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번째
사실 따지고 보면 특별한 연애도 아니었다
죽고 못살 만큼 서로 애틋한 연애도 아니었고
물흐르듯 미적지근한 연애였다
너는 그게 불만이라 날 떠났지만
난 그런 온도의 연애도 좋았다
적당히 마음 주고 받는 그런 연애
결혼한 듯 편안했던 연애
끝내 다른 연애들처럼 결말은 흔한 그런 연애
또
사실 생각해보면
넌 그렇게 좋은 남자친구도 아니었다
짖궂은 농담을 서슴없이 했었고
길을 걷다 내 걸음이 느려 뒤쳐져도 한참 뒤에나 알아차릴 만큼 날 신경쓰지도 않았고
싫다는 담배를 끝내 끊지도 못했었고
늘 입맛이 저렴하여 싼 메뉴여도 상관없다 했었고
그렇게 사달라 했던 꽃은 1년이 지나도 없었고
내 생일날도 먼저 챙기는 법이 없었고
말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던 일들도 많았고
비오는 추운 겨울 널 만나러 내가 가야만 했고
다시 지방으로 떠나는 널 배웅하는 일요일엔
내 시간을 온전히 비워두고 네가 출발할 때만을 기다렸었다
너는 도통 예매를 해두는 일이 없었기에
출발시간은 늘 미정이었다
동서울터미널은 너보단 내가 더 멀었고
네가 출발한다 연락했을 땐 난 먼저 출발했었어야 했기에 늘 나는 먼저 출발하여 근방에서 시간을 보내며 널 기다렸다
나는 늘 너에게 최선을 다했고
너는 늘 나의 최선만큼을 따라와주질 않았다
하나씩 너에 대해 안 좋았던 기억들을 되새긴다
함께여서 좋았던 기억들도 많았고 아직도 간직하고 싶은 추억들도 많이 남아있다
네가 좋은 남자친구는 아니지만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점점 나에게 넌 못난 사람 미운 사람이 되어간다
이렇게 좋아했고 사랑했던 마음들이 조금씩 무뎌지고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음 사람에겐 다시 굳건한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는 그런 마음의 기초를 만들어두고 싶다
너를 조금씩 지워내고 싶고
잊어가고 있으며 종국엔 모두가 다 지나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