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해보기 전엔 모르는 거야,
저자가 삶의 모토로 삼은 이 말이 참 마음에 든다. 저 말을 붙들고 살아간다고 모든 일에 성공하는 건 아니다. 본인의 의지와 노력은 디폴트값이고, 환경과 운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많다. 마음은 간절하지만 내 손에 들린 자원이 보잘것없을 때 흔히 쓰는 표현이 있다. 예를 들어 계란으로 바위 치기.
무모해 보이는 도전을 시작할 때 승률을 따져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냥 뛰어드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승률을 따져보는 사람도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승률이 낮으면 에이, 에너지 낭비네, 라며 돌아서는 사람이 있다. 한편 어떤 일에 뛰어들기 전 분석과 예측을 습관처럼 수행하지만, 리포트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말 그대로 예측은 예측일 뿐, 이미 마음이 내린 결정의 발목을 잡지는 못한다. 에너지를 아끼는 사람도 어떤 의미로 쿨하고 배울만하지만, 후자야말로 정말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연상의 언니와 속전속결로 결혼식을 올린 이 책의 저자처럼.
이제 와이프가 된 언니와 결혼하기 위해 저자가 작성했던 프러포즈용 보고서를 보고 경악했다. 슬라이드 자료를 (귀여움을 어필하게 위해 첨부했다는) 본인 사진까지 그대로 책에 실었다. 필요한 것을 잊거나 빠뜨리지 않기 위해 혼자 참고했던 자료가 아니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보고용’이었다. 투명한 재무상태 공개부터 결혼으로 얻을 수 있는 기대 효과까지. 일 정말 잘하는 사람 같다고 감탄하면서도 뭔가 찝찝했다.
미래의 내 배우자가 프러포즈 날 이런 계획을 밝히면 참 믿음직스럽고, 사랑이 한층 더 깊어지겠지만, 숫자가 너무 많아서 마음이 말랑해지기는 힘들 것 같은데. 기쁨의 눈물 대신 내 통장을 생각하다가 반성과 후회의 눈물이 고일 순 있겠군. 둘이 함께 앞으로는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살자고 파이팅하는 것으로 장면이 종료될까. 나쁘진 않네. 그것도 건실한 방향이겠다. 그러다 반짝거리는 것들도 함께 곁들였다는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야 나도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논리와 감성을 모두 잡은 이 사람은, 정말 찐이다. 3월에 프러포즈, 5월에 혼인신고, 7월에 이사, 11월에 결혼식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소화하려면 이런 계획적인 자세가 필요하겠구나 싶었다. 역시 추진력은 계획이 있어야 절뚝거리지 않는다.
저자는 그 누구보다도 한국에서 동성 부부가 누리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수술 시 보호자 동의를 해줄 수 없다는 점, 신혼부부에게 주어지는 주거 정책상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점, 항공사 마일리지 가족 합산이 안 된다는 점, 그리고 혼주석에 부모님이 앉으실 확률이 극히 낮다는 점. 하지만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현행 제도가 아직 미흡하다면 최선을 다해 원하는 모습에 가장 가까이 가면 된다. 그래서 그는 한국 대신 맨해튼에서 혼인 신고를 했고, 와이프와 함께 웨딩드레스를 입고 서울에서 ‘한국식 공장형 웨딩’을 올렸으며, 항공사 마일리지 문제도 해결했다. 어떻게든 부딪혀 바꿔나갈 수 있는 제도와는 달리 사람의 마음은, 아주 가까운 사람이더라도, 포기하거나 기약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이 아릿하다.
어쨌든 저자는 일련의 과정을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렸다. 블로그를 열었다. 간판의 소개문구부터 시선을 끈다. 왜 아무도 레즈비언으로 잘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지 않는지 궁금해하다 그냥 자신의 이야기를 공유하기로 했다는 문구를 걸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고, 매체에서 연락을 해왔고, 몇 번의 인터뷰를 거쳐 9시 뉴스에까지 나왔다. 나도 한 신문사와의 인터뷰를 보고 저자를 처음 알게 됐다. 왜 조용히 지내지 않냐고 묻는 사람들이 있었다. 저자를 마음으로 지지해주던 아버지조차 9시 뉴스에 나가겠다고 하자 연을 끊겠다고 했다.
이미 자신의 결혼식을 치르는 것만 해도 힘들었을 텐데, 그는 왜 보수도 없는 일에 그렇게 나섰을까. 한국 사회의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위한 희생이었을까, 영웅심에서 나온 행동이었을까. 저자는 확실하게 말한다. 자신의 행복과 편리를 위해서였다고. 헌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아직 ‘현행법상’ 동성혼이 인정되지 않는 한국에서는 동성 부부의 삶과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찾기가 힘들다. 여기,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어요. 이 목소리는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바꾸기 위한 방편인 셈이다.
현재 동성혼에 찬성하는 20대는 60%가 조금 넘는다. 그래서 저자는 30년 후면 동성혼이 특별한 얘깃거리도 되지 못할 거라고 믿는다. 60세가 되어 부부 관계를 법적으로 인정받고 세제 혜택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그 연령을 55세로 끌어내리는 게 더 이득이지 않을까. 그렇다면 지금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데 들어가는 수고는 미래를 위한 투자나 다름없다.
해보기 전엔 모른다. 어차피 미래는 미지의 영역이다. 다만 지금 조금 손을 내밀어 본다면 뜻밖에도 확실한 행복을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의 결혼 과정을 읽고 나서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아는 것이 행복의 출발이라는 격언이 생각난다. 혹시 내가 요즘 모든 책을 자기 계발서처럼 읽고 있는건가. (주의) 모든 면에서 재밌고 훌륭한 책이지만, 어떻게 좋은(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과분한)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지는 이 책으로 알 수 없다. 어떤 비기도 소개되지 않으니 기대마시라. 그냥 개인의 운인 것 같다. 다만 어떻게 좋은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을지는 미루어 짐작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