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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르디우스의 매듭 Mar 17. 2020

Make sense?   

Sense making

그래, 결국 넌 대학에서 뭘 전공했니? 아빠는 네가 나중에 뭘 하든지 간에 일단은 영어와 수학을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긴 했는데, 앞으로 3년 뒤 어떤 결론을 냈을지 궁금하다. 진짜 배우고 싶은 것을 고르기보다는 결국 성적에 맞춰서 대학과 전공을 선택했을까? 아빠도 일단은 한국의 대입 중심의 교육제도에 너를 밀어 넣고 나서 후회하기는 했지만, 이제 와서 선택을 돌리는 것도 어려웠다. 공부를 아주 잘하거나, 아니면 뜻이 없다면 결정이 쉬웠을 텐데, 너처럼 어중간하게 잘하니까 선택이 참 어렵다. 일단 잘 견뎌줬기를 바란다.


네가 어릴 때, 우리 가족이랑 같이 놀러 다니던 아빠 친구 중에 병석이 삼촌네 기억나니? 거기 경채 오빠는 고등학교를 아예 외국으로 갔다. 그 병석이 삼촌은 한국의 교육제도에 불만이 워낙 많았기도 했고, 아는 분의 성공 케이스를 따라서 인도에 있는 세계 최초의 국제학교로 알려진 Woodstock International School에 경채를 보냈다. 이제 졸업반인데, '데싸'라고 부르는 요즘 핫한 '데이터 사이언스 Data Science'를 전공하게 하려고 알아보고 있더라. 아이비리그는 너무 돈이 많이 들어서, 아마도 네덜란드에 있는 델프스 공대로 보낼 생각인가 봐. 거기 살고 있는 네 고모가 있으니까 연락해서 여러 가지 정보도 얻고 있어. 아빠와는 달리 녀석은 다 계획이 있더구나.  


이미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로봇에게 넘길 것이며, 식당 직원, 약사, 진단의, 변호사, 회계사, 심지어 노인돌보미까지 대체될 것이라고 한다. 또 많은 언론과 책들이 이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중요한 문제로 다루고 있다. 심지어 유발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에서는 우리는 모든 것을 알고리즘에게 자리를 내주고 심지어 복종해야 한다고까지 얘기했지. 한편, 2016년 최고의 일자리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선정되었다. 병석이 삼촌이 '데싸'를 전공하게 하려는 이유를 알겠지? 반면에, 1990년대에 비해 인문학 학위수여는 절반으로 줄었다. 인문학 연구기금도 과학 및 공학 연구개발 기금의 0.5%(5%도 아냐)에도 못 미치는 현실이다. 한국의 현실도 아무리 좋은 대학이라 하더라도 인문학을 전공하면 졸업 시즌에 늘 취업을 고민한다. 


근데,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가 쓴 <센스 메이킹>에 보니까, 어떤 연구에 따르면 STEM(Science, Technology, Engineering, Math) 전공자들의 연봉이 초봉과 중간급에서 상위 1,2위를 다투고 있다고 한다. 반면에, 가장 성공적인 소득자들, 즉, 경력 중반 이후 상위 10%에 속한 사람들은 오히려 정치학, 철학, 연극학, 역사학 전공자들이 두각을 나타낸다고 한다. STEM을 전공하지 않은 인문학도들에게 위안이 될까? 마두스베르그는 '센스 메이킹'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이것은 빅데이터가 알려주지 않는 전략'이자 '비즈니스란 인간 행동에 대한 베팅'이라고 주장하긴 했었다. 그자는 센스 메이킹을 '인문학에 기초해 실용적 지혜를 얻는 방식이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빅데이터와 알고리즘들은 상관관계를 파악하지만 인과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며, 심층적 데이터가 빠져있기 때문에 문화를 이해하고, 맥락을 파악하며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지. 이런 의미라면 (다른 책 - 주로 조직론 관련 - 에서는 센스 메이킹을 '사람들이 집단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프로세스'라고 다르게 정의하는 경우도 있다.) 'Sense making'이 나름 'makes sense'하다. 그는 '센스 메이킹'의 다섯 가지 원칙으로 1. 개인이 아니라 문화를 살핀다, 2. 피상적 데이터(thin data)가 아니라 심층적 데이터(thick data)가 필요하다, 3. 동물원(사무실)이 아니라 초원(현장)으로 간다, 4. 제조가 아니라 창조한다, 5. GPS가 아니라 북극성을 따라간다(멀리 보라는 것이지)를 제시하더라.  


앞에 아빠의 다른 글에서 스즈키 다카히로의 <당신의 일은 안녕하십니까>라는 책에서 네가 서른이 되었을 때도 살아남은 세 가지 일 유형을 얘기했지? 그 첫 번째가 '인공지능을 비즈니스에 접목하는 일'이었다. 모두가 인공지능 개발자가 될 필요는 없고, 그것을 잘 활용하는 '덕후'가 되라는 것이지. 두 번째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춘 리더'가 되는 것인데, 이건 앞으로의 커뮤니케이션이 기존의 방식과는 다를 것이라는 반증일 거야. 그리고 세 번째는 '머리와 몸을 모두 쓰는 일'로 특히, 아직까지 로봇이 손을 재현하기는 힘드니 경험과 지식이 결합한 기능사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첫 번째와 두 번째는 사실 인문학적 insight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다. 아빠는 AI나 로봇을 찬양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Powered Suits' 논리에 관해서 걱정되는 측면은 분명 있긴 하다만, Sense Making이 가능하다면, 즉, 만약 네가 사회적 현상을 잘 이해하고 이를 통해 실용적 지혜를 얻어 내는 능력을 기른다면, 남들보다 빨리 Powered Suit를 입거나 더 멋진 Powered Suit를 입고 아이언맨처럼 변신할 수도 있겠다 싶네. 그렇다고 한다면, 비록 알고리즘이 전부 읽어내고 객관적으로 분석해주는 세상이긴 하지만, 해마다 몇 권의 책들을 읽는 일이 분명 가치가 있지 않을까? 연극, 그림, 역사 연구, 무용, 정치학 논문, 도자기를 비롯하여 구체성과 맥락을 벗겨내서 방대한 정보의 수문으로 바꿀 수 없는 문화적 지식에 가치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이데거라는 독일의 철학자는 세계를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했다. 첫째, 존재자의 총체로서의 세계다. 둘째는 특정한 존재자의 영역을 의미하는 세계다. 예를 들어 물질의 세계, 생물의 세계, 수학의 세계 등과 같이 영역이 구별되는 세계들이지. 세 번째는 인간이라는 존재자에게 적용되는 세계다. 하이데거의 가장 큰 관심 영역이다. 이 세계는 한 마디로 말하면, 인간의 삶이 이루어지는 장으로서의 세계다. 심하게 말하면, 인간이 없으면 세계도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물론, 인간이 지구에서 어느 날 사라지더라도 지구는, 어쩌면 더 건강하게,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막걸리'를 논한다면, 막걸리의 '실존'은 막걸리를 구성하고 있는 쌀과 효모, 물 등으로 분석한 물질의 세계로 설명할 수도 있겠지만, 하이데거 식으로 본다면 막걸리 주점의 문화와 그곳의 사람들, 즉 동래파전 굽는 아줌마,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 큰 소리로 떠드는 이웃들 등이 속한 내재적 구조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막걸리를 특징짓는 파전 골목의 보이지 않는 인정과 한국만의 문화와 감성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AI도 인간이라는 존재자에게 적용되는 세계 안에서 의미를 갖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새로운 기술, 문명이 만들어지더라도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문화에 대한 이해, 표면적인 data 보다 내면 깊숙이 숨어 있는 두껍고 내밀한 data를 읽어 낼 때 의미가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빅 데이터, AI, 로봇, 또는 다른 어떤 이름이라 할 지라도 결국은 다시 인간의 문제다. 인간이 만들어 가는 문화와 감성 속에 특징지어지고 의미를 갖게 된다. 이런 것이지. 인문학은 이런 해석을 내리는 데 쓰는 거야. 좀 억지 같니?  


다들 인문학의 중요성을 얘기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이고, 또 구체적으로 와 닿는 건 여전히 빅데이터, AI, 머신러닝이 인간에게 가하는 위협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왠지 나를 쓸모없는 잉여인간으로 만들 것 같으니까. 그렇다고 일반적인 인간인 우리는 '마땅히 실패할 만하며, 우리가 실패하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더 낫기까지 하다'고 생각해야 할까? 새로운 기술이 이제 인간을 쓸모없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가? 빅데이터, 알고리즘, 머신러닝... 이런 것들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이런 환경에서 문화적 탐구가 쓸모없는 호사로, 연극이나 콘서트를 관람하는 일이 잘난 척하는 사람들의 특혜이며, 소설을 읽는 것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고, 미술이 운 좋은 소수에게만 의미 있는 것이라는, 그래서 "살림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라고 따지는 현실에서 우리는 다시 물어봐야 한다. "사람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 물음에 마두스베르그는 "사람은 의미를 만들어내고 해석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고 인문학 영역은 이런 일에 적합한 훈련장이다."라고 말한다. 참고로, 그는 정치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동의하니?  


그래도 네가 서른이 되었을 때는 확실히 STEM을 비롯해 4차산업혁명 관련 기술 전공이 직업을 구하는데 더 유리하긴 할 거야.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 길을 택했더라도 틈틈이 책도 읽고 미술, 음악, 역사, 철학 등에도 관심을 두기 바란다. 혹시 인문학 계열을 전공한다면 4차산업혁명 기술들을 즐기면서 그 기술들이 인간을 위해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인지 공부했으면 좋겠다. 사실 뭐, 대학 때 뭘 전공했는지와 직업은 별 상관이 없을 때가 많다. 무엇을 하든 늘 새로운 변화들에 눈을 떼지 않고 지켜보길 바란다. 그런데, 궁금하기는 하다.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인간과 하라리의 호모 데우스가 만나면 무슨 대화를 하고, 어떤 일이 벌어질지. 한 때 한국에서도 난리였다. 장자, 공자, 맹자, 노자... 다 끌어다가 4차산업혁명 시대에 인문학의 역할에 대한 책과 강연이 쏟아졌다. 인문학 관련 교수님들도 먹고 살 틈새를 발견하신 것이지. 어쨌거나 무엇이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할까? 4차산업혁명의 기술을 이해하는 것과 인문학적 소양을 쌓는 것 중에 말이다. 어떤 것에 먼저 중점을 두든 상관은 없다만, 4차산업혁명 기술에 관해서는 생존의 문제가 될 테고, 인문학적 소양은 그 생존을 우아하게 만들어 줄 도구가 될 것이다. 둘 다 놓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제발, 유튜브도 좋지만, 책도 좀 잡자.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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