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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디우스의 매듭
Mar 17. 2020
아빠가 이 글들을 쓰면서 프롤로그에서, 네가 서른이 되었을 때 아빠는 환갑을 훌쩍 넘겼을 테고, 생각이 굳어버린 꼰대가 되어 있을까 두렵다고 했다. 그래서 이 글들은 아직은 사십 대(끝나가지만) 일 때 서른의 딸에게 쓰는 편지라고 했지. 근데, 라이프 코칭한답시고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 자체가 어쩌면 '꼰대질'일까 싶은 생각도 들더라. 아빠는 그냥 아빠의 생각을 얘기하는 것인데 말이다. 근데, 꼰대가 뭘까? 그래서 네이버에 꼰대를 검색해 봤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꼰대는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자,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라고 정의한다. 즉, 권위를 행사하는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기성세대 중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자신보다 지위가 낮거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에서 파생된 ‘꼰대질’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다.
한편, 이 단어는 영국 BBC방송에 의해 해외로도 알려진 바 있다. BBC는 2019년 9월 23일 자사 페이스북 페이지에 '오늘의 단어'로 'kkondae(꼰대)'를 소개하며,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다른 사람은 늘 잘못됐다고 여김)'이라 풀이했다.
이 말의 유래에 대해서도 번데기의 영남 사투리인 '꼰데기'가 어원이라는 주장과 프랑스어로 백작을 콩테(Comte)라고 하는데, 이를 일본식으로 부르면서 '꼰대'가 되었다는 주장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네. 아빠가 어릴 때 부산에서 침 좀 뱉을 줄 안다는 형님들이 나이 많은 어른들을 칭할 때 꼰대라고 하기는 했으나 그렇게 유행하는 단어는 아니었다. 근데, BBC에서 소개한 'kkondae(꼰대)' 즉, '자신이 항상 옳다고 믿는 나이 많은 사람'이라는 의미로 최근 몇 년 전부터 유행을 하더구나. 회사에서도 '꼰대질'에 대한 경계가 비슷한 시기에 회자되기도 했다. 그리고 또 몇 해가 지나 2018년 말부터 임홍택 씨가 쓴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이 한참 유행했었다. 90년생이 온다고? 이게 진짜 그들의 이야기일까 싶기도 해서(80년대생이 그들을 지켜본 이야기잖아)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60년대생인 상무님 독서 리스트에 올라와 있기에 아빠도 궁금해서 읽어봤어. 80년대생이 쓴 90년대생의 이야기를 70년대생인 아빠가 00년대생인 네게 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아빠 세대를 이해받고 싶다는 것이지.
마케팅 측면이나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세대별 코흐트 분석은 항상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세대를 구분 짓는 경계선을 어디에 긋느냐가 이슈 이기는 하지만, 나름 10년 단위별로 큰 사회적 변화도 마침 있었기에 90년대 생을 별도로 분석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 80년대생이 하는 90년대생에 대한 분석이 70년대생인 아빠가 80년대생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과 많이 겹친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볼 때 너네도 그래.'라는 것이지.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다. 어쩌면 그것이 젊음의 특성일 수도 있다. 사회나 현상에 반응하는 방식은 확실히 우리 세대와 많이 다르긴 하더구나. 그런데, 90년대생 (80년대생도 딱히... 정도의 차이지...)이 이러이러하니 기성세대가 이해하고 받아들여라고 하기에는 일정 부분은 쉽지 않다는 것도 분명히 하고 싶다. 이해한다고 해서 그게 옳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또 다른 얘기다. 책을 읽지 않는 세대, 모바일과 SNS에 빠져 한시도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그들의 소통방식을 우리 세대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
"요즘 젊은 놈들은 버릇이 없다"는 말은 (너도 많이 듣니?) 4,000년 전 바빌로니아 점토판 문자에도 나온다고 하니 이런 얘기가 중요할까 싶기는 하다. 세대 간 간극은 분명히 있다. 그럼에도 우리가 달라서가 아니라, 많은 것이 달라질 때, 즉, 혁신의 주기가 짧아진 시기에 그들이 태어난 것도 있지 않을까? 너희가 꼰대라 부르는 우리도 놀랍게도(혹은 당연하게도), 선배 또는 선임들로부터 신세대라고, 자신들과 다른 별종이라고 여겨졌다. 아빠는 회사에서 젊은 친구들한테 가끔 얘기한다. "우리 세대와 다른 것은 알겠는데,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과 남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다른 것이다. 자기주장이 강한 것과 예의 없는 것도 분명 다르다. 너희들에게 인내를 강요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신 그 결과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완전 꼰대 같지? 사실 아빠도 이런 말을 하기 전에 충분히 그 친구들 얘기에 공감해 주고 인정할 것은 인정한 다음에 하는 얘기다. 듣기 싫더라도 이런 얘기를 해 주는 것 역시 기성세대의 의무일지도 모른다.
"과거 70년대생과 그 이전 세대에게 충성심이라는 것은 단연 회사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90년대생에게 충성심은 단연 자기 자신과 본인의 미래에 대한 것이다. 충성의 대상이 다르고 그 의미도 다르니 갈등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때문에 90년대생들을 위한 조직 문화 개선 방안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충성도에 회사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이것은 오해다. 아빠는 회사에 충성한 적이 없다. 물론, 회사와 자신을 일체화하고 회사의 생각을 내재화해서 사는 친구가 극소수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IMF 금융위기를 뚫고 취직해서 나와 가족에게 충성했을 뿐이다. 나와 가족에게 충성하려면 회사가 망하지 않고 잘 굴러가야 했고, 회사에 시간을 더 쏟을 수밖에 없었을 만큼 순진했지만, 가끔은 울타리가 되어 주는 직장이 고맙기도 했다. 그래서 열심히 일했다. 지금도 열심히 일한다. 좀 더 관료적이고 위계를 중시했던 시대에 태어났을 뿐이고, 유교적 질서가 80년대생들보다 조금 더, 90년생들보다 훨씬 더 많았던 시대를 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지향점은 회사가 아니라 나와 가족이었다. 지켜야 할 것이 있어서 다를 뿐이다. 90년생들도 지켜야 할 가족이 생기면 달라지지 않을까? 90년대 생들도 00년대 생인 우리 딸이 회사에 들어올 때면 벌써 꼰대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70년대생 이상을 함부로 꼰대라 하지 마라. 90년대생들도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우리보다 더 한 꼰대가 될지도 모른다.
신영준, 고영성이 쓴 <뼈 있는 아무 말 대잔치>도 나름 그 시절에 유행했던 책이었다. 저자들의 풍부한 독서력이 드러나고, 젊은 친구들에게 꼰대질 제대로 하며 좋은 충고를 날리는 책이었다. 그러나 『꼰대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이 부분을 읽을 때는 화가 났었다. 낮에 커피 마시며 노는 젊은이들을 보며 세상 좋아졌다는 택시기사 아저씨한테 해 주고 싶었다는 저자의 얘기가, 그 택시기사 아저씨를 조선시대 가마꾼에 비유하며 감히(?) 손님한테 말 걸 수 있으니 좋은 세상에 사시는 거라고 쏘아붙이고 싶었다고 썼더군. 젊은 친구가 이런 오만한 생각을 글로 쓰다니 놀라웠다. 한편으로는 살면서 도대체 어떤 어른들만 만났길래 책 곳곳에 이처럼 4·50대 이상을 모두 꼰대로 몰아가는지 안타깝기도 했다.
『회사에서 미움받을 용기』에서는 문해력과 관련해서 16세~24세 평균은 OECD 국가 중 앞에서 4등인 반면, 45세~54세의 문해력은 뒤에서 4등, 55세~64세는 뒤에서 3등인 "처참한"결과를 보였다니, 그래서 이들과 논리적 소통이 안된다고 말한다. '미친 거 아냐? 우리 또래들이 뒤에서 4번째라고? 요즘 젊은 직원들이 얼마나 책을 안 보는데 얘네들이 OECD 4등이라고?'라고 생각이 들어서 그들이 참조한 자료를(PIAAC : OECD 국제 성인역량조사) 직접 찾아봤다. 조사는 21세기 기술에 필요한 핵심 정보처리능력을 알아보는 조사였다. 언어능력, 수리력, 컴퓨터 기반 문제해결력을 측정한 것이다. 어른들이 불리하다. 또 저자들이 말한 45세 ~ 54세는 그들이 책을 쓴 2018년 기준으로는 사실 50세 ~ 59세였고, 55세 ~ 64세 인구는 60세 ~ 69세에 해당하는 분들이었다. 자료를 보니 60세~69세는 전체의 15%만이 겨우 고등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요즘은 거의 대부분이 고등교육을 받는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발전했는지 잘 보여주는 자료다. 어르신들이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지만 힘들게 돈 벌어서 자식들 교육해 놨더니 이제 말이 안 통한다며 어른들을 무시한다."고 하신 말씀이 틀린 말이 아닌 게 되었다. 한두 가지 얕은 경험으로 기성세대를 전부를 꼰대라고 폄하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다.
미국에서 한참 워라밸이 유행하던 시절 신시아 샤피로라는 사람이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는 50가지 비밀>이란 책을 썼다. 아빠가 주위 사람들한테 원래 제목이 "회사가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은 50가지 공공연한 진실"이었을 거라고 얘기하던 책이었다. 회사 오너나 경영진, 인사팀장이 딱 좋아할 책이니까. 혹시 누가 이 책을 직원에게 권한다면 아마도 속으로 '이런 꼰대 쉑히가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 책에 핵심적인 진실이 몇 개 있다. 회사가 대외적으로 하는 말을 믿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회사가 내세우는 인재상, 자율성, 일과 가정의 양립 이런 건 다 홍보용이지 실제는 다르다는 얘기다. 그리고 인사부도 직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90년대생들을 위한 조직 문화 개선 방안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고취하는 것보다 자신들의 충성도에 회사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느냐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고? 설사 그렇게 표방하더라도 믿지 마라. 회사가 표방하는 문화는 필요한 인재를 유혹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네게 실제 회사는 바로 직속 팀장이다. 네가 회사에 느끼는 감정은 사실 네 팀장에 대한 감정이다. 회사 안에서 너를 규정하고, 네 능력을 인정해주고, 너에 대한 평판을 얘기하는 사람은 곧 네 팀장이니까. 회사가 가기 싫으면 졸라 짜증 나는 팀장 때문이지 회사의 이름 때문이 아니다. 회사가 알려지지도 않고, 급여가 비록 작아도 바로 위 팀장이 좋으면 다닐만하다. 네가 먼저 그 팀장을 꼰대로 만들지 마라. 행여 팀장이 나쁜 의미에서 진짜 꼰대면 빨리 벗어나는 게 상책이다. 상사가 무조건 갑질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대신 고과에 칼질한다.
다 같은 조언인데 왜 직장 상사나 부모가 하면 꼰대질이고, 유튜브나 유명 셀럽이 하면 좋은 조언이 될까? 물론, 전달 방법의 차이도 있을 테지만(남에게 충고하는 것만큼 고충스러운게 없다.), 관계에서 오는 부담감이 제일 크지 않을까? 부모가 또는 직장상사가 하는 조언은 '애정'이라는 이름의 감정이(때로는 이것이 간섭으로 비치는) 실리고 그들은 또 계속 상대를 모니터링을 한다. 그러나 책이나 유튜브로 접한 조언은 그 사람이 잘 지키는지 모니터링하지 않는다.
쓰다 보니 약간 '꼰대를 위한 변명'같은 글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제목도 다시 바꿨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을 아니? 네 또래들이 이 말을 잘 쓰지 않는 건 안다. 일본말로는 '쿠사떼모 타이'. 즉, '썩어도 도미'쯤 되지. 영어로는 'The old eagle is better than the young crow'라고 하더라. 아무리 늙어도, 또는 영광의 시절이 지나갔어도 기본은 한다는, 또는 아무리 낡아도 본래 값어치는 한다는 그런 뜻이겠지? 근데, 실제로 준치를 먹어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청어과 생선이라는데 그냥 청어라고 생각하고 먹었을까? 속담의 유래에 이런 얘기가 있다. 옛날의 준치는 맛도 좋거니와 가시도 없어서 사람들이 준치만 먹으니 준치는 멸족의 위기에 빠졌다고 한다. 이에 용왕이 모든 어류를 모아 놓고 준치 멸망지환(滅亡之患)의 대책을 토론한 결과 준치로 하여금 가시가 많도록 해 주자는 의견이었다. 그래서 용왕은 모든 물고기가 자기의 가시 한 개씩을 뽑아 준치 몸에 꽂도록 하였다. 그러나 너무나 많이 꽂아서 아픔을 견디다 못하여 마침내 달아나는데, 그래도 뒤쫓아가서 가시를 꽂으니 준치는 꽁지 부근에 까지 가시가 많다고 한다.
옛날에 꼰대가 살았다. 자기가 생각할 때 옳은 말이라서 라떼를 마셔가며 사람들에게 들려줬더니 젊은 친구들이 술자리에서 안주감으로 맛있게 씹어댔다. 하도 안주감으로 올라서 꼰대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회사대표가 꼰대 퇴직의 난을 막기위해(썩어도 준치라서) 젊은 친구들이 유행하는 줄임말을 하나씩 가르치라고 했다. 젊은 친구들은 단톡방에서 처음 듣는 말들을 날리니 꼰대는 욕인 줄 알고 달아나는데, 그래도 뒤쫓아가서 카톡으로 '낄끼빠빠', '답정너', 'TMI' 같은 단어를 날려주었다. 그래서 꼰대는 뒤끝이 있다.
꼰대가 뒤돌아 보면서 외쳤다. "너희도 곧 꼰대 된다."
꼰대가 몰려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