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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르디우스의 매듭 Feb 27. 2020

하고 싶은 일

그게 진짜 꿈이니? 

 일 이야기를 시작했으니 조금 더 해 볼까? 혹시 너 초등학교 졸업식이 기억나니? 초등학교 졸업식은 어쩌면 너한테 보다 아빠와 엄마한테 더 소중한 기억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직 우리 말을 듣던 때라 그런가? 어쨌든, 아빠는 다른 이유로 그 졸업식이 기억에 남는단다. 너와 네 친구들이 모두들 학사모를 쓰고 의젓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신기했지. 이 개구쟁이들이 졸업이라니... 


 합창단이 축하 노래도 불러주고, 다양한 영상도 재미났어. 요즘 애들은 우리 때보다 훨씬 낫구나 생각했다. 너를 비롯해 모든 친구들이 어떤 이름이든 간에 교장선생님께 졸업장과 함께 하나씩 상을 받는 것도 보기 좋았단다. 근데, 신기한 것은, 한 명 한 명 호명할 때마다 화면에서 장래 희망을 보여 주는데, 많은 여학생들이 선생님이 되겠다고 했던 것 같다. 지금도 학령인구 감소로 교대 졸업자들이 선생님 자리가 없어서 난리인데, 너네들이 사회에 나올 때는 있는 선생님들도 강제 퇴사해야 될지 모르는데, 선생님이 꿈이라니. 게다가 아빠에게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한 적이 없던 너마저 그렇게 적어 냈나 보더라고(아마도 엄마나 아빠 외에 유일하게 오랫동안 보는 사람이 선생님이라서 그렇겠지?). 그리고 꽤 많은 학생들의 꿈이 공무원(선생님이든, 경찰이든, 소방관이든, 진짜 그냥 공무원이라고 표현했든 간에)이라고 써냈다니 아빠는 살짝 당황스러웠단다. 일부 가수나 의사, 디자이너도 보이긴 했지. 남자애들은 공학자나 의사, 프로그래머도 많았던 기억이 난다. 이게 애들 생각인지, 부모들의 욕심이 반영된 희망인지 그냥 봐도 알겠더구나. 부모들이 겪고 있는 낮아진 직업의 안정성이 애들 미래 희망에다 투영되거나, 그나마 미래에 먹고살만한 직업들을 추천한 게 보였기에 좀 안타까웠단다. 가끔 국회의원이나 CEO, 개그맨 등을 써낸 애들이 더 예뻐 보였다. 


 그 뒤로도 아빠는 가끔 네게 나중에 커서 어떤 직업을 갖고 싶냐고 여러 번 물어봤었지. 좋아하는 일을 찾는다는 것이 참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나중에 공부가 네 꿈을 방해하지 않도록 공부 열심하 하라고 강요도 하고 말이야. 그때 한 번은 네가 "나도 엄마와 아빠처럼 그냥 회사원 하면 안 돼?"라고 답한 적도 있었단다. 아빠가 그때 한숨을 내쉬며 "네가 사회에 나올 때는 그게 제일 어렵단다."라고 했었던 기억이 나네. 지금도 대학을 졸업하는 많은 친구들이 '그냥 회사원'이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들을 하고 있지만 많은 회사들이 오히려 직원들을 줄여야 하는 처지란다.(이건 다시 얘기하기로 하고) 


 근데, 아빠를 포함해서, 많은 어른들이 애들에게 장래 꿈을 얘기할 때 진짜 꿈이 아닌, 직업을 주로 얘기했었다. 너도 알다시피 꿈과 장래 직업이 꼭 같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던? 그래서 졸업식 끝나고 밥 먹으면서 장래 꿈을 좀 다르게 가지라고 네게 얘기했었지. 하늘을 날고 싶다거나(이건 오버였다), 온 세상을 여행하고 싶다거나, 다른 사람들을 돕거나 가르치며 살고 싶다거나, 아니면 많은 시간을 빈둥거리고 싶다거니, 책을 쓰고 싶다거나... 이런 거 말이야. 그래서, 예를 들어,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게 꿈이라면 이것을 이루기 위한 방법은 정말 다양하단다. 파일럿이나 스튜어디스가 되어서 실제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방법도 있고, 여행 작가가 되거나 사업을 하더라도 글로벌 기업에 취직하는 것도 한 방법이지. 네가 원하던(?) '그냥 회사원'이 되더라도 아빠처럼 국제부 또는 비슷한 이름의 부서에서 근무한다면 상대적으로 해외에 나갈 일이 많을 거야. 그러나 제일 흔한 방법은 어떤 직업이든 간에 열심히 돈을 벌어서 당당하게 휴가를 내고 가고 싶을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것이지 않을까? 그래서 꿈도 중요하지만 직업도 중요하단다. 아빠는 직업을 통해서 자아를 실현하라고(그게 뭔지도 잘 모르고) 하고 싶지는 않다. 직업은 꿈을 이루기 위한 한 방법일 뿐이고, 직업 자체가 꿈일 필요도 없지 않을까? 게다가 네가 사회생활을 할 때는 직업이 하나이거나 평생 하나의 직장에서만 하는 경우는 점점 더 희박해질 텐데 말이야. 


 고백하건대, 아빠가 지금 마흔 후반에 다다랐지만, 아직도 아빠의 꿈이 무엇이었는지, 혹은 지금 꿈은 무엇인지 얘기하지 못한단다. 아빠가 자라던 시절에는 그런 모든 것들이 너무 막연했었어. 부모님들도 그런 것에 대해 고민하게 하신 적도 거의 없었고. 그냥 가난했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만 했었지. 그 생각을 확장해서 내 집을 사고, 심지어 내 건물을 갖고 싶다고, 그게 꿈이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었단다. 엄마와 함께 열심히 돈을 벌어 우리가 엉덩이를 깔고 앉을 작은 아파트를 하나 사고, 그리고 또 열심히 돈을 아껴(그래서 늘 네가 불만이었던 건 안다) 아파트보다 더 싼 조그마한 그래서 지금은 애물단지인 상가주택을 하나 샀었다. 지나고 보니 그게 꿈이 아니었던 걸 알게 돼. 그건 남은 인생을 살아가기 위한, 생존을 위한 보험 같은 것이지 꿈이 될 수는 없더구나. 그래서 아빠도 이제부터 꿈을 가질 생각이다. 네가 서른에 다다랐을 때 아빠가 무엇을 즐기며 살지 기대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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