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르디우스의 매듭 Mar 04. 2020

미래의 일 (2)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알 수는 없다 

 미래의 일을 얘기하면서 우리 시대에서는 유발 하라리를 빼놓고 얘기할 수는 없다. 그를 세계적 인사로 만든 <사피엔스>에 이어 그다음 책인 <호모 데우스>에서는 말 그대로 '미래의 역사'를 썼단다. 그는 책을 통해서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인류가 다른 동물과 어떻게 다른지(사실은 다르지 않다는)를 보여주고, 호모 사피엔스가 어떤 세계를 창조했으며, 어떻게 신화를 창조하고 의미를 부여하며 현재의 자유주의와 인본주의에 대해 얘기했다. 마지막에는 자유주의의 패키지 속에 지배력을 잃어갈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한다. 이야기의 전개 속에 섬뜩한 미래들이 많이 쏟아지지. 우리가 믿는 종교가 과학의 발전과 함께 어떤 과정을 거쳐 사망선고가 내리게 되었는지, 우리가 '자아' 또는 '마음'이라고 부르는 것 또한 유기체 알고리즘의 하나로 분해해 나가는 얘기들은 씁쓸하면서도 부정하고 싶어 지는 내용도 들어 있다. 내가 지금 이 글을 쓰면서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의 순간 또한 다양한 알고리즘에 따른 뉴런들의 복잡한 전기신호들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것은 삶을 무의미하게 만드니까. 하긴 그 딴 의미가 뭐가 중요한지 알 수도 없다. 진화론적 시각에서 인간의 진화 단계 중 사피엔스가 마지막이라는 것 또한 착각일지 모른다. 그래서 새로운 인류, 영원히 살며, 신성을 가진 새로운 종. 그래서 호모 데우스(Homo Deus(神))라는 것이지.  


"산업혁명이 일어난 이래로 사람들은 기계화가 대량실업을 초래할까 봐 두려워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옛 직업이 쇠퇴하면서 새 직업이 진화했고, 사람이 기계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다. (...) 인간은 두 가지 유형의 기본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육체능력과 인지능력이다. 기계가 육체능력에서만 인간과 경쟁하는 한, 인간이 더 잘하는 인지적 작업들을 늘 찾을 수 있었다. 이렇듯 기계들은 순수한 육체노동을 맡은 반면, 인간은 적어도 몇가지 인지기술을 요하는 직정에 집중했다. 하지만 알고리즘이 패턴을 기억하고 분석하고 인식하는 일을 우리보다 더 잘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쩌면 우린 미래에 다시 부활하는 사회주의를 목도하게 될까? 그럴 가능성도 무시 못해.   


"19세기 산업혁명은 도시 프롤레타리아라는 거대한 신흥계급을 탄생시켰고, 이 새로운 노동자 계급의 전례 없는 필요, 희망, 두려움에 달리 응답할 길이 없었기 때문에 사회주의가 확산되었다. 자유주의가 결국 사회주의에 승리를 거둔 것은 사회주의 프로그램의 가장 좋은 부분들을 채용했기 때문이었다. 21세기 우리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거대한 규모의 새로운 계급이 탄생하는 현장을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경제적, 정치적, 예술적으로 어떤 가치도 없으며, 사회의 번영, 힘과 영광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 '쓸모없는 계급'은 그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일자리를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일 것이다."


 이미 이런 '쓸모없는 계급'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아직은 조직화되지 못하고(어쩌면 조직화 자체가 불가능한 계급일 수 있다) 단순히 경제정책의 문제로 취급되고 있지만, 우리가 그 계급이 되는 순간이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몰라. 


 유발 하라리가 마지막에 남긴 질문은 

1.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2.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3.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 정치, 일상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답은 아직 모른다. 과학이 종교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지금 맞이하고 있고, 앞으로 예견된 변화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책들이 많이 쏟아졌는데, 많은 책에서 가치의 문제로 얘기했단다. 즉, 인공지능 또는 로봇의 알고리즘을 만들 때 어떤 가치를 주입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들이지.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그것마저 비유기체 알고리즘이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는 누구도 모른다. 모든 것이 개연성이고 가능성이며, 우리가 어떻게 준비하냐의 문제니까.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유발 하라리의 말대로 "Everything Changes." 


 근데, 이런 것들이 다 신화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 <특이점의 신화>를 쓴 장 가브리엘 가나시아가 대표적인 분이다. 2018년 우연히 그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AI는 무엇인가에 관해서 다양한 인지능력으로의 분해와 기계론적 시뮬레이션을 이야기하더구나. 많은 기업들이 호모 데우스로의 진화를 위한 휴먼 인핸스먼트(Human enhancement)를 진행 중이다. 눈에 카메라를 장착해서 컴퓨터와 연결한 사례는 물론이고, 아마존이 인간의 뇌와 컴퓨터와의 인터페이스 개발에 열을 올리는 중이지. 가나시아는 인간의 욕구를 인간이 인지하기도 전에 기계가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면, 과연 우리가 인간인가 가축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했다. 또한 기억력 증강을 위한 장치들과 앨런 머스크의 Neuralink(이를 통해 인간의 뇌를 다운로드하고, 기계에 심어 영생을 노린다는)를 통해 개인성의 소멸 가능성도 얘기했었다.  


 네가 한 때 좋아했던 BTS가 노래 제목으로 <Singularity>를 내세웠을 때 많은 물리학자들이 깜짝 놀랐었다는 뉴스 기억하니? (알고 보니 대중가요 때문이라 당황했다고...) 물리학에서 특이점(singularity)이란 특정 물리량들이 정의되지 않거나 무한대가 되는 공간을 의미한다. 블랙홀의 중심, 빅뱅 우주의 최초점 등이 특이점의 대표적인 예다. 인공지능에서 특이점은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을 말한다. 인간의 인지능력이 수천 년 동안 아주 낮은 증가율로 증가하는 곡선에서 1990년대 이후 머신러닝과 AI의 출현이 0에서 가파른 곡선으로 증가하면서 이 두 곡선이 만나는 점에 특이점(Singularity)이 생기고 이를 넘어서는 곳에서 누군가는 Super-human이 등장한다는 주장이 만들어졌어. 대표적으로 커즈와일이 2005년 저서 <특이점이 온다>를 통해 2045년이면 인공지능(AI)이 모든 인간의 지능을 합친 것보다 강력해지고, 인간이 인공지능을 통제할 수 없는 지점이 바로 특이점이고 주장했지. 결국 이런 신화는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신으로 진화한다는 것인데, 가나시아는 특이점 이론은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수함수로 증가하는 무어의 법칙에 바탕을 둔 특이점 이론은 우선, 무어의 법칙에 따라 무한히 연산 능력이 증가한다는 것 자체가 의문이며, 이 또한 S 커브를 그리며 둔화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지.(혹시 누가 무한한 지수성장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그는 분명 경제학자이거나 정치인임에 틀림없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다.) 또, 연산 속도가 증가한다고 해서 기계가 의식을 가진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빅데이터는 결정의 일부를 위임받을 수는 있지만 그 뒤에는 인간이 존재할 수밖에 없고, 특정한 천재의 등장으로 이전의 모든 것을 단절하고 뛰어넘는 것이 가능한 가에 의문을 제기했다. 


 가나시아는 특이점 신화 뒤에는 대기업이 존재하며, 이 신화를 퍼뜨리는 것 또한 그들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기술이 자율적으로 전개되는 것처럼, 기술이 인간을 대신하는 것처럼 말함으로써 권력을 가지게 되고, 그것이 국가를 넘어 GAFA(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애플)와 그 외의 몇몇 대기업들이 휘두르고자 함이라는 것이다. 가나시아는 기업들(구글이나 아마존, 페이스북 같은)이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알린다는 명목으로 스스로에게 박애주의적 기업의 이미지를 부여하지만, 진짜 위험을 감추기 위한 공포심 조장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전략은 절대적인 경제적 필요에 부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얼마 전 페이스북이 가상화폐(리브라)를 도입하겠다고 한 것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보안 분야에서 안면인식이나 지문인식이 국가보다 기업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굉장히 위험한 선택일지 몰라. 그래서 우리가 걱정하거나 감시해야 할 대상은 기계 자체가 아니라 기계의 합목적성과 게임의 규칙을 결정하는 대기업들일 수 있어. 이런 기술과 기업들은 인간을 신뢰할 수 없고, 정확한 알고리즘과 통제와 조정 능력을 지닌 기계를 믿으라고 하지만, 그건 어쩌면 가나시아 교수 말대로 그 기업들이 우리를 통제하려고 퍼뜨린 신화일 수 있겠다 싶네. AI가 스스로 인격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이 대기업들의 임원들에 의해 통제되는 수준이라면, 그들은 이런 신화를 통해 정말 큰 힘을 가질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우리는 AI보다 인간을 신뢰해야 할 수도 있어. 왜냐하면 인간은 스스로 두려움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이지.  


 AI 알고리즘과 관련한 트롤리 사례는 여전히 논의 중인 주제다. 만약 완전 자율주행차가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리면 헬멧을 쓴 오토바이 운전자를, 왼쪽으로 돌리면 헬멧을 안 쓴 운전자를 친다면 당연히 부상의 위험이 덜한 헬멧을 쓴 운전자를 치는 게 맞겠지만, 한편으로 그럴 경우 헬멧을 안 쓰는 것이 더 안전한 사회가 되는 딜레마가 생긴다. 완전 자율주행차가 직진하면 행인 3명을 치어야 하는 선택과, 핸들을 돌리면 차의 소유자인 탑승자가 다치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기업들이 운전자가 다치도록 프로그램한다면 누가 살까? 혹자는 발생할 확률이 희박한 사항을 사고실험을 통해 만들어 고민하는 것이 타당한 가 주장할 수도 있지만, AI의 가면에 숨어서 기업이 결정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자율주행차를 통해 음주운전도 없어지고 노인 운전자 사고도 없어지는 등, 전체적으로 교통사고가 1만 분의 1로 줄어든다면 도입을 반대할 이유는 없다. 한때 우리가 개를 먹는 나라에서 이제 반려견이라는 이름으로 개의 위치가 크게 달라졌다. 개가 바뀐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개의 위치를 '반려' 수준으로 올려놓은 것이지. 마찬가지로 로봇이나 AI의 실존이 바뀐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식하는 방법이 변화할 수 있다. 어쩌면 그래서 항상 로봇의 이미지를 인간의 얼굴과 몸을 한 것으로 그리는 것도 그들의 중요한 전략일지 몰라. 


 유발 하라리와 가브리엘 가나시아가 너무 먼 미래를 얘기했단 느낌이 든다면 앤드류 양의 이야기를 들어 볼레? 앤드루 양은 2020년 미국 민주당 대선후보 예비경선에 등장한 아시아계 인물이다. (물론, 바이든이나 샌더스에 비해 인지도가 낮긴 하다만...) 그가 들고 나온 이슈는 '보편 소득'이다. 쉽게 말해,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18세 이상 미국인들에게 매달 1,000달러씩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것이지. 앤드루 양은 변호사 출신의 기업가로 GMAT 시험 관련 벤처를 창업해서 돈을 많이 벌었고, 그 뒤 비영리기업 ‘벤처 포 아메리카’를 설립해서 미국 여러 도시에서 신규기업 창업을 지원하는 일을 했는데,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에 걸쳐 활기 넘치는 산업 중심지였던 곳이 현재 인구 감소와 경제적 하락을 겪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사회와 인간의 삶 모두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피부로 느끼게 되었다. 뉴욕을 비롯한 일부 부유한 도시에서는 거의 보지 못했던 우울감과 좌절, 빈 공장과 집들, 범죄의 온상이 되어가고 있는 대규모 쇼핑몰들을 보며 앤드루 양은 미래의 음울한 모습을 보는 듯했다고 회고했지. 문제는 이런 지역이 줄어들지 않고 오히려 늘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책 <The War on Normal People, 보통 사람들의 전쟁>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상황을 완전히 인식하던 순간이 떠오른다. 2000~2015년 사이에 자동화로 인해 사라진 제조업 일자리가 수백만 개에 이른다는 내용을 심층 분석한 CNN 기사를 읽고 있을 때였다. 세계화로 사라진 일자리보다 4배가 더 많다고 했다. 나도 클리블랜드, 신시내티, 인디애나폴리스, 디트로이트, 피츠버그, 세인트루이스, 볼티모어 등 예전에 제조업의 중심지였던 여러 도시를 직접 가본 적이 있다. 게다가 내 친구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고 그래서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고 있었다. 퍼즐 조각을 모두 맞추고 나니 가슴이 덜컥 내려앉으며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현상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들 지역의 경제와 문화는 말살되었으며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터였다. 미국인의 생활과 가정은 무너져가고 있다. 만연한 경제 문제는 이제 뉴노멀이 되었다. 우리는 인류 역사상 세 번째 또는 네 번째의 거대한 경제 변혁기를 맞이하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도 없고 대응책을 강구하는 사람도 없어 보인다." 


 본인을 비롯한 동료들이 만들어 온 산업 기회가 결국은 일자리를 몰아내고 있다는 것이지. 기계와 소프트웨어에 의한 노동의 대체는 이미 진행되어온 현실이다. 맥킨지에 따르면 행정에서 가장 흔한 업무인 자료 수집 및 가공의 64~69퍼센트가 자동화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는구나. 구글, 애플 및 아마존은 이 일을 대체할 수 있는 AI 행정 보조원 개발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다. 이런 일자리는 대기업에 많이 있다. 네가 말하는 '그냥 회사원'들이지. 이들은 다음번 경제 위기가 닥치면 소프트웨어, 봇, 인공지능을 결합해 인력을 대체하려 들 것이다. 


"자동화 물결이 밀려오는 이유 중 하나는, 일 처리가 유일한 목표인 입장에서 보면 사람이 기계보다 훨씬 다루기 까다롭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결책을 찾는 노력을 할 수 있다. 또, 인간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인간이 실제로 가장 적합하다고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사실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일은 대부분 인간에게 딱 들어맞을까? 즉, 인간이 일에 적합하지 않다면, 일은 인간에게 적합할까?" 


 누군가는 자본주의 사회 하에서 능력 없으면 도태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얘기할지도 모른다. 앤드류 양의 표현대로 자동화와 혁신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경제적 곤경에 빠진 수백만 명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대로 산업혁명 시대에 마부들이 자동차 운전수로 변신해서 일자리를 잃지 않았으며, 오히려 더 많은 수익을 올렸다고 얘기하면서 우리도 이런 변화에 맞춰서 자기가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인공지능을 결합하여 아이언맨처럼 Powered suit를 만들어 낸다면 더 많은 기회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결국은 마찬가지의 논리인 것이지. 그래, 누군가는 Powered suit를 입고 많이 벌겠지. 그래서 100명 몫을 혼자 가져가고 나머지 99명은 (실제로는 1명대 1천만 명이 될지도 몰라.) 일자리를 잃지 않을까? 


 보통 사람들이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실업의 충격을 가장 강하게 받을 것이다. 직장이 있을 땐 그럭저럭 삶을 꾸려갈 수 있지만, 실직만으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지. 이 글을 쓰는 아빠도 금융 밥 먹으며 그냥저냥 살아갈 만한 소득을 벌고 있어서 그들이 처한 현실에 눈을 돌리고 있는지도 몰라. 최근 미국에서 이뤄진 한 조사에 따르면 앞으로 7년 안에 미국인 1,300만 명이 대체 일자리 없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하더구나. 2019년 아빠가 런던에서 진행된 사이보스(Sibos)에 참석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Fintech'가 앞으로는 'Techfin'이라고 이름을 바꿔야 될 정도로 기술이 금융을 앞서가는 것을 지켜봤단다. 그래서 오히려 이제 인간에 대해 눈을 돌려야 한다는 자성의 반향도 볼 수 있었던 자리였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실직 공포는 현실이다.   


 사는 곳에 따라 아이들의 운명이 결정되고, 보통 사람들은 결혼은 할 수 없고 아이도 낳을 수 없으며, 영구적인 계급사회로 전환되어 대부분의 남자들은 비디오 게임에 빠져 사는 상황을 그저 가능성 낮은 전망일까? 아니면 정말 걱정해야 되는 상황일까? 어쨌거나 실직은 알코올과 약물 중독, 가정 폭력의 증가, 각종 정신질환과 사회 부적응자들의 대량 양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고, 이런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의 미래가 어두울 것은 분명하다. 이런 현상이 중산층으로까지 확산될 경우 사회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겠지.  


 그래서 그가 제시한 나름의 해결책은 기본소득이다. 혹자는 이것을 공산주의 아니냐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려나? 그렇지 않아. 보편소득, 보장소득, 그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닉슨 대통령이, 토마스 페인, 마틴 루터 킹,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민주당 경선에 같이 나온 버니 샌더스 등 수많은 사람들이 주장한 것이다. 심지어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같은 괴물기업의 CEO들조차 기본소득 보장이 불가피한 것으로 얘기하고 있다. 실제 미국에서 1971년 UBI(Universal Basic Income 보편적 기본소득)법이 하원을 통과해서 입법화가 될 뻔했다가 상원에서 막혀서 못했지.  


 앤드류 양은 기본소득 지급 재원의 핵심으로 부가세를 올리는 것과 잡다한 복지는 대폭 줄이는 방식을 제안했다. 부가세는 그 속성상 자동화의 물결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거둬들일 수 있는 재원인 것이지. 누구든(사람이든 기계든) 돈을 벌면 부가세는 발생하니까. 또 자동화와 세계화로 내려가기만 하는 물가, 그래서 내려가기만 하는 금리를 살짝 잡아 줄 수 있기도 하다.(흠... 이거 다음에 설명할 기회가 있을까?) 복잡한 복지제도의 비효율, 다시 말해, 이를 관리하기 위한 비용과 불필요하게 세어 나가는 수많은 비용(심지어는 불필요하게 세는 비용을 관리하기 위해 또 더 많은 비용을 투자하기도 한다.)을 생각한다면 줄일 수 있는 예산은 엄청나다. 사람들이 필요한 것을 정부가 직접 제공하겠다고 나서는 게 오히려 공산주의 아닌가? 그들에게 돈을 주고 그들이 필요한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구매하도록 하는 게 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미 많은 연구를 통해 밝혀진 사실이다. (비슷한 내용은 앞서 소개한 <Doing Good Better 내정한 이타주의자>에도 나온다.) 


 혹시 기본소득 제도가 시행되면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늘어난다는 주장도 있다. 미국의 경우 월 1,000달러, 연간 1만 2천 달러는 한 사람이 간신히 먹고 살 수준이다. 이 소득이 주어진다고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한국의 경우 만일 성인 1명당 매달 80만 원 수준(한국의 물가와 사회보장 수준을 감안했을 때)의 소득이 보장된다고 해서 일반 성인이 추가 소득이 보장되는 일을 구하지 않을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오히려 이런 기본 소득이 보장된다면 과감하게 새로운 사업에 도전하거나 대학 또는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하는 사람이 더 늘어나게 되겠지. 그래서 경제성장률이 더 높아질 것이라는 연구도 있다. 실제 이 제도가 시행되는 곳(미국의 알래스카나 채로키 지역의 인디언, 그리고 이란 등)에서는 사람들이 더 성실해지고, 아이들의 영양상태가 좋아지며 성격장애가 감소할 뿐만 아니라 지역의 새로운 일자리가 더 늘었다고 한다. 근로시간이 줄어든 경우는 아이를 키우는 여성과 청소년 노동이 줄었다니 오히려 미래에 대한 투자가 늘어난 것이지. 


"기계는 힘이 없다. 제도가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사실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이 사실인 경우가 많다. (...)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아이디어가 세상을 바꾼다고 믿는다. 틀린 말이다.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헌신하고 희생하는 사람, 우리 사회를 허물어트리려는 세력과 맞서 싸우는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를 섬기고 있는가? 인간인가 시장인가? 우리는 우리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암울한 운명을 향해 질주하는, 오피오이드에 중독된 사람들 또는 우리만의 공간에 고립된 엘리트인가? 우리에게 세계를 재건하는 데 필요한 일을 할 만큼의 기개와 의지와 자신감과 자립심이 남아 있기나 한 것일까? 공감 능력은 충분할까? 자본은 우리를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는 자본을 주된 가치 측정 수단으로 삼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인간적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무엇이 중요한 것이고, 그 중요한 것을 어떻게 추구할 것인지 바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어때? 대선후보 연설 같은 느낌이지만 공감하는 말이다. 과연 암울한 미래에 기본소득 또는 보편소득이라 부르는 것이 대안이 될까? 아빠는 완전한 대안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오히려 어쩔 수 없이 가야 되는 길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의 복지도 노인복지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조금이라도 청년복지로 돌리기만 해도 많은 것이 달라질 거라 생각해. 보편소득 금액이 최소한으로 먹고살 만큼만 되면 많은 어르신들도 자유로워지고, 청년들은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생기는 것이니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대신 그들은 또 세금을 많이 내고, 소비를 통해 부가세를 많이 부담하잖아. 그들이 재원인데, 그들을 배제하기 위한 절차를 만드는 수고와 부정 수급자 골라내는 비용을 들이지 말고 말 그대로 보편소득을 지급해야겠지. 


 아빠는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른들이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조언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해. 심지어 변화속도도 빨리지고. 아빠의 아빠도 아빠에게 제대로 된 조언을 해 줄 수 없었듯이 아빠도 우리 딸에게 미래가 어떻게 되니 어떻게 준비하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구나. 네가 서른이 되었을 때 어떻게 되어 있을까?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듯해도 사람이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달라지지는 않을 거야. 너무 빠르면 사람들이 저항할 거야. 알아서 브레이크를 거는 거지. 그 변화도 사람이 만들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이전 26화 미래의 일 (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