독특하고, 앞서 말했듯 입속은 민트색이며 다리는 핫핑크색이다. 온몸이 형광주황색이었던 붉은 새는 불꽃바우어새였다. 무려 9개의 안무를 하나씩 침착하게 수행하는 캐롤라여왕극락조는 나전칠기를 연상케 하는 가슴털을 갖고 있다. 


기억력 천재



반면 암컷들은 같은 종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수수했다. 나무의 초록색과 갈색에 자연스럽게 어우러질 수 있을 것 같은 색깔을 입었다. 암컷들은 나뭇가지에 앉아 그저 수컷의 안무와 건강상태를 감상한다. 아니, 마냥 편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다시 생각하니 사소한 결정도 힘들어하는 나라면 저런 골치아픈 일은 못할 것 같다. 눈앞의 춤만으로 이 새가 내가 찾는 그 새인지 판단하고 결정을 내려야 한다. 암컷들 역시 눈에 보이지 않지만 상당한 정신적 노동을 감당할 거라 짐작한다. 그냥 감상만 하고 싶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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