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몇 해 전 아빠가 회사 직원들과 워크숍을 하면서 만든 건데, 네게도 들려줘야겠구나. 아빠가 중학교 때, 이현숙 선생님이 도덕시간에 이 주제로 얘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들은 이야기가 늘 기억에 남아서 그걸 바탕으로 변주를 해서 직원들에게 들려줬던 이야기란다.
세상의 모든 일은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싶은 일, 해야만 하는 일, 할 수 있는 일.
이 일들이 다 따로 있지는 않겠지? 교집합 부분이 분명 있을거야. 근데, '할 수 있는 일'의 영역 안에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이 다 들어 있다면, 그건 신의 영역이겠지? 신이 있다면 말이야. 그리고 그 신이 인간이 관념적으로 정의한 대로라면 말이지.
그러나 우리에게 이 세 가지 일은 각각 교집합을 그리면서 아래와 같은 모양이 아닐까?
각 영역마다 아빠가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봤어. '하고 싶은 일'인데, 아직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그러나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닌 것을 우린 '꿈'이라 부르지 않을까? 우리 인생은 이 꿈을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보내는 노력을 지속하는 것일지도 몰라. 중학교 때 선생님은 이 세 가지 일이 하나로 합쳐지는 곳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아빠는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이 겹치는 곳이 더 좋아. 반면에,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는 일을 우리는 욕망하게 되지. 단순히 '해야만 하는 일'로 남은 건 아빠는 삶의 무게라고 생각된다. 네가 어른이 되면서 어쩔 수 없이 관심을 가지는 일은 사실 '해야만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이 겹치는 영역일 거야. 이 영역은 의무란다. 해야만 하고 또, 할 수 있는데 안 하는 건 삶의 의무를 저버리는 일이란 생각에서 아빠는 그렇게 정의하고 싶어. 각 영역마다 네 나름대로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거야.
어쨌거나,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과의 교집합 속에 보내고 싶어 하겠지? 그러나 불행히도 바로 이 영역으로 이동은 불가능해. 물론, 한 분 빼고. 정말 간절히 원하면 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었단다.
그러나 아빠 경험 상 대부분의 경우는 몇 단계를 거쳐야 하더라. '하고 싶은 일' 하기 위해서는 일단 '해야만 하는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해야 된다. 아래 PT 자료에도 쓰여 있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지. '하고 싶은 일' 하나를 하려면 '해야만 하는 일'이 최소한 10개가 넘는다는... ^^: 단순히 노력해서는 안되고 노오력~ 해야.. ㅠㅠ . 그럼 하고 싶은 일과의 교집합을 만나게 된단다. 그리고 나중에는 이 일이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의 교집합 영역으로 이동하더라. (아니니? 그럼 뭐 넌 독특한 능력을 가진 걸로... )
근데 이게 다가 아니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방법은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키우는 것도 있어. 즉, 흔히 말하는 '자기 역량 강화'다. 이건 단순히 '해야만 하는 일'을 많이 해서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이 커지지는 않더구나. 평소에 '해야만 하는 일'은 아니지만 다양한 관심과 독서, 어쩌면 쓸 데 없어 보이는 취미 생활까지. 인간관계, 심지어 아빠처럼 어쩌다 취사병이었던 경험도 도움이 되더라고. 여행이나 외국에서 살아 본 경험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듯하다. 이런 것들이 의외로 할 수 있는 일의 영역을 넓혀준단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면 하고 싶은 일과 교집합도 커지고, 해야만 하는 일과의 교집합도 커지겠지?
작은 형이 이 내용을 보고는 하나 더 의견을 주기는 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을 줄이면 된다고 말이다. 아마도 형은 욕망을 줄이면 할 수 있는 일이 적더라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해. 그 의견에 아빠도 일부 동의한다.
원래 워크숍의 목적은 위 설명이지만, 그래도 회사에서 하는 워크숍이니 일과 좀 연결을 시켜야 돼서 아래 두 개의 그림을 더 그려줬었단다.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특히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의 영역을 '할 수 있는 일'과 겹치게 하기 위해서 '해야만 하는 일'들을 써 보라고 얘기하고,
그리고 아래 그림처럼 할 수는 있지만 해야만 하는 일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하고 있는 관행적 업무들을 제거해서 업무량을 좀 줄여 보자는 취지에서의 워크숍이었단다.
PT 자료 만들기 싫어서 동그라미 몇 개 그려놓고 한 20분 잘 때웠던 자료였다. 이런 워크숍이 실제 업무량을 줄이지는 못했지만(금융업에서는 늘 새로운 규제가 생기고, 그 규제를 잘 지키는지 감독하고, 그 감독의 실효성이 있는 지를 체크하는 지침을 만든 다음, 원래 규제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는 잊어버리고 규정과 지침의 자구대로 잘 지키는지 검사받느라 일이 줄지가 않아.) 잠시나마 내가 뭐가 하고 싶었는지 돌아볼 시간은 되더라. 그냥, 40대가 새로운 사춘기라 생각하니, 예전 사춘기에는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거 같은데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겠다 싶어서 말이다. 그래서 잠시 중학교 때 도덕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단다. 젊은 시절에는 하고 싶은 일의 영역의 리스트가 많았는데, 살아갈 수록 해야만 하는 일의 영역에 리스트가 쌓이지 않던? 모두 하고 싶은 일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