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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몬순 May 31. 2020

읽그 11. <아무튼, 하루키>

이지수 지음 / 제철소




나의 ‘하루키’는 누구였을까.


‘아무튼, OO’ 시리즈는 고백의 기록이다. 저자들은 어떤 것을 지극히 좋아해본 사람들이다. 스릴러, 발레, 문구, 떡볶이, 메모 등 대상은 다양하다. 그 대상을 어떻게 좋아하게 됐는지, 무슨 계기가 있었는지, 얼마나 좋아하는지, 이 질문들은 그래서 ‘저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면서 끝을 맺는다. 좋아하는 대상과의 첫 만남과 각종 에피소드는 과거의 일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모습은 현재다. 그것을 만나지 않았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어떤 분기점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뻗어나간 삶의 가지.


통일된 형식도 없고, 틀도 없다. 저자들은 자신이 얼마나 이것을 좋아하고 아끼는지 쓰고, 앞으로도 아낌없이 좋아할 것을 다짐한다. 그리고 독자인 나는 당이 떨어질 때 알사탕 하나를 까먹듯 책을 읽으면서 앞으로 이 시리즈를 변함없이 좋아할 것을 다짐한다. 나는 좋아하는 것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또 좋아하게 될 것을 탐색하기 좋아한다. 생각만해도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사람들을 쉽게 좋아하고, 기꺼이 설득당할 준비를 하고 저마다의 이유에 귀를 기울인다. 각 권의 저자가 다르다보니 매번 새로운 느낌을 받는 것도 좋다. 혼자 속으로 메기는 별점과 책에서 얻는 의문은 매번 달라진다.


그래서, ‘아무튼, 하루키’를 읽은 이유는 이 책이 ‘아무튼’ 시리즈였기 때문이다. 시리즈의 모든 책을 다 읽기는 어려울 것이다. 나도 무조건 좋아할줄만 아는 사람은 아니니까. 하루키의 책 몇 권을 읽었지만 팬이라고 자처할 정도도 아니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따로 있다. 표지에 그려진 곰 그림에 마음이 녹았다. 산토리니를 연상케 하는 파란색 곰. 아마 하루키의 책 <노르웨이의 숲>에서 나온 '봄날의 곰'에 착안한 게 아닐까 싶다. 풀밭을 데굴데굴 굴렀으면 녹색 물이 들어야지, 왜 파란 색일까 잠깐 궁금하긴 했다.


"얼마만큼 좋아?"

"봄날의 곰만큼."

"그게 무슨 말이야, 봄날의 곰이라니?"


"봄날의 들판을 네가 혼자 거닐고 있으면 말이지, 저쪽에서 벨벳처럼 털이 부드럽고 눈이 또랑또랑한 귀여운 아기 곰이 다가오는 거야. 그리고 네게 이러는 거야. '안녕하세요, 아가씨. 나와 함께 뒹굴기 놀이 안 할래요?' 하고. 그래서 너와 아기 곰은 서로 부둥켜안고 클로버가 무성한 언덕을 데굴데굴 구르면서 온종일 노는 거야. 어때, 멋지지?"


저자는 일본어 번역가다. 하루키의 작품을 원서로 읽고 싶어 일문과에 진학했고, 언젠가 하루키의 작품이 자신에게 오기를 기다리고 있단다. 15살 무렵부터 하루키를 좋아했다는데, 나또한 그 나이쯤 하루키의 작품을 처음 읽었다. 그러나 이해하기 힘든 문장에 매혹되었고, 엉긴 문장들을 이제 ‘용해’하고 있는 저자와 달리 나는 그시절 빠르게 하루키를 포기했다. 당시 요시모토 바나나 등 다른 일본 작가들이 쓴 소설은 재미있게 읽었다. 그러나 하루키의 세계는 들여다보니 흥미로웠지만 내가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벅찼다.


책의 각 챕터 제목은 하루키의 작품 이름이고, 저자는 하루키와 밀접하게 또는 느슨하게 연결된 삶의 지점들을 소개한다. 하루키는 수많은 작품을 쏟아낸 베테랑 작가다. 한정된 지면 때문에 아마 저자에게 가장 뚜렷한 인상으로 남았던 작품을 신중하게 선정하지 않았을까. 소설가에게 자신의 역작을 직접 골라야 하는 일이 힘들듯이 열렬한 독자에게도 마찬가지다.


소개한 책 중 읽은 것도 있고, 아직 읽지 못한 것도 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하루키의 작품은 무엇일까 생각해봤다. 의외로 답이 쉽게 나왔다. 데이터베이스의 총량이 적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가장 좋아하는 단편은 <토니 타키타니>(늘 타키티니, 티카티니, 티키타카... 등으로 기억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검색해봤다)이고,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장편소설은 <IQ84>다. 가장 좋아하는 표지는 민음사에서 17년에 출판한 <노르웨이의 숲> 개정판이다. 저자는 하루키를 마냥 찬양하는 대신 오랜 팬의 내공이 돋보이는 거리두기 정신을 발휘해  <기사단장 죽이기>에 대한 아쉬움을 냉철하게 표현한다. 나도 일부분 동감했다. 하지만 좋은 신작이 나와 아쉬움을 덜고, 최애 순위를 흔들어버리기를 바라는 마음에 더 크게 공감했다.


그럼 나의 하루키는 누구일까. 이번 책을 덮을 때쯤 든 생각이다.


오랜 기간 연속성있게 좋아한 작가가 누가 있을까. 첫번째 조건, 오랜 전 좋아했던 작가들의 문장은 지금 거의 내 속에 담겨있지 않고, 두 번째 조건, 몇년간 꾸준히 좋아하는 작가들은 있지만 왠지 스쳐가는 마음일 수도 있어 고백하기 부끄럽다. 나는 왜 어떤 작가의 1N년 팬이 아닌 걸까. 앞에 ‘게으른’을 붙여준다면 슬쩍 눙쳐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길지 않은 햇수를 살아오면서 꾸준히 열정이나 애증을 불태우는 대상이 없다는 건 내 콤플렉스 중 하나다. 좋았지만 여기까지, 바이바이, 인 경우도 잘 없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경우가 많다. 떠나고 싶어서 떠나는 게 아니라 옮길 곳을 바라보는 데 여념이 없기 때문에, 떠난 것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읽을 것은 늘 많고, 나는 이것도 좋고 이것도 좋아, 라고 하다보면 어느 순간 한 시절이 과거가 되어 있다. 그래도 그 점과 점을 잇는 일종의 연속성이 있을 거라고 위안할 뿐이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겠지.


또 하나의 아쉬움. 왜 나는 하루키의 팬도 아니었던 걸까. 소화하기 힘든 문장을 어떻게든 욱여넣어 보는 대신 바코드를 읽듯이 흝고 지나가버린 게 좀 아쉬워졌다. 하루키 팬들 만의 끈끈한 세계가 부러워서는 아니다. 하루키의 작품을 더 여러번, 깊게, 천천히 읽었다면 이 책을 더 재미있게 읽었을 것 같아서 아쉽다. 저자와 책을 통해서 약간 친해진 기분이었고, 더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든다. 어느 정도냐면, 이 책을 읽고 나서 하루키 작품을 다시 읽어봐야지, 가 아니라 저자가 번역한 책을 찾아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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